민주노동당은 14일 오는 17대 총선 선거구획정 문제와 관련, 박관용 국회의장, 한나라당 이규택, 민주당 정균환 원내총무를 직무유기로 고발했다. 지난 2001년 헌법재판소가 현행 선거구 제도에 대한 위헌판결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법정시한까지 아무런 개편 노력을 하지 않은 데 대한 고발이다.
***"여야 정략적 이유로 헌법 우습게 알아"**
민노당은 이날 오전 서울지검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선거법에 따라 16대 국회가 '선거구획정위원회'를 구성해 선거구획정안을 17대 총선 1년전인 14일까지 국회의장에게 제출해야 함에도 정략적인 이유로 이를 어긴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이며 범죄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서울지검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민노당은 "양당은 선거구획정 시한을 규정하고 있는 선거법 24조 2항이 '선언적 규정' 혹은 '훈시규정'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선거구획정안이 1년 전에 정해져야 선거권자들이 자신이 어떤 선거구에 속하는지 알 수 있고, 선거에 출마할 후보 예정자들도 그에 상응하는 선거준비를 할 수 있다"면서 "따라서 선거법 24조 2항은 선거권자의 알권리와 피선거권자의 공무담임권을 보호하는 규정이기에 '의무규정'이고 '효력규정'"이라고 주장했다.
민노당은 또 이날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총무를 검찰에 고발한데 이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야, 선거구획정위원회도 구성 못해**
현재 여야는 선거구획정위원회조차 구성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박관용 국회의장이 국제의회연맹(IPU) 총회 참석을 위해 외국을 방문 중이므로 박 의장이 귀국하는 17일 이후에나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구성될 전망이다. 선거구획정위원회는 국회의원 3명과 국회의장 및 여야 교섭단체 대표가 추천하는 외부인사 4명 등 총 7명으로 구성된다.
선거구 획정 법정시한 문제와 관련 여야는 "원칙적으로 법정시한인 총선 1년 전까지 선거구 확정안을 마련해야 하지만 예외로 여야 교섭단체 대표 합의로 시한을 넘겨 확정안을 마련해도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지난 2001년 10월 "최대.최소 선거구간 인구편차가 3.88대 1에 이르는 현행 선거구역표와 선거법이 선거권의 평등을 저해한다"면서 "지역구별 인구편차가 최대 3대1을 넘어서는 안된다"고 결정함에 따라 선거구가 재조정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정시한이 임박해서야 여야가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비난여론이 일고 있다.
***의원간 '영토분쟁' 치열**
헌법재판소 판결이 난지 1년 반이 지났는데도 선거구획정안이 제대로 논의돼지 못한 속사정은 이 문제가 의원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문제라는 점에 있다.
중대선거구제가 한나라당의 반대로 도입될 가능성이 희박한 가운데 현행 소선거구제가 유지될 경우, 인구하한선에 따라 상당수 지역구가 없어지거나 합쳐지는 등 의원들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인구 10-12만명 미만의 상당수 군소지역구의 통폐합의 불가피해 보인다.
현행 9만5천명인 인구하한선을 12만명으로 조정할 경우 지역구는 2백27개에서 1백98개로 29개가 줄어드는데 특히 인구 12만명이 안되는 지역구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11개), 호남 (9개)에 집중돼 있다.
이에따라 선거구 통폐합이 예상되는 지구당의 경우, '주민수 불리기'에 안간힘을 쓰는 한편 선거구 재편을 미리 가늠해 보며 인접 지역구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등 의원간 '영토분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박상천 최고위원 지역구인 전남 고흥의 경우 지난해말 기준으로 인구가 9만2천명이던 인구가 3월말 현재 10만3천명으로 늘어났다. 고흥군이 전 직원과 이장, 부녀회장까지 동원해 외지 친척들을 대거 위장전입시켰다고 한다. 박 위원측은 "인근 보성이 본래 한 지역구였다"며 보성을 고흥에 붙여 지역구를 유지하려는 입장이지만 전남 화순.보성이 지역구인 박주선 의원이 펄쩍 뛰고 있다.
인구 8만4천여명으로 통폐합이 확실시되는 전북 무주.진안.장수의 경우 지역구 의원인 민주당 정세균 의원측은 "3개 지역은 지리적으로 쪼갤 수 없는 곳"이라며 인근 임실을 붙여서라도 지역구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전북 완주.임실이 지역구인 민주당 김태식 의원측은 "전북지역의 30%를 차지하는 지역이 1개 선거구가 돼 지역균등발전에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영남지역 상황도 마찬가지. 인구 9만6천여명인 경남 산청.합천 지구당은 최근 두 지자체장에게 인구늘리기에 특별히 힘써줄 것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통합이 확정적인 한나라당 주진우(고령.성주)의원과 인근 한나라당 이인기(칠곡) 의원간에도 지역구를 둘러싼 신경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비례대표 의석수도 논란거리**
선거구획정 문제와 관련해 또다른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비례대표 의석수다.
시민단체, 학계,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취지를 살리기 위해 전국구 의석수를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손혁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정치학 박사)은 "지역구대 비례대표 비율을 현행 4.9대 1에서 1대 1로 개정해야 한다"며 "선거구획정의 민주성과 투표의 등가성을 확보하기 위해 최대 선거구와 최소 선거구간 인구 편차가 현재의 3.88대 1에서 2대 1이 넘지 않도록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노당 채진원 정당명부제추진운동본부 국장도 "국회의원 선거가 단순히 지역대표를 뽑는 행위라고 보는 것은 곤란하다"면서 "의석수를 3백명으로 늘리되 지역구를 1백50석, 비례대표를 1백50석으로 배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치개혁연구실도 지역구의원 2백명, 비례대표 1백명을 상정, 13만대 39만명안을 국회 정치개혁특위에 제시한 바 있다. 이 안에 따르면 지역구는 현행 2백27개에서 27개 줄고, 비례대표 의석은 현행 46석에서 1백석으로 늘게 된다.
그러나 한나라당에선 "권역별 비례대표제 역시 영남권에서 지역구 의석 확보가 어려운 민주당이 정당투표에서 일정 비율의 지지를 바탕으로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하려는 노림수"라며 반대하고 있다.
한편 민주당은 인구 11만-33만명안을, 한나라당은 10만-30만명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두 방안 모두 의원정수가 현재 2백73석에서 2백90-3백7석으로 늘어나 논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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