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군에 의해 장악된 이라크 남부 도시가 사실상 무정부상태다. 이라크인들 사이에 대규모 약탈과 폭력, 갈등이 난무하고 있다. 미-영 점령군에 의해 지원을 받고 있는 민병대의 횡포는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미-영군에 의해 방조되고 심지어 조장되기까지 하는 이같은 혼란은 전쟁으로라도 후세인 철권독재를 제거하고 평화를 되찾을지 모른다는 이라크인들의 한가닥 희망을 어둡게 하고 있으며 "이것이 미국이 말했던 '이라크인의 해방'이냐"는 탄식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고 외신들이 8일(현지시간) 잇따라 보도했다.
<사진:약탈장면>
***미군 차량 타고 나타난 민병대의 약탈과 폭력**
혼란이 극심한 곳은 바그다드 남부 나자프시로 알려졌다. 나자프는 특히 미군의 지원을 받는 민병대들에 의한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
미군의 점령으로 집권 바트당의 횡포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나자프시 주민들이 이제는 미군의 지원을 받는 이라크 민병대라는 새로운 통치자 때문에 공포에 떨고 있는 듯 하다고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가 9일 보도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지난주 미군 특수부대 차량을 타고 이곳에 나타난 이라크 국민통합연합(ICNU) 민병대들이 약탈을 자행하며 이웃들을 공포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나자프시 주민 아부 제이납은 "그들은 무엇이든 마구 훔쳐댄다"며 "민병대들이 '우리는 미군과 함께 있고 너희들은 우리에게 아무짓도 할 수 없다'고 위협한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 사이다 알 하메드도 지난주 바트당 세력이 도주한 뒤 경찰력이 없어지자 ICNU와 다른 무장 갱단이 약탈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차를 달라는 그들의 요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ICNU 요원들에게 집을 빼앗기고 구타당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결국 그 차를 빼앗아 가져갔다.
***미군 지원 민병대 어디 출신인지도 몰라**
미 특수부대는 군 소식통들에 의해 자신들에게 넘겨진 '불평분자'들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ICNU 요원들이 어떻게 선발됐는지, 그들이 누구인지 등 이 단체에 대한 정보를 밝히길 거부했다. 아부 제이납은 "ICNU는 이 도시에서 기반이 없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 시아파 이슬람신도인 주민들이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시아파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시스타니의 말을 따르길 바라지만 시스타니는 지금까지 미군 대표들을 만나길 거부하면서 미군과의 협조 문제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는데 측근들은 그가 "상황이 좀더 확실해지길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ICNU를 돕고 있는 시아파 성직자 하산 무사위는 ICNU가 약탈을 자행하고 있다는 보고는 사실이 아니며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이 지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ICNU가 하려는 일은 전직 이라크 관리들과 후세인 정권 협력자들을 체포하는 것이라며 "그들이 저항하지 않고 체포되면 미군에게 넘겨주지만 저항할 때는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한다"고 말했다.
민병대의 횡포에 미군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분위기다. 지방정부의 재구성을 위해 미 중앙정보국(CIA)과 미군 특수부대가 데려온 이라크 망명인사들은 민병대(ICNU 지칭)가 자신들의 통제가 밖에 있다고 털어놨다고 FT는 전했다.
***바스라도 분노와 증오만 남아**
영국군이 장악한 것으로 알려진 이라크 남부 바스라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주간의 격렬한 전투로 물과 식량 부족에 시달렸던 바스라 주민들은 이제 약탈이라는 새로운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8일 보도했다.
약탈에 나서 주민들은 AK-47 소총으로 무장하고 가정집과 상점, 국가 기관 건물 등을 습격하고 있으나 영국군은 이에 속수무책인 상태이다.
한 영국공군 중장은 후세인 정권에 대한 광범위한 분노 때문에 약탈을 막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스라 주민들은 약탈을 방조하는 듯한 영국군의 태도에 분노를 표하고 있다. 한 트럭 운전사는 "영군군은 약탈사태를 모른척 하고 있다. 한심한 일이다"고 말했다.
바스라 주민 후세인 아킬은 "약탈자들은 우리 이웃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고 있고 낮이나 밤이나 무엇이건 훔쳐간다"고 증언했다. 아킬은 "이것이 해방이냐"며 한탄했다.
이같은 혼란상에 대한 주민들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이는 미국의 이라크 민정 정책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는 것이다. FT는 혼란이 계속될 경우 미군은 전쟁의 승리만큼이나 빠르게 평화를 잃어갈 수도 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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