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가 26일 국가기관 가운데 최초로 기관 명의로 이라크전 반대 입장과 함께 정부와 정치권에 파병안에 대한 신중한 판단을 권고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에 앞서 인권위 직원 30여명은 25일 인권위 홈페이지에 ‘인권을 유린하는 전쟁과 파병에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인권위, 정부와 국회에 파병 반대 권고**
인권위는 26일 오전 긴급 전원위원회를 열고 ‘이라크전에 대한 국가인권위 의견-반전ㆍ평화ㆍ인권’이란 제목의 이라크전 반대 성명서를 채택했다. 인권위는 이 성명에서 이라크전 파병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정부의 입장과 달리 파병에 반대하는 것으로 해석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인권위는 성명서에서 “우리는 이라크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일방적 침공이 UN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을 받지 않은 전쟁이며 수십만의 생명을 유린할 수 있는 반인도적 행위임을 비판하는 국제적 여론에 주목한다”면서 “정부와 국회가 이라크 전쟁과 관련된 사안을 결정함에 있어 헌법에 명시된 반전.평화.인권 원칙을 준수해 신중히 판단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지난 24일 정기 전원위원회에서 한 상임위원이 인권위의 입장 표명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제시한 데다 지난 25일 직원 30여명이 '파병 반대' 성명서를 발표하자 이날 오전 전원위원회를 소집해 이같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날 회의엔 공석중인 2명을 제외한 9명의 상임위원중 7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으며, 김창국 위원장은 병가로 인해 직접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전화상으로 지지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권위 직원, 파병 반대 성명서 발표하기도**
앞서 인권위 직원 30여명이 발표한 성명서는 이라크전 반대 뿐아니라 파병 반대 입장도 명확히 했다.
이들은 '인권을 유린하는 전쟁과 파병에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이라크에 대한 무력공격은 유엔 헌장이 금지하는 무력사용이며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우리 헌법에도 어긋나는 것이며 파병의 근거로 내세우는 미국과 동맹관계에도 위법한 전쟁까지 지원하는 의무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며 "우리는 우리정부가 추진 중인 파병에 대해서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인권위 직원들은 그러나 이같은 입장 표명이 ‘집단행동’으로 보이는 것을 의식, 인권위 의견서를 공식입장으로 대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각각 인권위와 인권위 직원들이 발표한 성명서 전문이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반전ㆍ평화ㆍ인권**
국가인권위원회는 ‘인류가족 모든 구성원의 고유한 존엄성과 평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의 자유, 정의, 평화의 기초’임을 천명한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민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향상시키는 고귀한 임무를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았다.
우리는 또한 국민의 생명권과 안전권, 국제평화의 유지와 침략적 전쟁을 부인하는 대한민국 헌법의 이념과 가치를 수호해야 하는 국가기구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지고 있다.
우리는 이라크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일방적 침공이 UN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을 받지 않은 전쟁이며 수십만의 생명을 유린할 수 있는 반인도적 행위임을 비판하는 국제적 여론에 주목한다.
우리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위협받고 있는 세계평화가 곧이어 한민족의 생존에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깊이 우려하면서, 국가인권위원회법 제19조 제1호 및 제25조 제1항의 규정에 따라 정부와 국회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의견을 표명하고자 한다.
1. 2002년 11월 채택된 UN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해체 불이행에 따른 무력침공을 명시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이 추진 중인 ‘후세인 제거’ 와 관련해서도 무력행위와 간섭행위를 정당화하지 않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UN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의 최고 협의기관이었으며, 미국은 필요할 때마다 UN의 결의사항을 앞세워 여타의 국가들을 압박해 왔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UN의 합법적 승인을 거치지 않은 채 시작된 전쟁에 반대한다.
2. 미국은 이번 전쟁에 최첨단 무기를 총동원하며 이라크 민간인의 희생은 최소한에 머물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의 무차별 공중폭격이 시작된 이후 이라크 민간인들의 희생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앞으로 본격적인 지상전이 시작될 경우 희생자의 수는 더 증가할 수밖에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라크 민간인의 무차별적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전쟁이 더 이상 지속되는 것에 반대한다.
3. 지금 전 세계는 반전 시위로 들끓고 있다. 대한민국의 700여개 시민사회단체 연대기구인 ‘전쟁반대 평화실현 공동실천’ 등도 전쟁반대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으며, 평화운동의 흐름은 시간이 갈수록 국민적 공감대를 얻고 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가 평화를 갈망하는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를 깊이 되새길 것을 촉구한다.
4.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것을 다짐하고 있으며, 헌법 제5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인권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가 이라크 전쟁과 관련된 사안을 결정함에 있어서 헌법에 명시된 반전ㆍ평화ㆍ인권의 원칙을 준수해 신중히 판단할 것을 권고한다.
5. 동서고금의 인류역사가 반증하는 것처럼 인권 없는 평화와 평화 없는 인권은 모두 허망한 착각에 불과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라크의 인권문제를 미국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것에 반대하며, 향후 이라크인들이 국제법과 국제인권기구의 협약에 따라 자국의 문제를 평화적ㆍ인도적으로 해결하기를 희망한다.
6. 1991년 걸프전 이후 수십만명에 달하는 이라크 민간인들이 질병과 기아로 사망했다. 그해 2월 13일 미군이 바그다드의 한 공습대피소에 떨어뜨린 폭탄에 희생된 민간인 400명 가운데 300명은 어린이였다. 또한 9․11 테러에 대한 보복공격으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무려 13,000여명의 민간인이 희생됐다. 이렇듯 현대 전쟁은 아무리 과학적으로 진행된다 해도 대규모 희생을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세계의 대부분 국가들은 승전국의 실리에 눈길을 보내면서도 패전국의 처참한 현실엔 관심을 쏟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가 이라크 전쟁의 희생자들이 인도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할 것을 촉구한다.
7.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라크 전쟁을 장래의 국익과 인도주의의 관점에서 숙고해야 한다. 이라크 사태는 향후 북한 문제와 직결될 수 있고, 지금의 결정은 한반도의 긴장이 격화될 경우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가 반전․평화․인권의 원칙에 입각해 이 문제에 접근할 것을 거듭 권고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상의 7가지 원칙에 근거해 다음과 같이 의견을 밝힌다.
1. 우리는 이라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전쟁에 반대한다.
2. 우리는 이라크의 정치사회적 문제가 군사력이 아닌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되기를 희망한다.
3. 우리는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가 이라크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
4. 우리는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가 이라크와 관련된 사안을 반전ㆍ평화ㆍ인권의 대원칙에 입각해 접근할 것을 권고한다.
2003년 3월 26일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을 유린하는 전쟁과 파병에 반대합니다**
1.“…제가 뭔가 잘못했다면 죄송합니다. 먹을 것을 좀 주세요. 아주 조금이라도 괜찮습니다. 당신네 나라 비행기들이 떨어뜨리는 폭탄 때문에 저는 죽을지도 몰라요. 어쩜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죠. 그래도 배고픈 건 싫어요. 그게 지금 내 운명이지만요. 음식을 주시든지, 폭탄을 주시든지, 어쨌거나 저는 기다릴 거에요.”
2001년 가을 미국이 아프카니스탄에서 전쟁을 벌일 당시, 여덟 살이었던 아프카니스탄의 한 소년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로부터 1년 남짓 지난 2003년 3월, 지금 이라크에서는 수많은 아이들과 여성, 무고한 시민들이 폭탄과 미사일 앞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습니다. 오늘 배달된 한 신문에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다친 한 이라크 소녀의 사진이 실렸습니다.
2. 1948년 12월 10일 인류는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했습니다. 이 세계인권선언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루고 난 후, ‘인권에 대한 무지와 경멸은 인류의 양심을 짓밟는 야만적 행위를 결과 했다’는 인류의 반성이었습니다. 아울러 ‘인류 가족 모든 구성원의 고유한 존엄성과 평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의 자유, 정의, 평화의 기초가 됨을 인정’한다는 희망을 담은 문서였습니다.
우리 국가인권위원회 직원들은 바로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민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향상시키는 일을 제 1의 임무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국내법뿐만 아니라 국제조약 등에 근거한 인권향상과 국제평화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사회의 인권향상이 국제사회에서도 이뤄지길 염원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이 인류 평화와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 세계인권선언에 위배된다고 판단하고, 이번 전쟁에 대해 ‘인권’의 이름으로 반대를 표명합니다. 우리는 미국의 주장대로 이라크가 대량학살 무기를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유엔을 통한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따라서 지금 미국이 벌이는 대 이라크 전쟁은 모든 인류의 인권보장을 위해 마땅히 중단되어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파병에 대해서도 반대합니다. 이라크에 대한 무력공격은 유엔 헌장이 금지하는 무력사용이며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우리 헌법에도 어긋나는 것입니다. 파병의 근거로 내세우는 미국과 동맹관계에도, 위법한 전쟁까지 지원하는 의무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울러 북한 핵 문제에 주도적으로 대처하기 위한다는 입장 또한 모든 인류의 생명을 평등하게 보장해야 하는 인권의 기본정신에도 위배됩니다. 따라서 이번 이라크 전쟁에 우리 정부가 파병한다면 이는 56년 전에 세계 인류가 인권의 존귀함에 대해 함께 한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3. 어느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세상 어느 구석에서 고통 받은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가 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세계의 중심은 이유도 모른 채 생명을 잃어가는 이라크의 아이들이며, 아무런 저항도 못하며 목숨을 내놓는 여성들입니다.
우리는 오늘 56년 전 인류의 약속을 다시 되새깁니다. 그리고 다른 무엇도 아닌 인권의 이름으로, 전쟁반대와 파병반대를 주장합니다. 모든 사람이 하늘로부터 부여 받은 인권을 갖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지킬 의무 또한 있기 때문입니다.
2003. 3. 25.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국가인권위원회 직원들의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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