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파병안 처리를 몇시간 앞둔 2일 낮 12시 국회앞. 긴장감이 팽배했다.
몸싸움에 입술이 터진 시위 참가자는 “국회는 나를 부당한 전쟁에 동조한 나라의 국민으로 만들지 말아달라”며 격노했고, 시위대에 깔려 정신을 잃은 동료를 끌고 나온 젊은 전투경찰은 억울한 표정만 지을 뿐 아무 말을 안했다.
그 시간, 빗장을 굳게 걸어잠근 국회 안. 일선 기자들에게 당장의 관심사는 파병안 처리가 오늘이냐 내일이냐였고, 여야 총무들은 찬반 토론자를 몇 명으로 정할 것이냐로 분주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179(찬성) 대 68(반대)은 숫자 이상의 의미는 없었고 표결 전에 이미 파병은 결정나 있었다.
***"지금까지 끌어온 것만으로도..."**
이날 오후 1시반부터 비공개로 진행된 여야 의원총회. 파병 반대파의 목소리는 '체념 반 하소연 반'이었다.
한나라당 박종희 대변인의 전언에 따르면, 대다수가 파병에 찬성한 한나라당에서 파병 반대파의 목소리는 말 그대로 소수파의 외로운 소리였다. 김홍신 의원은 “국론이 엇갈린 만큼 심사숙고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파병처리 연기를 주장했고, 서상섭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말대로 국익이 무엇인지 검증이 됐느냐”고 따졌다.
반전파가 많은 민주당 분위기는 좀 더 무거웠다.
김영환 의원은 의원총회장에 들어가며“지금까지 끌어온 것만으로더 반전평화운동의 전기는 마련되지 않았느냐”고 자위했다. 의총을 마치고 나선 김근태 의원은 “빨리 끝냈으면 하는 바람들이 많더라”고 한숨을 내쉬며 역부족을 인정했다.
반면에 양당 지도부 외에 파병 찬성파들은 반전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의총에서 무슨 얘기를 했었는지에 대해 절대로 말하려 하지 않았다. 철저한 함구,그 자체였다. 그러나 지난주 같은 자리에서 만났을 때, 이들 의원은 ‘국익’과 시민단체들의 ‘낙선운동 협박'에 대해 저마다의 분명한 목소리를 냈었다.
***반대파, “오늘은 국회 치욕의 날”**
오후 3시 본회의. 표결에 앞서 찬반 토론에 나설 인원은 8명으로 정해졌다. 파병반대 입장이 5명, 찬성 입장은 한나라당 박세환 의원 1명뿐이었다. 나머지 2명은 의무병만 파병하자는 수정안 지지발언자. 수정안이 부결되면 정부원안에 찬성하겠다고 밝힌 오세훈 의원까지 포함하더라도 비율은 5 : 2로 파병반대파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의총에서부터 공개석상인 본회의에 이르기까지, 파병 반대파는 마지막 목청을 높인 반면 찬성파는 이에 대꾸도 하지 않는 형국이었다. 찬성파들이 내세운 침묵의 이유는 “(파병안 처리를) 더 끌면 국론이 분열된다는 것”, 그리고 “전원위원회 등을 통해 논의가 그동안 충분했다는 것”이었다.
찬성파는 표결로 우위를 입증했다. 표결은 신속했다. 지난해 11월 미국으로부터 처음 파병을 요청받은 이래 5개월을 끌어온 논쟁을 국회 전자투표기는 3분이 채 안 돼 집계해냈다. 승리한 ‘국익=파병’ 논리만큼 단순명료했다.
표결결과가 전광판에 뜨자, 표결에 걸린 시간보다도 더 빨리 의원들은 썰물처럼 자리를 빠져나갔다.
반대파 의원 10명만 외롭게 남아 오후 6시 간단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성명에서 “오늘은 대한민국 국회가 평화의 길을 버리고 전쟁의 길을 선택한 치욕의 날로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저마다 “죄송하다” “부끄럽다” “침통하다”는 말만 거듭했다.
***파병안은 처리됐으나…**
이날 저녁, 파병안 통과 소식을 접한 국회 앞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져 있었다.
20대 한 대학생에게 소감을 물어봤다. 답은 “예감은 했지만 실제로 파병안이 통과됐다는 말을 들으니까 의원들이 더욱 괘씸하다. 잠깐 싸우는 것처럼 보여주더니 그것도 쇼였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허탈해 했다.
30대 한 시민에게 정부와 국회가 강조한 ‘국익’ 논리를 얘기해 봤다. 답은 “그럼 이렇게 많은 국민들은 나라 망치자고 여기 나와있단 말인가. 이 정도면 막가자는 얘기 아닌가. 민의를 대변하지 못한 국회의 핑계일뿐이다”라는 냉담한 것이었다.
시위대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만난 50대 한 시민의 반응은 달랐다. 그는 “잘 됐다. 진작 처리했어야 할 일을 여태 미룬 것 아니냐. 파병하지 말자는 사람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라고 말했다.
파병안이 통과됐음에도 국회 밖에선 여전히 입장과 논리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국회는 그동안 노무현 대통령에게 파병안 처리에 앞서 먼저 국회와 국민을 설득하라고 재촉했었다. 그러나 정작 국회는 과연 이같은 여론 분열을 설득하기 위해 그동안 무슨 노력을 기울였던가? 4월2일 저녁, 어둠에 싸여드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모습은 을씨년스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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