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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곽 드러낸 '대북송금설'의 실체와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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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윤곽 드러낸 '대북송금설'의 실체와 교훈

불가피성 인정하나 '시장질서 교란'은 큰 과오

대북송금 의혹이 서서히 그 실체를 드러내는 분위기다.

'송금액 총 5억달러.'
'송금 대가는 현대의 7대 사업 독점권 획득과 남북정상회담 개최.'

지금까지 여권에서 흘러나온 여러 파편들과 언론 추적보도 등을 짜집기할 때 나온 어렴풋한 전체상이다. 일각에서는 송금액이 더 많으며 송금대가는 비즈니스와 무관한 김대중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으나, 객관적 팩트(사실)들만 갖고 추정하면 앞의 추정이 비교적 진실에 가까운 게 아니냐는 게 중론이다.

***전체적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대북송금 의혹**

최근의 대북송금설 보도와 관련, 우선 주목되는 현상은 기존의 메이저신문보다는 인터넷 뉴스매체와 마이너 신문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감사원의 '현대상선의 2천2백35억원 대북송금' 발표후 제기된 '플러스 알파'설과 관련, 가장 먼저 '5억달러'설을 제기한 언론은 내일신문이다.

내일신문은 지난 7일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절친한 재계 원로의 증언을 인용, “북한 개발권 대가로 북측이 당초 요구한 금액은 10억 달러였으나 밤샘 조율 끝에 5억달러로 합의했다”면서 “현대 측에서 총 5억달러를 북한에 보냈으며, 그중 1억달러가 입금되지 않아 정상회담이 하루 늦춰졌다”고 보도했다.

그는 "지난 2000년 3월17일 계약서를 체결하는 자리에는 북측에서는 송호경.황철, 현대측에서 정몽헌, 그리고 박지원 장관이 함께 했다는 것을 정주영 회장이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현대측에서 총 5억달러를 북한에 보냈으며, 그 중 1억 달러가 입금되지 않아 정상회담이 하루 늦춰졌다”고 주장, 대북 송금이 단순히 현대의 대북 개발권만을 목적으로 한 게 아님을 강력히 시사했다.

감사원 발표 당일아침 2천2백35억원 대북송금설을 가장 먼저 보도했던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는 9일 국정원 전.현직 고위간부들과 여권 고위관계자들을 통해 “북한에 2000년 6월15일 정상회담 이전에 현대 대북개발 사업권 대가로 총 5억달러가 송금됐으며,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의 대출을 받아 북한에 송금한 2억달러(2천2백35억원)는 이 5억달러의 중도금 성격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내일신문 보도의 확인 보도인 셈이다.

오마이뉴스는 또 당시 임동원 국가정보원장은 직원들을 시켜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2천2백35억원에 대해 이서·배서 등의 방법으로 외환송금 편의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5억불의 구체적 송금경로에 대해 현대건설 1억5천만달러는 현대건설 마카오지사를 통해 런던에 본사를 둔 HSBC은행을 거쳐 북한계좌로, 현대상선 2억달러는 국정원의 ‘송금편의’ 지원으로 외환은행 본점에서 홍콩지점을 통해 북한측 계좌로, 현대전자 매각대금 1억5천만달러는 런던에서 싱가포르를 거쳐 송금됐다고 보도했다.

이어 “2000년 3월17일 계약서 작성 당시 박지원 장관이 중국 상하이에서 있었던 북한측과 현대간의 '5억불 계약' 자리에 '대통령 특사'의 자격으로 동석했으며, 박 장관은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적어도 한두 차례 비밀방북한 사실도 새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이같은 보도에 대해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은 자신이 계약서 작성당시 참석한 일이 없다고 일축했다.

***두 가지 상반된 평가**

이같은 두 보도의 공통점은 대북송금액이 5억달러로 추정되고, 대북송금액이 결정된 시기는 남북정상회담 개최 석달전이라는 점이다.

계약서 작성당시에 박지원 비서실장이 참석했다는 주장도 동일하나, 이에 대해선 당사자인 박지원 실장이 강력부인하고 있어 앞으로 더 확인이 필요한 대목이다.

하지만 이같은 공통점만 갖고서도 대북송금 의혹의 큰 윤곽은 잡혀가는 게 아니냐는 게 정가의 일반적 관측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두차례 언급을 통해 '사법조사 반대' '전체공개 반대' 입장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여권의 여러 통로를 통해 흘러나온 정보들을 종합해 볼 때 대북송금의 큰 윤곽은 대충 실체를 드러낸 게 아니냐는 것이 일반적 해석이다.

문제는 이같은 대북송금이 과연 '통치행위'로서의 정당성을 갖는가이다. 이 대목에 이르러 여론은 극명히 두 갈래로 갈리고 있다.

하나는 통치행위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쪽이다. 이같은 대북송금의 목적은 김대중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라는 정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통치행위로 면죄부를 줄 수 없다는 주장으로 주로 야당 및 김대중 반대진영에서 이런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통치행위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쪽이다. 과거 동서독 통일과정에 통일전 20년간 5백억달러가 제공된 점을 고려하면 이 정도 지원은 '저비용 통일비용'이라는 요지의 반론이다.

5억달러 송금설을 가장 먼저 보도한 내일신문은 후자 입장에 가까운데, 이 신문은 10일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지우라는 경제계 원로의 말을 빌어 "정주영 회장이 '김정일도 북한 군부의 눈치를 봤다'며 '2000년 8월 중순 김정일이 개성공단 계약 문제로 방북한 정몽헌과 군 수뇌부 30여명을 데리고 금강산에 간 적이 있는데 이때쯤 북한 군문제가 정리된 것 같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5억달러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쪽으로 흘러들어간 것은 사실이나, 이는 '현대 대북사업.정상회담에 대한 북한 군부 반발'을 무마하는 데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뉴앙스의 보도다.

***"정주영은 장사꾼이었다"**

대북송금의 실체적 진실은 여당 주장대로 '국회차원 조사'가 됐든, 야당 주장대로 '특검' 또는 '검찰수사'가 됐든 간에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는 게 각종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대세적 여론이다. 실체적 진실 위에서 대북송금의 정당성 여부를 가려야 한다는 요구인 것이다.

문제는 그러나 작금에 진행돼온 과정을 보면 대북송금 의혹이 '정치적 선입견' 또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미리 재단되는 징후가 역력하다는 데 있다. 김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타기 위해 대북송금을 했다는 '노벨상 수상 공작설'이 그런 대표적 예다.

이같은 공작설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라는 희대의 장사꾼이 김대통령의 파트너였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결정적 한계를 안고 있다. 정 회장은 '공짜'라는 개념을 갖고 있지 않던 전형적 장사꾼이다. 그는 창업후 몇 차례 도 아니면 모 식의 절대 승부수를 던진 기업인으로 유명하다. 6.25후 미군납공사를 따내기 위해 겨울철에 국립묘지에 파란 보리 싹을 심어 잔디처럼 만들어 미군을 감동시킨 일화나, 박정희 대통령때 자신이 모은 모든 재산을 털어넣고 경부고속도로 공사의 70%를 적자를 보면서 완성시켜 박대통령의 절대신임을 딴 대목 등이 그의 승부사적 기질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다.

이같은 장사꾼이 과연 주판알을 튕기지 않고 자신의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단지 김대통령으로 하여금 노벨상을 타게끔 하기 위해 5억달러(지금까지 공식확인된 액수는 2억달러)를 북한에 보냈을까. 그보다는 북한에게선 사업권을 독점적으로 따내고, 남한 정부에겐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 데탕트를 선사하는 대가로 대북송금 승부수를 던졌다는 게 보다 합리적 해석이 아닐까.

***'시장 질서' 교란은 큰 패착**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북송금 행위가 완전면죄부 대상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무리 절차상 기밀을 요하는 사안이었다 할지라도 대북송금 과정에 현대그룹이 각종 장부조작 등을 행했고, 여기에 국책은행과 금융감독당국 심지어는 국정원까지 개입함으로써 '시장 질서'를 교란시킨 대목은 변명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DJ정부 출범후 현대그룹이 대북사업의 선도적 추진을 이유로 반도체 빅딜 등에서 각종 특혜성 혜택을 받으며 질적 성장이 아닌 양적 팽창을 거듭했고, 그 결과 2000년 현대사태가 발발하면서 30조원이 넘는 거액의 공공자금 지원이 이뤄진 대목은 두고두고 비판을 받아 마땅한 대목이다.

김대중 정부는 남북 긴장완화를 위해 '시장의 투명성 훼손'은 불가피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한이 경제적으로 부강해야만 독일식 남북 긴장해소가 가능하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남한 경제의 건전성과 신인도를 크게 손상시킨 대북지원은 결코 올바른 선택이었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 남북관계 개선 및 이를 위한 대북지원이 비록 시간을 걸릴지라도, 시장경제 원칙을 위반하지 않는 '투명한 과정'을 거쳐 진행돼야 한다는 게 이번 대북송금 파문을 통해 차기 위정자들이 깨달아야 할 값비싼 교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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