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신문이나 뉴스에 반가운 소식, 가슴 설레게 하는 소식이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그저 전쟁, 북핵 위기, 감원, 구조조정, 결사 투쟁, 보복관세, 물가비상 등등 이맛살 찌푸리게 하는 얘기들만 앞을 다투고 있다. 이를 일러 세상의 기수(氣數)가 순조롭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오늘은 좀 더 밝은 얘기를 해보고 싶어서 청명을 주제로 삼았다.
청명이란 문자 그대로 맑은 청(淸), 밝을 명(明)이다. 청명절이란 12절기중의 하나로서, 대략 해마다 4월 5일경이 된다. 이 날은 그래서 식목일과 겹치는 날이기도 하다. 청명부터 한 달간이 정말 봄다운 봄이며, 절정의 봄이다. 꽃피는 춘삼월은 청명으로부터 한 달간을 말한다. 청명 부근에는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3월 삼짇날이 있으며, 다시 한 달이 지나면 입하(立夏)이니, 어느덧 한낮에는 더위를 느끼게 된다.
먼저 청명 무렵에 지은 왕희지의 저 유명한 난정기(蘭亭記)의 앞부분을 잠깐 소개한다.
“영화 9년 계축년, 늦은 봄 초승, 회계산 북쪽의 난정(蘭亭)에 모여 봄맞이를 행하니, 여러 어진이들, 그리고 젊은이와 어른들이 다 함께 모였다. 이 곳은 높은 산과 험한 고개도 있고, 무성한 숲과 긴 대나무도 있으며, 맑게 흐르는 냇물과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여울이 좌우에 서로 비쳐 어울렸다. 물을 끌어 술잔을 곡수(曲水)에 띄워 보내는 놀이를 하기 위해 차례로 줄을 지어 앉았으니, 비록 사죽(絲竹, 관현악)의 풍성함은 없다 하더라도 한 잔하고 또 시 한 수 읊는 것이 또한 그로서 서로의 그윽한 정을 활짝 펼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이 날 하늘은 명랑하고, 대기는 맑으며 은혜로운 바람마저 화창하니 우러러 우주의 광대함을 보고 숙여서 만물의 성함을 살폈다. 여기저기 눈을 놀리고 생각마저 자유로우니, 그로서 한껏 보고 들으며 즐기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이 글을 쓴 시점은 중국 동진(東晋) 영화 9년이니 서기 353년 삼월 삼짇날이다. 바로 청명 근처로서 위 글 중에 ‘하늘은 명랑하고 대기는 맑으며’하는 글귀가 나온다. 원 문장이 천랑기청(天朗氣淸)인데 이것이 바로 청명이다.
당시 왕희지는 문인들을 불러 곡수연(曲水宴)을 열었는데, 곡수연이란 정원으로 물을 끌어 물길이 구비구비 돌아가도록 시설을 만들고, 그 곡수(曲水)에 술잔을 띄우고 자기 앞으로 떠내려올 때까지 시를 읊고 즐기던 연회를 말한다. 경주 포석정이 바로 곡수연 또는 유상곡수(流觴曲水)를 위한 시설이다.
곡수연이란 바로 풍류놀이인데, 풍류라 하면 일반적으로 문인들이 좋은 경치 속에서 시ㆍ서(書)ㆍ금(琴)ㆍ주(酒)로 노니는 것을 일컫는다. 그런데 이 풍류(風流)란 말도 청명절과 관련이 깊다. 옛 책에 청명이 되면 ‘하늘의 기운은 내려오고, 땅의 기운은 상승하여 생기가 사방에 성대하고 양기가 발동한다’라고 되어있다. 이를 현대적인 의미로 풀이하면, 대기의 순환이 활발해지고 서서히 지표면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만물이 번성하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청명절부터는 공기의 흐름, 즉 바람이 천지사방에 자유롭게 불게 되니, 이것이 바로 풍류이다.
다시 말해 풍류란 자유롭게 불어대는 봄의 바람과도 같이 얽매이지 않는 정신의 경지를 말한다. 청명부터 바람은 그야말로 혜풍(惠風)이며, 우리의 정신을 살찌우는 바람이다. 또 그런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겠다는 정신이 풍류이다. 반드시 물 좋고 산 좋은 곳에 살고 있지 않다 해도 마음만은 늘 그렇게 자유롭다면, 진정한 풍류의 경지라 하겠다.
앞서 꽃피는 춘삼월이라 했는데, 꽃이 피는 계절이란 다시 말하면 식물들의 일대 섹스 기간이라는 뜻이다. 필자는 지난 연휴에 쌍계사를 다녀왔는데, 수 킬로미터나 이어지는 벚나무 숲길은 머리 위를 양쪽의 꽃가지들이 덮으면서 연분홍 일색의 궁륭을 만들고 있어 실로 장관이었다. 절로 ‘지금 나는 꿈길을 가고 있구나’ 싶었다.
이처럼 청명에는 식물들만 짝을 짓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도 마찬가지이며, 인간 역시 동물인 이상 상황은 동일하다. 만물이 춘심 일색이니, 추운 겨울을 지내고 봄풀을 뜯어 생기가 오른 짐승들도 청명부터는 활발하게 짝짓기에 들어간다.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청명절이 되면 부부간에 섹스 횟수가 많아지고, 연인들은 왕성한 성욕을 주체하기 어려운 계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4월은 결혼의 계절인 것이다.
그럼, 이제 춘사(春社)에 대해 얘기해 보자.
고대에는 봄에 일정 기간을 정하여 남녀간의 자유스러운 교합(交合)을 사회가 인정해주고 나아가서 장려하던 습속이 있었는데, 이는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중국에서는 이런 행사를 춘사라 했다.
사(社)란 사당을 말한다. 사당에는 주로 신목(神木)으로서 뽕나무가 많이 심어졌는데, 이를 사상(社桑)이라 하기도 하고 뽕밭이라 상림(桑林)이라 부르기도 했다. 신목은 러시아의 경우 백양나무였으며, 유럽 쪽에서는 참나무가 되기도 했다. 또 우리는 신목을 당목(唐木)이라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고대의 소도(蘇塗)가 바로 사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 사는 곡식이 풍성하고 자손이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장소이기에 그 기능은 생산의 신을 모시는 곳이다. 나중에 직(稷)과 결합하여 사직(社稷)이라 하기도 한다. 소도나 사에 모셔진 돌은 생식신의 상징인데, 일반적으로 남근석(男根石)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는 어머니, 대지의 젖가슴인 지유(地乳)석이다. 어머니, 대지는 서양에서 이른바 가이아(Gaia)이다.
그런데 이 장소는 봄이 되면 축제를 열어 마음껏 마시고 즐긴 연후에, 남녀간의 자유로운 섹스를 허용하던 곳이었고, 그 행사를 춘사라 했다. 유교의 대성인 공자 역시 그 부모가 상림에서 만나서 생긴 아이였다. 일러서 야합(野合)이란 것인데, 공자가 야합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천시 받거나 무시당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당시 남녀가 봄에 섹스 페스티벌을 벌리는 것은 그 사회의 번영을 위한 중요한 행사였고 사회가 권장하는 바였기 때문이다. 페스티벌 자체가 실은 이 같은 남녀의 교합을 위한 분위기 조성이었다.
이를 후세에 와서 남녀가 어지럽게 어울리니 난교(亂交)라고 못마땅하게 표현했는데, 사실 이야말로 어리석음의 소치이다.
춘사, 내지는 페스티벌이 생겨난 이유에 대해 알아보면 금방 이해가 간다.
한 때 고대 인류의 남녀 관계는 힘이 지배했었다. 이러다 보니 힘센 수컷은 여러 암컷을 차지하고 그렇지 못한 수컷은 밀려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어떤 무리가 다른 무리에 비해 강대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수컷간의 싸움을 조절하지 않으면 자칫 멸망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성금기(性禁忌)제도였으며, 특히 수렵기에는 엄하게 지켜져야 했다. 원시부락 성원 사이의 충돌로 수렵에 참가할 수 있는 인원이 감소된다면 사냥에 상당한 손실을 가져다 줄 것이며, 심지어는 기아에 직면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특정 기간이 아니면 남녀간의 성을 금하는 제도가 생겨난 것인데, 과거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는 제도 역시 이에 속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섹스를 금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부족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손이 많아야 한다. 그 결과 생겨난 것이 봄의 자유로운 남녀 교합이며, 바로 춘사였다.
춘사에서 생긴 후손들은 부족 전체가 보호하고 양육하다가 나중에 점차 그 부모가 떠맡는 제도로 변해갔던 바, 이는 사유재산의 발전과 그 궤를 함께 한다.
따라서 “춘사 때의 특징은 바로 광란과 조금도 구속받지 않는 성교이며 진정한 방탕이었다. 이것이 바로 춘사와 사회(社會)의 기원이다”라고 중국의 문화인류학자 하신(何新)은 말하고 있다.
지금에 와서 사회란 말은 영어로 society이지만, 원 뜻은 봄날의 섹스 파티를 일컫는 말이며, 영어로 company에 해당되는 회사(會社) 역시 사(社)에서 모여 섹스 파티를 연다는 뜻이니 정말 재미가 있다.
이처럼 봄날의 춘사는 대개 양력 3월에서 4월 초, 청명절에 열리는데, 그 이유는 봄이야말로 만물이 번창하는 시기이며 춘심이 동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나무들은 꽃을 피워 섹스 파티를 열고, 동물들도 자유로이 짝을 지으니 인간들도 봄날에 교합하여 후손을 만들었던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음양의 조화(調和)를 중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기서 음양이란 바로 남성과 여성이기에 조화와 화합을 통해 후손을 낳고 만물이 번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음양관은 서구의 이원론(Dualism)과 본질을 달리 하는 것이다. 이원론은 반대 또는 대극(對極)되는 힘과 기운의 갈등을 앞세우지만, 음양관은 대립보다도 조화를 앞세운다.
중국의 학자 하신은 음양관이 원시 생식신 숭배 관념에서 발전해 왔다고 보고 있는데 대단히 명석한 지적이라 하겠다. (何新의 책은 출판사 ‘동문선’에서 ‘신의 기원’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이제 글을 맺고자 한다.
며칠 전 홍콩의 가수이자 배우였던 장국영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하니, 실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중국어도 공부할 겸, 장국영의 노래를 즐겨 부르는데 이제 더 이상 새로운 노래는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또 영화 ‘패왕별희’에서 보여주던 그 요염한 모습도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하니, 팬의 한 사람으로서 명복을 빈다. 쌍계사 벚꽃 길을 걸으면서 흥얼거렸던 그의 노랫말을 한 번 옮겨 보았다.
月亮代表我的心
저 달이 내 마음을 대신하네
你問我愛你有多深 我愛你有幾分
당신이 내게 묻기를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또 어느 정도나 되는지 물었지요
我的情也眞 我的愛也眞 月亮代表我的心
내 감정은 진실되고, 내 사랑 역시 진실하답니다, 저 달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
你問我愛你有多深 我愛你有幾分
당신이 내게 묻기를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또 어느 정도나 되는지 물었지요
我的情不移 我的愛不變 月亮代表我的心
내 감정은 움직이지 않고, 내 사랑 역시 변치 않아요, 저 달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
輕輕的一個吻 已經打動我的心
가볍디 가벼운 입맞춤은 이미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고,
深深的一段情 敎我思念到如今
깊고 깊은 사랑은 이토록 지금까지 당신을 생각하게 만들었죠.
你問我愛你有多深 我愛你有幾分
당신이 내게 묻기를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또 어느 정도나 되는지 물었지요
你去想一想 你去看一看, 月亮代表我的心
잘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보라구요. 저 달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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