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상록수' 김민기 작사·작곡)
25일 제16대 대통령 취임식 식전행사 3부 마지막에 가수 양희은씨가 하얀색 한복 저고리를 입고 나와 '상록수'를 부르는 순간, 취임식에 참석한 한 40대 여성은 소리없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서울 마포에 사는 40대의 주부 윤모씨는 "단상에 있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보세요. 그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 '상록수'가 울려 퍼지고 노무현씨가 대통령이 됩니다. 어찌 감격스럽지 않을 수 있겠어요"라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노래 '상록수'는 70년대 후반 재야 운동권 인사인 김민기씨가 작사·작곡한 노래로 독재정권의 압제를 이기고 꿋꿋하게 나아가자는 가사 내용 때문에 금지곡 목록에 오르기도 했던 대표적 민중가요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이 작년 11월 대선기간에 문화·예술인과의 간담회에서 기타를 치며 부르기도 해 새삼스레 주목받은 노래이기도 하다.
윤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난 삶이 '상록수'"라며 "그리고 앞으로도 그 푸르름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부정부패 해소·서민생활 안정이 최대 바람**
대구지하철 참사와 흐린 날씨 탓인지 다소 엄숙한 분위기에서 치러진 취임식에 참석한 많은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 취임에 대한 나름대로의 소회와 기대감을 표출했다.
취임식장을 찾은 이들은 공통적으로 '부정부패 없는 깨끗한 정부'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첫 번째 기대이자 주문으로 꼽았다.
채봉수(66. 의사. 부산)씨는 "부정부패 없는 깨끗한 정부와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최진안(22. 경남 마산)씨는 "노무현 정부에서 일하고 싶다"면서 "원칙을 지키는 정부, 부정부패 없는 정부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의도에 있는 회사에 다니다가 취임식이 있는 것을 보고 잠깐 들렀다는 박운상(38. 회사원)씨는 "정부가 바뀌었다고 해서 크게 변할 것도 없고 기대하지도 않는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이미지처럼 권력자와 가진 자들의 비리와 부정부패 만큼은 완전히 뿌리 뽑아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 좌절하지 않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근 벌어진 대구지하철참사 때문인지 안전에 대한 요구 등 '서민'을 위한 대통령이 되기를 강조하는 이들도 많았다.
친한 친구 2명과 같이 왔다는 최근일(36. 회사원)씨는 "결국 이번 사고로 피해를 본 사람은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서민들이었다"며 "노무현 대통령은 서민들을 위한 대통령을 표방했기 때문에 서민들의 안전 상태에 대해 전반적인 재조사와 개선을 우선적으로 해 나가길 바란다"고 했다.
경북 안동에서 온 류찬환(58. 농업)씨는 "농사를 짓는데 요즘처럼 울화가 치민 때는 없었다"며 "날이 갈수록 애물단지가 돼 가는 농업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탄식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줏대를 지켜 외산으로부터 우리 농업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일곱 살 난 딸과 함께 취임식에 참석한 김윤정(31. 서울. 건축업)씨는 "공약으로 내세웠던 것들을 충실히 지켜줬으면 한다"면서 "특히 여성근로자가 육아와 직장을 병행할 수 있도록 신경써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장애인인 강희철(37. 개혁국민정당 인천 남동구 지구당위원장)씨는 "참여정부에서는 우리 같은 서민과 정치 지도자 간에 거리가 좁혀져 국정에 정말 국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특히 소외받는 사람들, 나 같은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나이, 성별, 장애 유무, 국적 등에 의한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정당당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를 만들겠다" 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
대통령 취임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개혁 과제 등을 단호한 어조로 말할 때는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대전에서 왔다는 강인수(52. 사업)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조를 믿는다"며 "충청권 행정수도 공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했다.
부산에서 온 김천식(48. 자영업)씨는 "감격스런 역사의 순간을 직접 지켜보기 위해 가게를 닫고 아내와 함께 올라왔다"며 "새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지역감정 해소"라고 했다. 김씨는 "지역감정은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것이므로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지역감정 해소에 나서야 한다"며 "5년 뒤 '노무현 정부'의 업적을 평가 받을 때 '지역감정해소'가 가장 훌륭한 업적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취임사 중 노무현 대통령이 "정정당당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로 나아갑시다. 정직하고 성실한 대다수 국민이 보람을 느끼게 해드려야 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할 때는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취임식에는 청소년들도 많이 참석했다. 청소년 대표석에 앉은 이은주 신현정 양은(12. 여의도 초등학교) "학생들이 재능을 찾고 살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청주에서 온 '한국 어린이 신문' 기자 학생들은 "국회가 이렇게 큰 줄 몰랐다"며 "우리를 초대해 준 노무현 대통령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현재 중학교 3학년인 이한나 양은 "현재 엄마가 시켜서 과외를 세 개나 하고 있는데, 제발 법으로 과외를 금지시켜 좀 놀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취임식 참석 신청을 했다가 '당첨'이 돼 휴가를 내고 왔다는 육군 O사단 김형석 중위는 "노무현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참석하게 됐다"며 "군대도 많은 개혁들을 펼치고 있으며, 앞으로 군인들이 보다 더 자부심을 갖고 복무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도록 지원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을 믿는다"**
약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취임식이 끝이 난 뒤에는 사람들이 단상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 기념사진을 찍는 등 노무현 시대의 개막을 나름대로 자축하기도 했다.
노사모 회원이라고 자신을 밝힌 김재영(수의사)씨는 "노무현 대통령은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며 "노무현 대통령을 믿는다"고 했다.
취임식 마지막에 노무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나란히 내려올 때는 대부분 자리에서 일어나 격려와 환송의 박수를 치기도 했다.
전북 고창에서 온 김진환(43. 자영업)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에 대북 송금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기는 하지만, 그가 이룬 햇볕 정책의 업적 만큼은 길이 칭송 받아 마땅하다"고 하며 "그새(5년 동안) 너무 많이 늙으신 것 같다"고 아쉬워 했다.
국민 대표 8명과 함께 취임식 단상에 올랐던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식이 거행됐던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빠져 나가는 내내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5년 후에도 지금처럼 국민들의 환호를 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게 이날 취임식장에 참석한 국민들의 한결같은 기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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