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종 석관동 캠퍼스에서 일하는 식당 노동자 6명은 지난 9일 이 학교 총장과 총무과장이 파견법을 어겼다며 노동부에 진정을 냈다.
현대자동차, 이마트, 인천공항, 삼성전자서비스, 티브로드 등에 이어 국립대에서도 비정규직 불법 파견 논란이 일며, 만연한 간접 고용 문제가 다시 주목받는 모양새다.
"실체 없는 직원 상조회가 식당 노동자 고용"
한예종 식당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사업주는 형식상 한예종 '직원 상조회'다. 학교 총무과장이 당연직으로 상조회 회장을 맡으며, 그 외 회원은 한 명도 없다. 별도의 상조회 회칙이나 규약도 현재로선 찾을 수 없다. '유령 조직'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학교 관계자는 "상조회를 처음 만들던 1990년대 중반 상조회 규약도 만들었다는데, 지금은 사라져 직원들이 계속 찾아보는 중"이라며 "어딘가에 있다는 말은 들었다"고 말했다.
당연직 회장 이외엔 회원이 없는 한예종 상조회는 따라서 회비를 모으지도 않는다. 애경사를 챙기는 상조회 본연의 활동도 전무하다.
상조회가 하는 유일한 일은 '한예종 직원 상조회 구내식당 운영 규정'이란 문서를 근거로, 식당을 운영하는 일이다. 그러나 학교와 상조회 사이에 체결된 식당 운영에 대한 도급 계약이나 위탁 계약도 없다.
불법 파견 소송을 준비한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부 이민정 조직부장은 "한예종 상조회는 최소한의 실체나 독립성이 없는 조직"이라며 "학교의 한 부서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 한예종 식당 노동자들이 학교 구내식당에 부착한 대자보. 한편, 한예종 측은 상조회는 별도로 예·결산을 하고 독립성이 있는 사업자라고 해명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하얀) |
식당 노동자들의 '진짜' 사장님은 누구?
식당 노동자들은 처음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자신들이 한예종 소속 노동자가 되는 줄 알았다. 채용 면접을 진행한 사람이 학교 기성회 소속 영양사였기 때문이다.
13일 만난 식당 노동자 ㄱ씨는 "영양사가 와서 면접을 보고,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 '돈은 얼마를 받는다', '옷은 이거 입어라'라고 하니 당연히 '나도 저 영양사랑 같은 직원이 되는구나' 했다"며 "그러다 며칠 지나서 총무과 직원이 근로계약서를 쓰자고 들고 왔다. 계약서를 보고서야 한예종이 아니라 한예종 상조회로 들어가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예종 구내식당에는 학교 직원인 기성회 소속 노동자들과 상조회 소속 노동자들이 혼재돼 일하고 있다. 석관동 캠퍼스의 경우, 영양사는 기성회 정직원이고 주방장은 기성회 무기계약직이다. 나머지 식당 노동자 6명은 상조회 소속 1년제 기간제 또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다.
모든 업무 지시와 감독은 소속이 다른 영양사가 수행한다. 영양사가 매일 '일일 조리 계획서'를 상조회 노동자들에게 나눠주고, 연·월차 휴가나 여름휴가 역시 영양사에게 신청한다.
식당 노동자 ㄴ씨는 "휴가 가겠다고 그럼 누구한테 말하겠나. 계약서상 사장인 총무과장은 밥 먹으러 올 때 빼고는 만날 수가 없다. 식당 안에선 영양사가 '왕'이다"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따라서 자신들의 실제 상사는 총무과장이 아니라 학교 직원인 영양사라고 말한다. 같은 맥락에서, 진짜 사용자는 상조회장이 아니라 학교 총장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 한예종 석관동 캠퍼스 구내식당 1층 모습. ⓒ프레시안(최하얀) |
'진짜 사장' 찾아 나선 이유는 "눈에 띄는 차별 대우"
식당 노동자들은 '진짜 사장님을 찾아달라'며 진정을 낸 이유로 "눈에 띄는 차별 대우"를 들었다.
ㄱ씨는 "일하면서 보니, 이상한 차별이 많았다. 점점 '이건 아닌데' 싶은 일들이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상하잖아요"라며 "같이 식당에서 일하는데 누구는 기성회고 누구는 상조회고, 각각 월급도 다르고, 급여 체계도 다르고…. 우리는 기본급 116만6000원에 근속 수당 1년에 만 원씩 붙는데(최대 5만 원으로 제한), 기성회는 호봉제다. 같이 일하는데 우리보다 월급이 훨씬 많더라"라고 전했다.
ㄴ씨는 "기성회 직원들은 일 년에 한 번씩 단체 티셔츠나 점퍼 등을 맞춘다"며 "그러면 식당 영양사는 단체 티셔츠를 받고 우리는 못 받는다. 그 옷 한 벌을 가지고 싶다는 게 아니다.작은 거 하나하나 차별하는 것에 놀랐단 얘기다"라고 말했다.
식당 노동자들에 대한 총무과장의 '무시'도 한몫했다. ㄷ씨는 "우리 사장이라는 총무과장은 '맛있게 드세요'라고 해도 인사를 받은 적이 별로 없다"고 털어놨다.
차별과 무시 속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결국 지난 4월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앞서 지난해 9월 이 학교 청소 노동자들이 만든 노조에 식당 노동자들도 가세한 것이다. ㄱ씨는 "진짜 사장인 총장이 우리를 직접 고용해야 모든 논란이 사라진다"며 "노동부와 판사님들이 우리 사정을 잘 알아주실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서경지부 이민정 조직부장은 "한예종에 와서 상황을 들여다보니, 최근 삼성전자서비스 등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불법 파견 문제가 국립대에서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어 놀랐다"며 "도급이나 파견 사용이 너무나 만연해진 나머지,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간접 고용 문제가 모범을 보여야 할 국립대에서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13일 찾은 한예종 교정 곳곳에는 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응원하는 학생들의 메시지를 담은 대자보가 부착돼 있었다. ⓒ프레시안(최하얀) |
한예종 "상조회는 실체 있는 별도 조직…식당 운영 위해 만들었다"
불법 파견 논란에 대해 한예종은 법원의 해석을 우선 기다리겠다는 입장이다.
학교 총무과 관계자는 "상조회는 사업자 등록증을 별도로 갖춘 조직"이라며 "총무과장이 상조회 회장을 겸직할 뿐, 예·결산도 독립적으로 책정 및 집행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저렴한 가격으로 학생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다 보니, 식당 운영은 항상 적자"라며 "민간 업체를 통하는 도급이나 위탁을 아예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적자 날 것을 알면서 사업을 맡겠다고 나서는 업체가 없었다. 누군가는 식당을 운영해야 하니, 학생 복지 차원에서 상조회가 맡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6명밖에 되지 않는 매우 적은 인원인데도 학교가 직접 고용하지 않고 상조회가 이들을 고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엔 "식당 운영을 위해 상조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여타 근로 조건 등에 대해서는 노조와 최선을 다해 협의하겠다"며 "하지만 상조회 부분은 큰 논란거리가 아니라고 본다. 직원 협의회 형식으로 식당을 운영하는 대학이 여럿 있다. 법리 판단은 법원에 맡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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