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강도를 더해가는 바그다드 공습으로 민간인 피해가 급증하자 분노한 이라크인들의 항전의지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전쟁이 베트남전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유사하다는 지적이 미국 언론에 의해 제기됐다.
미 일간지 볼티모어 선(Baltimore Sun)은 30일 이라크전쟁이 크게 네가지 점에서 베트남전과 닮아가고 있다며 이는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베트남전의 재연을 우려케 하는 4가지 요소로 보급선 확장에 따른 미군의 보급난, 이라크의 게릴라 전술, 이라크인의 완강한 저항의지, 전세계적인 반전운동을 꼽았다.
이번 전쟁이 91년 걸프전 형태로 끝날지, 60년대 베트남전의 수렁을 재연할지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미국내 언론의 이같은 보도는 미국인들이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베트남전의 악몽을 상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고 하겠다.
<사진: 베트남전쟁>
***확장된 보급선, 극심한 보급난**
볼티모어 선이 지적한 첫 번째 유사점은 지나치게 확장된 보급선과 유프라테스강물을 받아 먹어야할 정도의 극심한 보급난이다.
현재 4백 킬로미터가 넘는 미군의 보급선은 이라크 민병대와 준군사조직에 의해 위협받고 있고 선발 미군은 군량과 탄약, 물, 연료를 기다리고 있다.
볼티모어 선은 이번 전쟁의 '와일드 카드'는 페다인을 대표로 하는 준군사조직이라고 지적했다. 남부 이라크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페다인은 부대는 과거 제1차 세계대전에서 터키군이 영국군의 보급선에 공격을 가해 영국군을 패배시켰던 역사를 알고 있다. 당시 영국군의 보급선은 이라크 남부 바스라에서 중부 알 쿠트까지 길게 이어졌었다.
***민심을 등에 업은 게릴라 전술**
둘째는 게릴라 전술이다.
미-영군은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죽음의 부대"라고 칭한 페다인을 위시로 한 비정규군에게 크게 위협받고 있다. 비정규군들은 베트남전 당시 베트남인들이 선보이며 미군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게릴라 전술로 미군에 저항하고 있다. 북부 지역 일부 부족들은 자체 유격대를 만들어 미군의 북부지역 교두보 설치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두달전까지만 해도 미군 장교 중에서 페다인 부대라든가 비정규군을 언급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제 비정규군은 미-영군이 무시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미군 지상군 사령관인 윌리엄 왈라스 장군은 지난주 "적은 우리가 예상했던 적과 조금 다르다"며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싸울지 모르고 있다"고 털어놨다. 페다인의 유격전술은 미-영군의 뒷덜미를 서늘하게 하면서 바그다드 진격을 늦추고 있다.
후세인 철권통치에 시달리던 이라크인들이 미군을 '해방자'로 환영할 것이라는 예상도 크게 빗나갔다. 이라크인들은 미-영군으로부터 구호품을 받으면서도 고맙다고 말하기는커녕 도리어 '후세인'을 연호한다. 페다인 부대가 곳곳에 배치돼 있어 이라크인들의 입단속을 하기 때문이라는 보도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미군에 대한 이라크 대중들의 적개심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라크인들의 이같은 태도는 게릴라 전술의 핵심인 민심을 미군이 아닌 비정규군에게 기울게 하고 있어 비정규군의 게릴라 전술을 더욱 유리하게 하고 있다.
<사진: 지친 미군 병사>
***이라크인들의 완강한 저항의지 - 페다인은 '이라크의 베트콩'**
셋째, 이라크인들의 저항이 예상 외로 완강하다.
미-영군 수뇌부는 자신들이 세워놓은 전략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치 않고 있다. 리처드 마이어스 미 합참의장은 여전히 미군의 계획이 "훌륭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대한 신속히 후세인을 축출하겠다고 공언했던 그들의 전략이 실패했다는 것은 교착상태의 전황이 증명해주고 있다.
군사전략가들은 후세인 축출이라는 목표가 이라크군을 쿠웨이트 영토에서 쫓아내기만 하면 됐던 91년 1차 걸프전때의 목표보다 훨씬 어려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상전에 투입된 병력이 너무 적다고 지적해왔다.
지난 65년 남베트남 다낭항에 도착해 현지인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은 미군은 10년후인 75년 4월 5만8천여명의 전사자를 기록하며 베트남땅을 떠났다. 막강한 화력과 베트남인들의 환영에 도취된 미군은 '테러리스트' '죽음의 부대' '비정규군'이라고 불린 베트콩의 유격전에 무릎을 꿇었다.
페다인은 숫적으로는 30년전의 베트콩과 비교할 수 없지만, 그 열정과 야만성에서는 베트콩에 필적한다. 그들을 테러리스트, 죽음의 특공대, 비정규군 등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범죄행위가 무엇이건간에 이들은 게릴라전술을 원용해 실제 전투에 참여하고 있으며 전황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군사분석가 울맨은 페다인을 이라크의 베트콩이라고 부렀다.
***베트남전 이후 최대의 반전운동**
넷째, 전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반전운동의 물결이다.
이번 반전운동이 베트남전 당시와 다른 점은 시위가 미국이 아닌 전세계적 차원으로 일어났다는 것과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들끓었다는 점이다.
베트남전이 지지부진해지면서 미국을 뒤흔들었던 반전운동은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존슨의 재선을 가로막았다. 후임 닉슨 대통령도 베트남에 있는 미군의 수를 대폭 감축해야했고 결국은 완전 철수하며 미국의 실패를 인정했다.
텔레비전을 통해 전장의 참상을 볼 수 있었던 첫 번째 전쟁이었던 베트남전을 '거실의 전쟁'이라고 부른다면 이번 이라크전쟁은 '실시간 전쟁'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전황을 24시간 접하고 있다. 한편 각종 독립언론과 인터넷, 알 자지라로 대표되는 아랍권 방송은 미군의 발표만을 일방적으로 보도하는 미국계 방송을 압도하며 전쟁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이는 미국의 피해가 커질 경우 전쟁 중단의 목소리가 급속히 퍼질 수 있는 조건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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