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터키방문을 통해 터키의 미군 병참지원 허용이라는 성과를 내며, 50여년간 지속돼 온 터키와 미국간의 우방관계를 복원시켰다. 하지만 아직 미국과 터키간 긴장관계가 모두 없어진 것은 아니다.
터키의 주요언론은 "터키정부는 이라크내 쿠르드족이 석유를 판 돈으로 무기를 구입해 쿠르드족 연합전선을 구축, 터키를 위협할까봐 걱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터키뿐 아니라 쿠르드족을 박해했던 시리아, 이란은 모두 이라크 전쟁으로 촉발된 쿠르드족의 결집을 두려워하고 있다.
현재 터키 내의 1천2백만명을 비롯해 시리아, 이란에 흩어져 있는 쿠르드족은 3천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충분히 국가를 건설할 만한 숫자다. 이라크 북부 자치구의 쿠르드인들은 지금 이라크전에서 미군을 지원하며 그 대가로 독립국가 건설을 도모하고 있다. 하지만 터키 등 주변국은 더없이 날카로운 반응을 보여, 이 지역에는 일촉즉발의 긴장이 흐르고 있다.
과연 주변국들은 왜 이렇게 쿠르드의 움직임에 긴장하고 있는가. 다음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이코노미스트에 '쿠르드족 부활의 공포(Fears of a Kurdish revival)'라는 제하로 소개되었던 글의 주요 내용이다. 쿠르드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 싶다.
***유랑생활과 핍박으로 점철된 쿠르드족의 역사**
12세기 쿠르드족의 영웅 살라딘은 예루살렘을 점령하며 시리아와 이집트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을 통치했다. 하지만 살라딘이 죽은 이후 구심점을 잃은 쿠르드족은 사분오열되면서 유랑생활을 시작했다.
1차대전후인 1920년 영국과 프랑스 등은 세브르 조약을 통해 쿠르드의 독립을 승인했지만 3년뒤 이 조약내용이 바뀌었고 터키가 쿠르드족의 영토를 약탈했다.
터키에서 끊임없이 거센 저항을 하던 쿠르드족은 1984년 쿠르드 노동자당(PKK)의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을 중심으로 쿠르드족 독립을 위한 유혈투쟁을 개시했다. 하지만 PKK를 도왔던 시리아가 지원을 포기하면서 그 세력이 급격히 약화됐다.
터키정부는 1999년 오잘란을 체포해 사형선고를 내렸고, 지난해까지 쿠르드어를 금지시켰으며 심지어 '쿠르드인' 이라는 단어조차 쓰지 못하게 했다.
이란에 있는 쿠르드족은 대부분 수니파인데, 이란을 지배하고 있는 시아파들에 의해 갖은 탄압을 받았다. 시아파인 알라위테 왕조가 이끌고 있는 시리아에서도 쿠르드족에 대한 탄압은 목격된다. 시리아는 학교에서 쿠르드어 사용과 쿠르드어로 된 출판물 제작을 모두 금지시켰다.
쿠르드족에 대한 탄압이 가장 심했던 국가는 이라크이다. 이슬람 세계에서 '제2의 살라딘'을 자처하고 있는 후세인은 이란-이라크 전쟁이 끝난 후 쿠르드족 18만명을 처형했는데 그 중 5천명의 쿠르드인 집단촌락 거주자들은 독가스로 목숨을 잃었다.(일각에서는 이라크가 아닌 이란에 의한 독가스 학살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편집자주)
***쿠르드족 독립투쟁 또하나의 전쟁이 될 수도**
후세인은 손쉽게 쿠르드인들을 지배할 수 있도록 2백만명 가량의 이라크내 쿠르드인들에게 집단 촌락, 즉 자치구를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수십년간의 박해를 견디다 못한 이라크내 쿠르드인들은 걸프전 이후 어느 정도의 경제력과 독립에 대한 자각심을 갖게 됐다.
쿠르드인들은 UN의 석유수출금지 조항에 맞서 석유 밀수출을 했고, 지난 96년 UN의 석유수출금지가 해제됐을 때는 합법적으로 석유를 수출해 나름대로의 경제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라크내 쿠르드족의 양대파벌인 쿠르디스탄 애국연대(PUK)와 쿠르디스탄 민주당(KDP)는 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학교와 도로를 건설하기도 했다.
석유자본을 통한 쿠르드의 경제력과 이라크전으로 인해 더욱 강해진 쿠르드족의 단결은 쿠르드족이 살고 있는 국가에게는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터키는 쿠르드족이 산유량이 많은 유전지대인 모술, 키르쿠크를 장악하거나 독립투쟁을 기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라크 북부지역으로 병력파견을 준비했었다. 쿠르드족 문제가 또 하나의 작은 전쟁으로 발전하는 것을 걱정하는 미국은 터키를 설득해 곧 성과를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터키는 쿠르드족 민병대가 이라크 군대를 뚫고 키르쿠크 지역 10마일 이내까지 근접했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을 향해 성명을 발표했다. 터키의 국가안보위원회는 "미국은 터키가 민감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충분히 고려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한 마디로 "쿠르드인이 더 진격하는 것을 막아달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미국은 쿠르드족의 독립운동이 결국 또하나의 전쟁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이라크 지역으로의 터키의 군사력 개입을 막는 한편, 쿠르드족에게는 미군이 키르쿠크를 점령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터키, 이란 , 시리아와 나머지 이라크가 모두 쿠르드족 독립투쟁에 반대하는 가운데 이라크내 쿠르드족 지도자들은 "우리는 이라크전이 끝나면 단지 제한된 지역에서의 민주적인 자치정부를 만들것이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세계 제2위 매장량의 이라크 석유개발권과 전후 복구사업등의 노른자위를 노리는 강대국들의 줄다리기와 함께 독립을 꿈꾸고 있는 쿠르드족의 미묘한 움직임은 어지러운 이라크 전쟁의 이면을 볼 수 있는 한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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