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이후 최대의 전쟁특수가 될 것이라는 이라크 전후 복구 사업자 선정에 최근 미국 정부가 미국의 5개 대기업만 입찰할 수 있도록 지명한 사실이 밝혀지자 영국측이 발끈했다. 영국군도 미군과 함께 이라크전쟁에서 피를 흘릴 텐데 그 과실은 미국기업만 차지하느냐는 것이었다. 이처럼 이라크전쟁이 시작도 되기 전에 벌써부터 전후 복구 등 각종 사업이권을 둘러싼 국가간, 기업간의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사진: 이라크 유전>
***미 기업이 독점, 주로 공화당 인사들과 관련된 기업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지난 11일자 보도에 따르면 미 정부는 최근 전후 이라크의 병원 공항 항만 학교 등을 복구하는 1차 사업자 선정 입찰에 켈로그 브라운 & 루트(Kellog, Brown & Root:KBR)와 벡텔 그룹(Bechtel Group), 플루오르 그룹(Fluor Group), 파슨스 그룹(Parsons Group), 루이스 베르거 그룹(the Louis Berger Group) 등 5개의 미국 건설회사만이 참여하도록 결정했다(프레시안 13일 보도).
이 사업에 낙찰되는 기업은 미국 정부와 9억 달러에 달하는 사업권 계약을 하게 된다. 가디언에 따르면 사업자 선정의 주체인 미 국제개발처(USAID)는 이들 소수의 미국 대기업에게만 입찰 등록을 "은밀히" 통보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입찰자를 정한 데 대해 AID측은 '긴급상황'의 경우 경쟁입찰 대신 지명입찰을 할 수 있다는 미 연방정부 규정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AID의 대변인은 또 이 프로젝트가 미국인들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사업이기 때문에 미국 기업이 참여해야 한다면서도 미국 기업이 아닌 외국기업은 자기 나라 정부를 통해 사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지명입찰이 정치적 특혜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측에서는 입찰방식의 특이함을 지적하고 있다. 미 정부측에서 특정 사업을 지정하고 기업측에서 필요한 비용을 제시하는 형식이 아니라 9억 달러를 줄 테니 이 금액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적어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낙찰 기업은 약 8천만 달러의 이윤을 남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들 5개 기업들은 대부분 공화당 출신의 거물급 정치인들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KBR의 모기업인 현 부통령 체니가 지난 95년부터 2000년까지 CEO를 맡았던 세계 최대의 석유관련 기업 핼리버튼이 자회사이다. KBR은 이미 이라크전쟁 기간동안 이라크 유전 관리 프로젝트를 따냈다.
또 벡텔 그룹의 고위 임원 중에는 레이건 행정부 시절 국방장관을 지낸 캐스퍼 와인버거와 국무장관 조지 슐츠등이 포함돼 있다. 벡텔은 2000년 미 대선에서 정치헌금 5위의 기업으로 그중 3분의 2는 공화당에게 돌아갔다. 루이스 베르거 그룹은 현재 아프간 재건사업을 담당하고 있으며 벡텔 그룹과 플루오르 그룹은 부시 행정부의 주요 사업 실행자다.
***"더 큰 게 남아있다"**
미국 기업측에서는 1차 복구 사업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측의 무자비한 공습으로 파괴될 이라크의 각종 기반시설들을 복구하려면 9억 달러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전후 6개월이면 9억 달러가 모두 소진딜 것으로 보고 있다.
전후 이라크 복구사업에 관한 미국측의 구상은 AID의 13쪽짜리 보고서 '전후 이라크를 위한 비전(Vision for Post-Conflict Iraq)'에 담겨 있는데 그 주요 내용이 최근 윌스트리트저널에 의해 보도됐다. 이에 따르면 '경제적으로 중요한 도로'의 절반 이상, 약 2천4백km를 18개월내에 복구하며, 고압송전선의 15%를 수리하고, 5백50개의 발전기를 2달내에 공급하며, 수천개에 이르는 학교·병원 등을 복구해야 한다.
따라서 1차 복구사업은 그후 전개될 본격적 복구사업에 참여하게 되는 교두보가 되는 셈이다. 나아가 복구 과정에서 이라크에 자리를 잡은 미국 기업은 중동지역의 교두보를 확보하게 된다. 조지워싱턴대의 스티븐 스쿠너 교수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처음 진출하는 기업들이 현지인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한다면 엄청난 이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모두 이라크에서의 훌륭한 브랜드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보다 큰 사업이권이 남아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라크 석유 산업의 복구와 개발이다.
이라크 석유 시설을 90년 1차 걸프전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에는 대략 50억 달러가 소요될 것이다. 미 대외관계협의회(CFR)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라크의 석유 생산량을 현재의 두 배로 끌어올리려면 4백억 달러가 별도로 든다.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전쟁 직후 이라크 석유의 통제권을 이라크인에게 맡길지, 미 점령군이 가질지, 아니면 국제컨소시움에 갖게 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미 정부 내에서는 이미 후세인 정권과 프랑스, 러시아 등의 기존 계약을 무효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궁극적으로 미국측이
통제권을 행사할 것은 거의 분명하다.
이와 관련, 국제사회주의단체가 운영하는 홈페이지(www.wsws.org)는 지난 12일자 기사(Top U.S. firms vie for post-war Iraq contracts)에서 현재 부시행정부 및 공화당계 싱크탱크에서 전후 이라크 석유자원 처리에 관한 한 편의 보고서가 널리 읽혀지고 있다고 전하면서 이라크 석유자원은 다국적 석유기업들에 의해 분할될 것이 거의 분명하다고 전망했다.
'민영화와 석유산업: 전후 이라크 복구를 위한 한 전략(Privayization and the Oil Industry: A Strategy for Iraqi Reconstruction)'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빈사사태에 빠진 이라크경제가 회생하는 길은 풍부한 석유자원을 민영화하는 데 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관료적 관리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이라크 석유 생산 및 정유, 송유관 시설 등에 대한 민영화가 성공적으로 수행될 경우 다른 OPEC 국가들의 민영화에도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이에 따라 에너지시장에 대한 OPEC의 지배력도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라크의 경제적 번영은 쉽게 달성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석유산업을 비롯한 다양한 경제부문에 대한 대규모의, 질서정연하고 투명한 민영화 등 근본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미래의 이라크 정부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민영화를 통해 이라크의 막대한 석유이권을 미국의 거대 석유기업들에게 나눠주는 한편, 이를 통해 OPEC의 무력화까지 노린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같은 사업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유전 통제권 확보를 통해 충당하려 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5백억~2천억 달러의 전쟁비용과 최소 2백억 달러의 5년 주둔비용에 대한 계산도 포함되어 있다. 미국 기업이 참여하는 복구사업 비용을 이라크 유전에서 나오는 돈으로 충당한다는 것이다.
***미국 일방적 주도로 영국 발끈**
한편 1차 복구사업 입찰 경쟁에 미국 기업만을 참여시킨 것을 두고 미국의 최대 동맹국인 영국이 크게 반발하고있다.
미국의 사업 독점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영국의 국가이익에 대한 열렬한 수호자로 알려진 영국 노조 관료들이었다. 영국 산업 노조인 아미쿠스(Amicus) 대변인 리처드 오브라이언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경제적 보상도 없는 전쟁에 왜 영국이 참전해 미국과 함께 피를 흘려야 하느냐"며 따져 물었다.
이라크 무장해제 시한을 17일로 하자며 유엔 안보리에 새 결의안을 제출한 것은 영국이었다. 미국보다 강경한 모습까지 보였던 영국이 최근 '최종 시한 연기'를 말하며 한발짝 물러서는 태도를 취하자 미국은 '영국 없이도 전쟁을 강행하겠다'고 주장했다. 이라크 전쟁몰이 과정에서 둘도없는 동맹사이임을 과시했던 이들 두나라가 이같이 미묘한 갈등 양상을 보이는 것은 전후 복구와 유전 장악을 철저히 독점하려하는 미국의 '나홀로 정책'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wsws의 보도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최근 전후 이라크 복구 및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한 새로운 부서를 신설하고 그 책임자에 예비역 장군 제이 가드너를 임명했다. 가드너는 캘리포니아 소재 방위산업체인 SY 콜맨(Coleman)의 사장이었는데 이 회사는 이라크전쟁이 발발할 경우 이라크에 퍼부을 미사일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이라크전쟁의 본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즉 전쟁은 '최고의 장사'인 것이다.
wsws는 각국과 기업들이 이라크 침공이 시작도 되기 전부터 '볼썽사나운 아귀다툼'을 벌이는 것은 이번 전쟁이 대량살상무기 때문이 아님을, 그리고 석유와 이윤과 미국의 경제적 헤게모니를 위한 것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복구 사업권과 유전 장악을 위한 아귀다툼, '형제국' 영국에 대한 배제. 미국 일방주의가 보여주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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