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대통령비서실장이 한 벤처기업 대표로부터 기업인수를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4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 소환조사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미묘한 정치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또한 문제의 벤처기업 대표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의 내사를 받고 있는 정치인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한차례 거센 사정을 예고하고 있기도 하다.
***"부의금 1천만원 받았다 되돌려줘"**
수원지검 특수부(부장검사 곽상도)는 9일 "박 실장이 휴먼이노텍 대표 이성용(40.구속)씨로부터 4천만원을 받은 혐의를 잡고 지난달 20일께 서울 L모 호텔에서 박실장을 불러 조사했다"며 "조사결과 혐의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검찰은 "안양 대양상호신용금고 실소유주 김영준(42.구속)씨의 불법대출사건에 이씨가 공모한 사실을 확인, 수사하던 중 이씨가 ‘98년 1월경 기업 인수에 도움을 달라며 당시 대통령 당선자 대변인이던 박 실장에게 돈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해 사실 확인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박 실장이 친척상가에 부의금 명목으로 이씨가 1천만원을 건넸으나 곧바로 돌려줬고 4천만원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씨가 계속 돈을 건넸다고 주장할 경우 박 실장과 대질신문하려 했으나 이씨가 박실장의 조사를 마친 뒤 당초 진술을 번복해 더이상 수사를 하지 않고 무혐의 종결했다"고 덧붙였다.
박지원 실장은 검찰 조사에서 "김대중대통령 당선자대변인으로 있던 98년 1월 고향 친척상가에 들렀더니 '이씨가 부의금으로 1천만원을 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의금으로 보기엔 너무 큰 액수여서 곧바로 돌려주도록 설득해 결국 돌려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씨는 지난 98년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인 피엔텍의 은행대출금과 회사 공금 등 1천32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기소됐으나 2000년 4월 심장병을 이유로 형집행이 정지돼 석방됐다가 지난해 6월 재수감된 인물이다. 그는 또 석방된 이후에도 주가조작과 80억원대의 하이퍼정보통신 자금 횡령 등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나 지난해말 추가 기소된 대표적 기업사냥꾼 및 주가조작범으로 유명하다.
***호텔에서 당사자 해명만으로 무혐의 종결 논란**
이같은 검찰의 무혐의 종결에 대해 그러나 정가에서는 적잖은 논란이 일고 있다.
이성용씨가 뇌물수수를 주장하다가 대선직후 박 실장을 조사한 뒤 진술을 번복한 것도 석연치 않을 뿐더러 박 실장이 혐의를 부인했다 할지라도 계좌추적 등을 통해 진상을 명백히 밝힐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당사자 진술만으로 간단히 수사를 접은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밖에 검찰이 박 실장을 호텔에서 조사했다는 대목에 대해서도 비판이 일고 있다. 권력층이나 고위 공직자일수록 원칙에 입각한 투명한 과정을 거쳐 조사해야 하는데 호텔에서 조사를 했다는 것은 이미 면죄부용 수사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박종희 대변인은 9일 “검찰은 박 실장을 소환조사해 무혐의 처리한 경위를 소상히 공개하라”며 검찰 수사에 의혹을 제기했다. 박 대변인은 “야당에 대해서는 소환 및 피의 사실까지 일일이 공표하는 검찰이 대통령비서실장을 소환조사하고도 쉬쉬하다 어쩔 수 없이 확인해주고 있다”며 “이게 검찰의 본 모습이냐”고 비판했다.
***정치인 연루설 파다, 사정 시작되나**
정가에서는 이번 사건이 새 정부 출범을 앞둔 미묘한 시점이 발생했고, 현재 연루 혐의를 받고 있는 정치인이 박지원 실장외에 여러 명 있는 점을 예의주시하며 향후 추이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이번 의혹은 검찰이 대양상호신용금고 불법대출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 드러났다.
박지원 실장을 소환조사한 검찰은 수원지검 특수부. 수원지원 특수부는 '이용호게이트' 관련인물로 안양 대양상호신용금고 실소유주인 김영준(42.구속)씨의 금고돈 불법대출 및 기업인수 사건을 수사하던 중 불법대출에 문제의 휴먼이노텍 대표 이성용씨 등이 공모했고, 이들이 기업인수 등을 위해 정치권에 로비를 한 혐의를 잡고 정치인을 상대로 수사를 확대중이다. 대양금고는 수신고 5천억원으로 금고 랭킹 전국 5위권 내였으며 불법대출사건수사후 영업정지 처분을 받고 지난해 9월 파산이 확정됐다.
수원지검 특수부는 김영준씨로부터 D통신 헐값인수에 도움을 주는 대가로 1억원을 받은 혐의로 민주당 김방림의원을 지난 4일 구속하기도 했다. 검찰은 또 김천호씨가 고제의 1차부도를 막아주는 대가로 건넨 1천만원을 김 의원이 민주당 정모 의원과 한나라당 김모 의원의 후원회통장으로 각각 5백만원씩 입금한 사실을 확인, 청탁 대가인지 파악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은 이밖에 김영준씨가 금융감독위원회의 대양금고 조사무마 대가로 한나라당 이양희의원에게 수천만원을 건넨 혐의를 잡고 수사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지원 실장 수사도 이같은 정치인 로비설을 수사하는 과정에 이뤄진 것이다.
검찰은 별건으로 구속된 김영준.이성용씨를 지난해말 수원구치소로 이감한 데 이어 지난달 17일에는 해외로 도주했다 입국한 김천호씨를 검거해 대양금고돈 4백35억원을 불법대출받아 기업 인수합병에 사용한 혐의 등으로 구속, 이들을 상대로 대양금고에서 불법대출한 돈의 사용처를 추궁해 왔다.
김영준씨는 불법 주식거래 등으로 경영권을 인수한 KEP전자에 3백억원의 손실을 입힌 혐의로 지난해 1월 차정일특검팀에 의해 구속됐으며, 이성용씨는 98년 은행대출금 등 1천32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다가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뒤 수백억원대의 주가조작 및 횡령 등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 재작년 재수감됐다.
지난해 정국을 뒤흔들었던 각종 게이트는 아직 그 실상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게 일반적 시선이다. 대양금고 비리로 촉발된 이번 검찰의 수사가 과연 세간의 의혹을 깨끗이 씻어내는 역할을 할지, 지금 세간의 시선이 검찰에게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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