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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서울대 혁파해야 교육이 산다"

<홍세화 위원의 교육개혁론> "시장주의에서 벗어나야"

"국가주의와 시장주의에서 벗어나는 '공화국 교육'이 바로 서야 한다. 그리고 공화국 교육은 사회구성원들에게 공화국의 시민이 되도록 해야 한다. 비판적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에서 언제 시민이 길러진 적 있었나. 시민이 길러지지 않은 것은 국가주의 교육이 작용한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배반한 의식을 많은 사회구성원들이 갖게 된 것이다. 그것도 제 돈 들여서…."

"한국의 국가주의 교육의 틀 속에서는 1천3백만 노동자가 자신의 존재를 배반한 의식을 갖게 된다. 이 틀을 깨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아무리 1천3백만 노동자라고 떠들어도 의식이 존재를 배반하는 현실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제도교육 과정에서 거의 대부분이 자신의 존재를 배반한 의식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파리의 택시 운전사'로 널리 알려진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이 요즘'공화국 공교육 문제'에 천착하는 이유다.

지난번 대선때 민노당을 공식지지해 한겨레신문내에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던 홍 위원은 최근 전교조 지부를 훑다시피 다닌다 했다. 교육개혁과 관련한 강연도 하고 일선 교사들로부터 생생한 현장음을 수집하기 위해서라 했다.

19일 오후 홍대 앞의 한 카페에서 홍 위원을 만나 요즘 그가 교육문제에 그렇게 집착하는 이유를 들어보았다.

***교육개혁의 핵심은 대학 서열화 타파, 서울대 개혁**

홍 위원은 노무현 새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두가지 과제로,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교육 혁명을 꼽았다. 왜 교육혁명인가.

홍 위원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병폐로 권력의 공고화와 재생산을 꼽았다. 이같은 권력 공고화 및 재생산의 근원이 다름아닌 '학벌'위주의 교육 시스템이라는 게 홍 위원의 지적이다.

홍 위원은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는 일생 동안 간다"며 "그 내부에서 네트워크가 형성되기 때문에 소위 학맥이 생기고 그 자체로 기득권이 된다. 서울대, 연,고대를 들어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기득권이 된다"고 지적했다.

홍 위원의 표현에 따르면, "기름때 묻히고 노동하는 사람들도 어떻게 하면 자식만큼은 계층상승이 될 수 있을까하는 기대를 교육에 거는 현실", "자라나는 아이들을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경쟁속에 몰아넣고 학습노동을 시키는 현실"은 모두 '학벌' 사회가 만들어낸 비정상성이다.

따라서 노무현 새정부가 공약대로 권력의 독점화를 방지하고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선 '서열화된 대학구조'를 평준화하는 것으로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게 홍 위원의 주장이다. 역대 정권처럼 고등학교 입시제도나 뜯어고치는 식의 멍청한 접근을 해선 해법을 찾을 수 없으리라는 지적이었다.

특히 서열구조의 정점에 위치한 '서울대 개혁'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지적했다. 그 방안으로 홍 위원은 "서울대가 대학원 중심 대학으로 가면서 학부는 지방 국립대에 개방해 그 학생들이 와서 공부하는 방안"또는 "백화점식으로 돼 있는 서울대를 축소, 미대나 음대를 폐지하고 법대 학부를 폐지하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홍 위원은 요즘 서울대 정운찬 총장이 추진중인'지역할당제'에 대해선 "서울대 출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 자체가 해소돼야 하는데, 그것을 일부 지역에 나눠준다고 해서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반대입장을 밝혔다. 또한 정 총장의 '서울대 제2캠퍼스' 구상에 대해서도 "결국 서울대를 더욱 공룡화하자는 얘기"라며 비판했다.

서울대 등의 개혁을 하려면 작심하고 '혁명적 차원'에서 단행해야지, 미봉책에 그쳐선 안된다는 주장이다.

***"공화국과는 전혀 무관한 교육현실"**

홍 위원은 인터뷰 도중에 왜곡된 우리나라 공교육 문제를 프랑스 교육 시스템에 견주어 설명했다. 이는 망명생활 동안 20여년간 두 자녀를 프랑스에서 교육시키며 느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한다.

홍 위원의 지적은 우리사회에 과연 교육에 '공적 개념'이 있는가에 대한 비판에 맞춰졌다. 그 근거로 홍 위원은 "프랑스에서는 모든 교육비를 국가공동체에서 부담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나라 교육과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점"이라며 "이는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교육받을 권리를 준다는 기본적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에 고마움을 느낄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프랑스에선 유치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사립학교가 거의 없다는 것도 사립학교 문제가 고질적 병폐로 지적되는 우리 현실과 다르다는 게 홍 위원의 주장이다. 홍 위원은 또 체제 순응과 질서, 안보 등 개인을 종속시키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우리 교육과, 개인의 창의력과 적성을 계발시키는 데 초점을 둔 프랑스 교육의 내용적 차별성도 강조했다. 결국 "우리는 민주공화국이라고 하면서도 공화국과는 전혀 무관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는 게 홍 위원의 결론이다.

홍 위원은 "개인에게 초점을 둔 교육을 펴고 있는 프랑스는 모든 교육비를 국가가 부담하는 데 반해, 정작 국가주의 교육을 펴는 한국에선 교육비를 거의 다 개인에게 부담을 시키고 있다"며 "이는 엄청난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프랑스의 학부모에게 한국의 교육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한다면 아마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적나라한 비유였다.

***시장주의 교육과 국가주의 교육의 유착**

홍 위원은 일제때의 국민교육으로부터 시작된 '국가주의 교육'과 50년대를 전후로 미국식 사립학교 제도를 받아들이며 생긴 '시장주의'가 우리 교육 시스템을 지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홍 위원은 "국가주의의 틀 속에서 한국의 교육과정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존재를 배반한 의식'을 형성하게 한다"며 "그 틀을 깨는 데 중요한 것은 제도 교육에서 자신의 사회경제적 조건에 상응하는 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체제순응적 교육과정이 노동자가 노동자 의식을, 농민이 농민 의식을 갖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홍 위원은 또한 시장주의를 수용한 결과 생겨난 사립학교들이 "국가주의 교육을 수용하고 온존시켰다"며 "이런 관계는 시장주의 교육과 국가주의 교육의 유착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같은 시장주의를 극명히 보여주는 것이 학생을 '인적 자원'으로만 보고 있음을 드러내주고 있는 '교육인적자원부'라는 명칭이라며, 이같은 부처 이름부터 즉각 뜯어고쳐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학력저하나 하향평준화를 이유로 고교평준화를 해제하자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하향평준화 됐다고 말하는 것은 고교평준화 이전에 명문학교라는 곳에서 조금 학력이 떨어진 것을 두고 하는 말"이라며 "그런 주장은 상층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기득권을 재생산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발언"이라고 일축했다.

홍 위원은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에 대해 "노 당선자 나름의 교육철학과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본다"며 "어려운 선택을 할 때 자신의 철학과 역사와 대면하는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19일 오후 홍대앞의 한 카페에서 1시간30분동안 진행된 홍세화 위원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개인 돈 내고 국가주의 교육 받는 공화국?**

프레시안 : 그동안 언론문제와 교육문제를 주요 화두로 제시해 왔는데, 특별히 교육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

홍세화 : 개인적인 특수한 경험이 가장 많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나도 한국에서는 나름대로 학벌사회에서 특권층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랬던 내가 프랑스에서 이주노동자의 처지가 되면서 급박한 변화를 경험했다. 그때 내 아이들이 세 살, 여섯 살이었다. 아이들이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한국의 교육현실과 끊임없이 견주게 됐다.

프레시안 : 프랑스 교육과 우리나라 교육과의 차이를 설명한다면.

홍세화 : 첫번째로, 가장 큰 차이이자 핵심적인 차이는 프랑스에서는 교육비가 안든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교육비를 개인에게 부담시키는데 반해 프랑스에서는 교육비가 전혀 없다. 6세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10년은 의무교육기간이다. 그때까지는 매 신학기마다 학용품도 국가에서 지급한다. 그 정도면 대충 이해가 될 것이다. 학교에는 돈이 보이지 않는다. 개인에게 돈을 달라고 할 이유가 없다. 모든 교육비를 국가공동체에서 부담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나라 교육과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점이다.

이는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교육받을 권리를 준다는 기본적인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에 고마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소위 누군가 공부를 해서 출세를 했다면, 그는 국가가 지급한 돈으로, 국가에 의해서 공부를 한 것이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고마움과 사회 환원의식을 느낀다.

두번째로 중요한 차이는 프랑스는 문자 그대로 공교육이라는 것이다. 만 3세부터 유치학교 3년, 초등학교 5년, 중학교 4년, 고등학교 3년을 다니고 대학입학 자격시험을 보고 대학에 들어가게 된다. 유치학교부터 대학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국공립이다. 사립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립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나, 고등학교 학생 중 8% 정도를 수용하는 카톨릭계 학교 정도에 국한돼 있다. 이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를 위한 것이다. 이것 말고는 전부 공립이고, 대학은 국립이다. 사립학교조차도 교사 임용이나 운영에 있어 모두 공립에 준하고 있어 문자 그대로 유치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공교육이다. 그것도 우리 교육과 차별화되는 점이다.

세번째로는 교육 내용이다. 우리는 제도교육 과정에서 엄청난 국가주의 교육을 받는다. 국민윤리라고 불리우는 체제 순응교육, 질서, 안보교육을 받는다. 학교 들어갈 때부터 복장단속, 두발단속 등으로 일찍부터 질서에 복속시키는 교육을 일상화한다.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다 하더라도 그 안에는 질서이데올로기, 안보이데올로기 등 개인을 종속시키는 내용이 분명히 담겨있다.

요컨대 체제를 위한 교육, 각 구성원들의 창의력이나 개인의 자유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체제에 순응시키는 교육이다. 좀 나은 표현으로 등장한 것이 국가경쟁력을 강조한 것인데, 경쟁을 위해 수단화하는 교육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교육은 국가주의 교육이다.

그에 비해 프랑스는 사회 자체가 개인주의 사회라서인지 몰라도, 교육의 초점은 개인에게 맞춰져 있다. 당연히 조회니 종례니, 두발단속 같은 것은 없다. 교육의 초점을 개인의 창의력이나 개성과 적성을 끄집어내서 계발시키는데 두고 있다. 우리와는 반대다. 말하자면 우리는 집어넣야 한다는 주입이라면, 프랑스는 갖고 있는 것을 끄집어낸다는 교육철학을 갖고 있는 것이다. 국가주의 교육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또 한가지 현실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것은 (프랑스는) 대학이 평준화돼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 학생들은 단 한번도 석차를 받아보지 않는다. 대학입학 자격고사를 통해 대학에 들어가게 되는데, 만점 20점 중에 평균 10점이면 입학할 수 있다. 이것도 수능같은 줄세우기 고사가 아니다. 그래서 수험생이면 약 70% 가량이 합격이 되고, 합격된 학생 비율은 전 사회구성원에 대비하면 52%이다. 모든 사회구성원의 52%가 대학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내 딸 아이가 고등학교 2학년때 가정통신문이라는 것을 처음 받아봤다. 그 내용을 소개하자면, '아직 성장하는 아이인데 어떻게 밤 1시를 넘겨 재우셨습니까.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 주십시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딸 아이에게 물어봤더니 새벽 2시까지 소설책을 봤고, 그 다음날 학교에서 깜빡 졸았다가 지적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아이들이 밤늦게 과외를 할 이유도 없고, 0교시나 보충수업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우리 두 아이는 아침 7시 전에 깨 본 일도 없고, 파티에 가거나 축구경기를 보는 일 말고는 공부 때문에 1시 넘어서 잔 일도 없다.

이렇게 상대평가나 줄세우기 교육이 아니고, 20점 만점에 10점이면 대학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 여유있는 생활을 할 수 있다. 이 점은 학생들이 고등학교 때까지 입시에 치이는 삶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고 동료, 친구들과 경쟁하는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주의자이되 경쟁에 찌들지 않은, 그래서 연대할 수 있는 길을 교육 과정에서 마련해 주는 것이다.

그럼 프랑스 학생들이 엄청나게 교육을 시키는 우리 아이들에 비해 좀 뒤떨어지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그건 좀 다른 각도에서 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프랑스 학생들은 일찍부터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을 받기 때문에 폭넓은 독서 시간이 보장된다. 자율이 교육의 기본이기 때문에 토론 중심의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개인에게 초점을 둔 교육을 펴고 있는 프랑스는 모든 교육비를 국가가 부담하는 데 반해, 국가주의 교육을 펴는 한국에선 교육비를 거의 다 개인에게 부담을 시키고 있다. 이런 엄청난 모순이 어디서 오는 것인가부터 문제의식이 출발한다.

***"권력 재생산의 본질은 학벌"**

프레시안 : 그동안 전교조 지부도 자주 방문하고, 교육과 관련된 강연도 자주 해온 것으로 아는데, 실제 교육 일선에서 활동하는 교사들로부터 주로 어떤 말들을 듣나.

홍세화 : 전교조 교사 분들도 도대체 교육이 이래선 안되겠다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을 이런 질곡 속에 남겨둘 수 있느냐는 말이다. 또 국가주의 틀이 유지되는 교육에 있어 교장의 위치도 지적하는 문제다.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학교에서 권위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틀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구조적으로 국가주의 교육에 철저하게 순응하는 사람이 교장이 되도록 돼 있다. 왜냐하면 교장에 의해 점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를 깨야하는데, 여기서 사회구성원들의 인식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프레시안 : 모든 정부가 공교육 활성화를 내세웠지만 결과적으로는 황폐화만 가속화했다. 원인이 어디에 있나.

홍세화 : 당연히 학벌문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선 힘의 논리가 작용해 왔다. 사익추구집단이 극우 헤게모니 아래에서 주도권을 쥐어온 상황에서 계층의 이동이나 순환은 능력에 의해 이뤄질 수 없다. 사회 귀족들에 의해 빈익빈 부익부가 반복되는 것이다. 그런 틀 속에서 아주 미세하게 계층상승의 기회를 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교육이기 때문에 모두가 매달리는 것이다.

예컨대 기름때 묻히고 노동하는 사람들도 어떻게 하면 자식만큼은 계층상승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교육에 거는 게 현실이다. 만약 이 사회가 좀 더 평준화돼 있고, 소득도 편차가 줄고, 사회보장이 잘 돼 있다면 그 정도의 아우성은 아닐 것이다. 요컨대 장래에 대한 불안심리가 겹쳐져 지독한 학벌 사회를 공고화시키는 게 현실이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사회 전반의 시스템이 변화하지 않는 이상, 교육개혁만 가지고는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것 아닌가.

홍세화 : 왜 사회 구성원들이 불안해하겠는가. 그건 제 자식이 나중에 밥이나 제대로 먹겠느냐, 아플 때 병원이나 제대로 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런 불안을 해체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중요하다. 프랑스와 견줘보면, 교육비가 없다는 것 자체로 일차적인 불안요인은 줄어든 것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물론 이 문제를 좀 더 확대하자면 사회보장의 확대와 계층간 소득격차를 줄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같은 일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닐 텐데,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교육의 문제, 좀 더 좁히자면 서열화된 대학 구조를 평준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다.

***혁명적 차원의 서울대 개혁이 시급**

프레시안 : 대학 서열화 문제는 결국 학벌 문제로 연결이 된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서열구조가 사회계층을 재생산한다는 얘기인데….

홍세화 : 그렇다. 지금과 같은 서열 구조로는 신자유주의자들이 강조하는 국가경쟁력 면에서도 전혀 뒤떨어지는 것이라고 본다.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는 일생동안 간다. 그리고 그 내부에서 네트워크가 형성되기 때문에 소위 학맥이 생기고 그 자체로 기득권이 된다. 서울대, 연,고대를 들어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기득권이 된다. 권력 재생산의 본질은 학벌이다. 이 구조는 효율면에서 봐도 합리적이지 않다.

또 하나는 그렇기 때문에 서울대, 연,고대에 간 사람은 입학했기 때문에 (대학에서) 공부를 안한다. 못간 사람은 못갔기 때문에 공부를 안한다. 이것은 프랑스와 단적인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한국의 대학은 공부해서 졸업하는 것이 아니라 등록금을 내서 졸업하는 것이다. 대학을 거친 사람들에게 '대학 때 공부했느냐'고 물어보라. 그에 비하면 프랑스나 독일의 경우엔 대학입학 자격고사를 통해 입학을 하지만, 공부를 하지 않으면 가차없이 낙제다. 그래서 일반과정이라고 부르는 대학 1, 2년 과정을 2년에 마치는 비율이 28%에 불과하다. 3년에 그 과정을 마치지 못하면 물러나야 한다. 그 결과 56%가 물러나고 3학년이 되지 못한다. 그만큼 대학이 공부를 하지 않으면 진급이 안되도록 돼 있다.

대학가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물론 프랑스에도 찻집이 있긴 하지만, 한국처럼 대학가가 위락가인 경우는 없다. 한국엔 대학가에서 책방을 보기 어렵지 않나. 그만큼 한국 대학생들이 공부를 안한다는 것이다. 도서관에서는 주로 고시공부를 한다.

이렇다면, 기초학문이 제대로 돼야 기능적인 측면이 일어설 수 있다는 점에서 볼 때, 기능적인 측면에서 국가경쟁력을 따져봐도 한국 대학이 뒤떨어진다. 따라서 프랑스나 독일처럼 대학을 평준화하는 편이 국가경쟁력 면에서도 앞설 수 있다.

프레시안 : 대학 서열화의 정점에 서울대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대 개혁에 관해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그 때문일텐데, 이와 관련해 특별한 방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있는가.

홍세화 : 예컨대 서울대 장회익 교수가 말한 서울대 개방화 등도 모색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학부를 지방국립대에 개방하자는 것이다. 학부생을 뽑지 말고 대학원 중심 대학으로 가면서 학부는 지방 국립대에 개방해서 그 학생들이 와서 공부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또 백화점식으로 돼 있는 서울대를 축소할 필요가 있다. 미대나 음대가 서울대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권력학교 격인 법대도 학부를 없애고 대학원 중심으로 가야한다. 프랑스에서는 '권력학교'와 '학문학교'라는 개념이 있다. 권력을 지향하는 학교냐, 학문을 하는 학교냐에 따른 구분이다. 프랑스에는 대학은 평준화 돼 있으나 아주 극소수의 엘리트를 위한 학교가 여러 개 있다. 그곳에 가기 위해선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권력학교에서는 학위를 받지 못하게 돼 있다. 그런 측면에서 서울대도 권력학교인 법대를 떼내는 방법도 모색할 수 있다. 여러 가지 방안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지역할당제'보다는 '인재할당제' 도입해야**

프레시안 : 최근 서울대 정운찬 총장이 지역할당제 등의 방안을 제시했는데, 이에 대해선 어떤 견해인가.

홍세화 : 그것은 가지에 불과하다. 오히려 지역할당을 하면 어떤 면에서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과거 고등학교 평준화 전에는 지역의 권력을 쥔 고교가 있지 않았나. 예컨대 인천의 제물포고나 전주의 전주고 등이 그렇다. 지역할당제를 하면 지역에서 그런 문제가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권력이다. 누구든, 어디서건 서울대 출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 자체가 해소돼야 하는데, 그것을 지역에 나눠준다고 해서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지역에 남으면 또다시 지역 권력을 쥐게 될 것이고 대부분의 경우, 나중엔 서울에서 활동할 것이 분명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서울대 문제가 자꾸 얘기가 되니까 어떻게든 비껴가려는 의도로 이해된다. 문제의 본질을 피해가는 것이기 때문에 지역할당제는 전혀 의미가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프레시안 : 문제의 본질이라고 한 권력의 재생산 문제는 어떻게 해소될 수 있는 것인가.

홍세화 : 예를 들어 서울대를 존속시킨다고 할 때, 서울대생들이 권력에서 가질 수 있는 한계를 정하자는 것이다. 사법시험이나 공무원 시험 등에서 서울대 출신을 몇%로 한계를 짓자는 것이다. '인재할당제'다.

프레시안 : 그런 것을 서울대에만 적용하자는 것인가 다른 학교에도 모두 적용하자는 것인가.

홍세화 :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다. 소위 SKY대(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존속시킨다면 그런 식으로 권력을 나누는 인재할당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프레시안 : 정운찬 총장은 얼마 전 서울대 제2 캠퍼스 구상도 밝힌 바 있다. 서울대 축소, 내지 폐지를 주장하는 홍 위원 의견과는 반대되는데.

홍세화 : 여러 가지로 문제가 있다. 제2 캠퍼스는 결국 서울대를 더욱 공룡화한다는 얘기다. 서울대라는 이름을 바꿔서라도 다른 곳으로 이전하겠다면 모르겠다. 지금 서울대를 그냥 두고 제2 캠퍼스를 만든다는 것은 서울대를 더욱 크게 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 해결과는 전혀 관계없다고 본다.

프레시안 : 국가경쟁력 측면에서도 우리 교육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서울대가 국내에서는 명문이라지만 국제 경쟁력에서 뒤쳐진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나.

홍세화 :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서울대에 들어가면 공부를 안해도 되는 분위기가 첫번째다. 두번째는 대학가기까지 너무 치였다. 지친 것이다. 그러니까 공부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또 하나는 자율성의 부족이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꾸준히 나아가야 하는 것인데 그러자면 자율성이 몸에 배야 한다. 장기적인 자기 반성의 과정이 자기에게 부족하다. 프랑스에서 석학이 나오는 것은 대학 교육 이후에도 끝없이 공부하는 대기만성의 자세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쟁 시스템에서는 그런 것을 죽이고 있다. 그리고 워낙 경쟁에 익숙하다 보니 자기와의 싸움에는 익숙치 않다. 남과의 싸움에서 이겨 1등만 하면 되는 것이지, 자신과 끝없이 싸우지 못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큰 틀에서 보자면 홍 위원이 말하는 교육개혁의 절차나 우선순위는 대학교육의 개혁이 돼야 중등 교육 개혁이 수반될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홍세화 : 그렇다. 제도적인 면에서는 고교평준화를 놓고 하향평준화니 뭐니 하지만 그것은 대학이 평준화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평가할 만한 사항이 못된다. 어차피 대학이 서열화된 상태에서 고교 평준화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것이다.

특성화교육 아무리 실시해도 쓸데 없다. 신자유주의적인 논리로 만들어진 자립형 사립고나 외국어고등학교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고등학교는 모두 서열화돼 있는 대학을 가기 위한 준비코스다. 특성화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정말 특성화를 제대로 하려면 서열화된 대학 구조를 깨는 것이 우선해야 한다.

***국가주의+시장주의 교육**

프레시안 : 대학교육과 중등교육의 사이에 있는 입시제도 역시 어김없이 문제로 지적된다.

홍세화 : 입시를 자격고사로 고쳐야 한다. 지금처럼 수능같은 시험제도 하에서는 학생은 자질이나 적성에 따라 대학에 가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줄세워진 점수에 따라 간다.

그뿐 아니라 입시제도는 아이들을 말할 수 없이 억압한다. 나는 교사들과 학부모들에게 충격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경쟁속에 몰아넣고 학습노동을 시키는 현실을 외면해선 안된다. 사회적인 인식의 성숙 문제다. 프랑스의 학부모에게 한국의 교육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한다면 아마 폭동이 일어날 것이다. 여기엔 학생들을 억압함으로써 사회적 불만과 비판의식을 잠재울 수 있는 부수효과도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교육 내용의 측면에서 우리 교육의 현실을 지적하자면.

홍세화 : 앞서 국가주의 교육과 개인의 창의력을 중심에 둔 교육을 비교한 것과 관련이 된다. 한 사회의 정치사회 현상들의 밑에 깔려 있는 것은 의식이다. 모든 것이 그렇다. 예컨대 흔히 신문을 사회의 거울이라고 한다. 여기엔 조중동(조선, 중앙, 동아)이 75%를 점유한 시장왜곡도 있지만 그런 것도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의 표현이다. 지하철이 하루만 파업해도 시민들은 불편하다고 아우성치는 것도 사회 의식의 반영이다.

그런 의식이 한국에서는 어디서 형성되나. 사회화 과정에서 의식이 획득되는데 교육과정이 주종을 이룬다. 한국의 교육과정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존재를 배반한 의식을 형성하게 한다. 맑스주의에서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하지 않나. 노동운동을 하는 분들이 1천3백만 노동자라고 말하고, 농민운동을 하는 분들은 4백만 농민이라고 얘기한다. 맑스주의가 얘기하는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바탕 위에 있는 말이다. 그 말은 진리인 것은 분명하다. 노동자는 노동자 의식을 가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한국의 국가주의 교육의 틀 속에서는 1천3백만 노동자가 자신의 존재를 배반한 의식을 갖게 된다. 이 틀을 깨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아무리 1천3백만 노동자라고 떠들어도 의식이 존재를 배반하는 현실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제도교육 과정에서 거의 대부분이 자신의 존재를 배반한 의식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조중동도 왜 문제가 되나. 그들은 사회 상층부나 자본가들의 입맛에 맞는 논지를 펴고 있다. 그런데도 잘못 형성된 사회구성원들의 의식을 일상적으로 확인시켜 준다. 그 틀을 깨는 데 중요한 것은 제도교육에서 사회경제적 조건에 상응하는 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내가 전교조 선생님들에게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부분이다.

프레시안 : 우리 교육제도가 일본과 많이 닮아있다고 한다. 프랑스나 독일 등 유럽 풍토와 상반된 풍토가 만들어진 배경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홍세화 : 국가주의 교육과 연결된다. 우리나라에 공교육이 시작된 것은 일제 때 국민교육부터다. 국민은 일제 하의 황국신민에게 충성하는 국민이었다. 황국신민의 의미를 가진 국민학교를 우린 93년까지 유지해 왔다. 국민교육이 국가주의 교육의 핵심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 후 분단이 되면서 일제에서 교육했던 세력이 헤게모니를 쥐면서 반공교육을 받아들인 것이다. 우리 세대의 경우에는 반공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교장, 교감 훈화는 전부 그런 내용이었고, 5.16 이후에는 혁명공약, 국민교육헌장을 외워야 했다. 나는 아직까지도 혁명공약 1조를 외우고 있을 정도다. 그런 철두철미한 국가주의 교육을 받지 않았나. 일제때 국가주의 교육이 접목된 것이 그대로 유지된 것이다.

또한 50년대를 전후로 교육열이 늘어났다. 우리가 공화국이라면 당연히 국가의 비용으로 교육을 해야 했는데, 국가가 그럴 의사가 없었다. 그래서 시장화가 진행됐다. 50년대에 미국에서 공부한 정원식 같은 사람들이 교육계를 주름잡고 정책을 폈다. 들끓는 교육열을 시장화를 통해 흡수했다. 우후죽순처럼 사립학교가 생겼다. 중학교의 경우에는 40% 이상, 고등학교는 60% 이상, 대학교는 90%가량이 사립학교다. 시장주의가 침투해 들어간 것이다.

우리가 교육 모델로 삼은 것이 영국이나 미국이다. 영국이나 미국은 강력한 장학제도가 있다. 그런 장학제도는 들여오지 않고 순전히 사립화만 본떠와서 학교가 모두 장사꾼이 된 것이다.

결국 국가주의와 시장주의가 함께 맞물려 있는 셈이다. 여기서 역설적인 것은 국가주의와 시장주의는 서로 충돌해야 하는데 충돌하지 않았다. 이유는 사립학교들이 국가주의 교육을 수용하고 온존시켰기 때문이다. 국가 스스로도 교육의 시장화에 박차를 가했다. 서로 이해관계가 만난 것이다. 그 이해관계를 정확하게 드러내는 단면이 교육의 최일선에 있는 교육부 관료들에겐 다음 자리가 보장된다는 것이다. 사립학교, 사립재단 이사다. 이런 관계는 시장주의 교육과 국가주의 교육의 유착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민주공화국이라고 하면서도 공화국과는 전혀 무관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프랑스에서 "왜 너희들은 국가에서 교육비를 내고 국가중심적인 교육은 펴지 않는데도 모든 교육을 국가공동체에서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들의 답변은 간단했다. "공화국에서는 당연히 그런 것 아니냐"는 것이다. 공화국이 갖고 있는 의미가 우리에겐 완전히 비어있다. 공적인 일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공화국이 우리의 경우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막연한 생각이지만, 옛날 사람들도 사회를 운영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공익이었다. 우리에게도 전통적으로 홍익인간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그것은 서양의 퍼블릭(공화국) 개념과 거의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우린 홍익이라는 개념은 상실해 버렸고, 공화국이라는 말은 헌법 제 1조에 박아놨지만, 그 의미를 상실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다.

그런 측면에서 국가주의와 시장주의에서 벗어나는 공화국 교육이 바로서야 한다. 그리고 공화국 교육은 사회구성원들에게 공화국의 시민이 되도록 해야 한다. 비판적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에서 언제 시민이 길러진 적 있었나. 시민이 길러지지 않은 것은 국가주의 교육이 작용한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배반한 의식을 많은 사회구성원들이 갖게 된 것이다. 그것도 제 돈 들여서….

프레시안 : 지난해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던 때에, 공화국 개념을 가진 후보들이 누가 있냐고 지적했던 것으로 안다. 이제 공화국의 공교육을 노무현 당선자가 책임지게 됐는데, 교육정책과 관련한 노 당선자의 마인드를 평가하자면.

홍세화 : 지금 내부에서 많은 논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식 신자유주의적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하고 박치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누가 교육부 장관이 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인데, 노 당선자 나름의 교육철학과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시민단체 '학벌없는 사회'에서 노 당선자를 초청해 토론을 했을 때, 노 당선자는 "말 한마디만 잘못 꺼내도 조중동에서 아우성친다"는 표현을 쓰면서 학벌 문제나 교육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런 생각이 어떻게 나타날지 관심을 갖고 보고 있다.

프레시안 : 역대정부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교육 문제는 사실 건드려 봐야 본전도 못 뽑는 분야였다. 노 당선자에게도 부담이 아닐 수 없을텐데, 새 정부의 교육정책에 조언을 한다면.

홍세화 : 내가 그럴 말을 할만한 입장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결국 어려운 선택을 할 때, 자신의 철학과 역사와 대면하는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

***대학 서열화 혁파가 초중등교육 정상화 지름길**

프레시안 : 대학개혁을 일순위로 지적했으나 초등 교육이나 중등 교육과정에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어 보인다. 앞서 잠깐 언급한 사립학교 문제 등은 대학만의 문제는 아닌 듯 한데.

홍세화 : 중고등학교의 경우 사립학교는 교사의 봉급이건 뭐건 국가에서 내고 있다. 재단에서 내는 것은 거의 없다.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받으면서도 국가에서 97%를 지원받는다. 그러면서 학교 운영은 관료적이고 권위주의가 쌓여 비리가 속출한다. 교육당국과의 유착도 심하다.

이런 비상식적인 것을 상식으로 돌리는 것이 노무현 정권 하에서는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의지만 있다면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세력이 곳곳에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교장선출 보직제가 상당히 중요한 고리다. 지금 국가주의 교육과 권위주의적 교육이 교장이라는 고리를 통해서 되고 있다. 학교 자체의 비민주적 구조도 교장이라는 구조 때문에 나온다. 교장선출 보직제를 하면 그 고리가 끊어질 것이다.

이같은 정책은 물론 행정력을 통해서도 추진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교육부는 현재 완전한 수구의 아성이라고 보고 있다. 내가 알기로는 다른 위원회를 통해서 교육정책일 밀어붙이는 복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프레시안 : 공교육의 정상화와 동전의 양면인 것이 비대한 사교육시장의 문제다.

홍세화 : 그렇긴 하지만 사교육에 무슨 조치를 취한다고 해서 달라지진 않는다고 본다. 사교육 문제는 미래에 대한 불안심리와 자기 자식만큼은 SKY대에 보내고자 하는 '로또 심리'가 겹쳐진 현실이다. 결국 그것을 없애기 위해선 서열화된 대학구조를 혁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사교육 문제나 입시제도 등이 대학 평준화만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는 얘기인가.

홍세화 : 물론 그런 부분들도 쳐야한다. 금방은 안되겠지만 입시제도가 자격고사 쪽으로 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프레시안 : 노 당선자는 고교평준화를 유지하겠다고 했지만, 학력저하나 하향 평준화 등의 이유를 들어 평준화를 해제하자는 주장도 많다.

홍세화 : 고교평준화가 하향평준화 됐다는 것도 거짓 신화다. 전체 학생들의 학력은 고교평준화를 통해 향상된 것으로 나오고 있다. 다만 하향평준화 됐다고 말하는 것은 고교평준화 이전에 명문학교라는 곳에서 조금 학력이 떨어진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상층에 있는 일부 학생들에게 기준을 맞춘 것이다. 따라서 그런 주장은 상층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기득권을 재생산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발언이라고 본다. 전체 학생으로 보면 상향 평준화됐다. 그렇지 않다는 점을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프랑스에선 유치학교에서 3년동안 공부를 하게되는데, 3년 동안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산수도 안가르치고 프랑스어 읽기도 안가르친다. 초등학교 들어가면 그때 비로소 말 배우기를 시작한다. 그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가정을 떠나서 제일 먼저 접하는 사회가 경쟁하는 사회가 아니라는 점이다. 같이 어울려서 놀러가고 그림그리고 발표하는 공동체 생활에 대한 경험이 개인주의 사회임에도 연대할 수 있도록 하는 고리이다. 실제로 사람은 어렸을때 형성된다는 교육철학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 사회에서 '고교 평준화가 하향 평준화다', '수준별 학급제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지극히 신자유주의적인 경쟁 능률에만 치우친 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친구들과 연대할 수 있도록 하지 못한다. 연대의식이 경쟁의식을 압도할 수 있는 것이 교육철학의 기본 바탕이 돼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프레시안 : 조금 다른 얘기지만 공교육의 병폐에 대한 반작용으로 대안학교들이 여럿 등장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나.

홍세화 : 수혜받을 수 있는 사람이 일부에 지나지 않아서 일정 부분 한계가 있는 것 아니겠나. 일각에서는 부르주아들이나 갈 수 있는 곳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는 그런 모색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통해서 지금 제대로 되지 않는 공교육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공교육이 제대로 돼야한다. 대안교육의 경우는 그 자체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사람이 수혜받을 수 없는 것이라면 중심적인 과제는 공교육에 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프레시안 : 청소년 문제쪽에 가깝겠지만, 공교육에서 이탈하는 학생들이 급증하고 있다. 이탈 학생들을 이차적으로 완충해 줄만한 체계도 미흡한 듯 하다.

홍세화 : 그 문제도 참 중요하다. 탈(脫)학교 학생이 너무 많다. 지금 통계도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아이들을 위한 학교도 필요하겠지만 누가 돈을 낼 것이며 하는 문제가 많이 따른다. 아직 내가 그 문제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해봤다.

프레시안 : 유아교육을 지적했는데, 우리나라에선 조기교육 열풍도 심하다. 이런 것도 부모들의 불안심리로 볼 수 있는 것인가.

홍세화 : 그렇다. 불안심리가 크게 작용한 것이다. 남들 하는데 내 자식만 안할 수 없으니까 자꾸 그런 쪽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나는 학부모들에게 그런 불안을 해체하라는 주문을 하고 싶다. 정말 아이를 위한다면 그런 분위기에 휘말려들지 말고, 그보다는 아이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좀 더 갖는 것이 아이를 위하는 것이라는 말을 꼭 하고 싶다. 내 생각에는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의 '대화의 결손 아이'들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들, 부모, 형제들과 대화의 결손이다. 부모들이 과외하는 시간에 아이들과 대화하고 함께 책을 읽는 것이 창의력이 길러지고, 학습노도이라는 질곡에서도 벗어나는 길이라고 본다. 바쁜데 아이들과 대화할 시간이 있느냐고들 한다. 연속극 한번 안보면 대화할 시간 있다.

프레시안 : 장시간 귀한 말씀 감사하다.

홍세화 :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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