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쟁을 가시화시키기 위한 미국의 외교전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미국은 경제 원조를 필요로 하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안보리 이사국들을 주요 타겟으로 삼아 "찬성표를 안 던지면 경제원조는 없다"고 경고하며 사실상의 매표(買票)행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안보리>
미국과 영국, 스페인이 24일 이라크가 평화적 무장해제의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는 내용의 새 결의안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한 가운데 미국과 영국은 안보리 이사국들의 찬성표를 얻기 위한 설득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차 결의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15개의 안보리 이사국 중에서 9개국의 찬성표를 얻어야 하고 무기사찰 연장을 주장하고 있는 상임이사국 프랑스와 러시아, 중국의 거부권 행사를 막아야 한다.
미국이 현재 확보한 찬성표는 미국 영국 스페인 불가리아 등 4표에 불과하다. 따라서 결의안 통과에는 최소 5개의 찬성표를 더 얻어야 한다. 독일과 시리아는 결의안을 찬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고 파키스탄은 기권이 유력하다. 나머지 이사국들에는 멕시코 칠레 등 설득이 어려운 나라들이 있어 통과 전망이 밝지 않다고 AP 통신이 24일 분석했다.
***"찬성표 안 던지면 엄청난 대가 치를 것"**
미국이 포섭 대상으로 삼고 있는 안보리 이사국은 앙골라 기니 카메룬 같은 아프리카 빈국들이다. 미국은 최근 결의안 통과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이들 국가에 고위 관리를 은밀히 파견, 이라크 전쟁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으면 "엄청난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경고하고 있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이 나라들은 오랜 내전을 끝낸 후 국가 재건을 위해 서구 국가들에게 경제 원조를 요청해온 바 있다. 아프리카 빈국들은 미국이 제공하는 경제 원조를 얻기 위해 미국을 지지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주재 앙골라 대사인 이스마엘 가스파 마틴은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오랫동안 우리는 국가 재건을 위한 도움을 요청해왔다"며 "아무도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지 않고 있으나 찬성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호세 에두아르도 도스 산토스 앙골라 대통령은 지난 20일 수도 루안다에서 월터 칸스타이너 미 국무부 차관보를 만났다. 당초 남아공 방문길에 올라던 칸스타이너 차관보는 방문기간 도중 일정을 변경, 앙골라 기니 카메룬 등 아프리카의 안보리 이사국 3개국을 모두 방문했다. 미국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의 한 외교관은 "아프리카에서 미국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시간이 다 돼가고 있고 아프리카는 우리를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멕시코 찬성표 얻기가 가장 어려워**
미국은 '아프리카 트리오(앙골라, 기니, 카메룬)' 뿐만 아니라 칠레와 멕시코가 찬성표를 던지도록 해야 한다. AP 통신은 이 나라들 중에서 미국의 설득이 가장 어려운 것은 멕시코라고 보도했다. 멕시코 정부가 국민들의 반전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고 미국이 멕시코와 거래할 수 있는 여지도 없기 때문이다.
<사진: 머리 감싸고 있는 장면>
지난 3주간 미 행정부는 마크 그로스맨 국무차관과 킴 홀메스 국제기구담당 국무장관보를 멕시코 시티로 보냈다. 멕시코의 외교관들은 그들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미국이 멕시코 정부의 난처한 상황을 무시하고 있다고 불평했다.
한 멕시코 외교관은 "미국은 실제로 '우리와 함께 하지 않는 나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외교관들은 부시 행정부가 멕시코를 윽박지르거나 설득할 수단이 거의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멕시코는 미국의 경제 원조를 받고 있지 않으며 미국과의 갈등 사항이었던 미국 내 멕시코인들의 법적 지위 문제도 일년전부터 쟁점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거부권을 갖고 있는 5개의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합의에 실패할 경우 멕시코와 칠레가 기권하기로 비밀리에 합의한 것도 문제를 복잡하게 하고 있다. 칠레의 한 외교관은 "우리는 어떤 쪽에도 이용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멕시코의 한 외교관은 "찬성표를 던지라는 압력이 강하고 경고도 구체적"이라며 이러한 미국의 전술이 빈센테 폭스 멕시코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중동, 동유럽 국가들에도 달러공세**
안보리 이사국들에 대한 설득작업을 계속하는 한편으로 미국은 원활한 군사공격과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고자 중동과 동유럽 국가들에게 각종 원조를 제공하며 '달러공세'를 펴고 있다.
프랑스의 AFP 통신은 23일 미국이 터키 영토 내 기지사용을 위해 약 3백억 달러의 지원을 제시하고 있고 중동지역 친미국가들에 대한 원조도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또 이라크 접경국인 요르단에 2억 5천만 달러의 경제원조와 전투기·미사일을 제공했고 이집트에는 20억 달러, 이스라엘에는 30억 달러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친미적인 노선을 굳히고 있는 동유럽 국가의 선두주자인 폴란드에 F-16 전투기를 헐값에 팔아넘기고 60억 달러는 첨단기술 분야에 투자하기로 약속하는 등 유럽국가들을 포섭하기 위한 달러외교에도 힘을 쏟고 있다.
미국이 이처럼 안보리 결의안 통과에 진력하는 이유는 전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반전여론을 딛고 전쟁에 대한 국제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AP 통신은 이는 명분에 불과하다며 전후 이라크 재건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을 유엔 회원국들에게 분담시키겠다는 미국의 계산속이 더 중요한 이유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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