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곧 결단을 내려달라”고 촉구하며 국제사회의 지지를 채근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독자적인 군사행동을 감행할 의사를 내비쳤다. 이러한 미국의 노력에도 불구, 독일 프랑스 중국 러시아는 기존의 반대 입장을 고수했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도 참전 결정을 세 번째 연기했다.
***부시, 군사행동에 회의적인 안보리 회원국 설득**
부시 대통령은 이날 존 스노우 재무장관 취임식에 참석해 “지금은 유엔 안보리가 결론을 내려야 할 순간”이라며 “거짓말하고 속임수를 쓰는 독재자를 내버려 둔다면 안보리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안보리의 결단을 촉구했다.
부시는 "만약 사담 후세인이 무장해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동맹국들을 이끌고 그를 무장해제시킬 것"이라고 말해 독자적인 행동을 감행하겠다는 의사도 뚜렷이 밝혔다.
<사진: 부시>
전쟁 개시를 위한 또다른 유엔 결의안 필요성에 대해 부시는 "결의안이 필요하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만약 두번째 결의안이 (지난해 통과된 결의안)1441호의 이행을 요구하고 그 정신을 확인한다면 이를 채택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군사행동에 대한 동맹국들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유럽 방문길에 오른 럼즈펠드 장관도 이날 국제사회의 외교적 노력이 실패했다고 말해 행동 개시에 들어간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강하게 내비쳤다.
럼즈펠드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와 회담을 가진 뒤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는 걸프전 이후 지난 12년간 국제사회가 기울인 엄청난 노력을 지켜봤지만 이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그는 "이라크에 대해서는 외교적 노력 뿐 아니라 경제제재와 석유-식량 연계 프로그램도 실패했고 심지어 비행금지구역에서의 제한된 행동조차도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고 말했고 유엔 안보리에 대해서도 "후세인이 무장해제 결의를 계속 거부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유엔은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특히 럼즈펠드 장관은 이라크전이 발발할 경우 "6일 혹은 6주 정도" 지속될 수는 있지만 6개월까지 걸리지는 않을 것이 확실하다고 말해 미국의 전쟁 준비가 사실상 완료됐음을 시사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이날 이탈리아 북부 아비아노에 주둔한 미 공군 제31비행단을 방문, 미군장병들에게 행한 연설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獨ㆍ佛ㆍ中ㆍ러 반대는 여전**
이같은 미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전 반대입장을 꾸준히 견지했왔던 나라들은 다각도의 외교채널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7일 부시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전쟁을 벌이지 않고 후세인을 무장해제할 수 있다"고 말하고 "(미국과 프랑스) 양국이 이라크 무장해제라는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며 미국을 역으로 압박하는 제스처를 보였다.
시라크 대통령은 프랑스의 한 텔레비전 방송에도 출연해 “전쟁 이외의 다른 대안은 여전히 있다”며 “문제 해결의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은 안보리 회원국들의 의무”라고 말했다.
<사진: 시라크와 슈뢰더>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도 이날 부시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유엔 무기사찰단의 임무를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주석은 통화에서 "중국은 이라크에 있는 유엔 무기사찰단에 지지를 보내야 한다. 이라크 문제와 같은 중대한 현안을 다룰 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권위를 보장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공통된 열망"이라고 말했다.
부시와의 통화에 앞서 시라크 대통령과 장 주석은 전화통화를 통해 무기사찰단이 이라크에서 활동을 계속하도록 허용돼야 한다는 입장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과 러시아도 유엔 무기사찰단에 시간을 더 주면서 갈등의 외교적 해결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독일 정부 대변인은 "독일 정부는 현 시점에서 두번째 유엔 결의가 필요하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고 요쉬카 피셔 외무장관도 "전쟁의 위협과 (전쟁이 초래할) 인도주의적 결과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고리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7일 "현재로선 이라크에 무력을 행사하기 위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채택할 근거가 없다고 본다"며 안보리가 새로운 이라크 결의안을 채택하는 것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NATO, 참전 결정 세 번째 연기 ‘침묵의 동의과정’으로 결론내리기로**
한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6일 이라크 전쟁에 대한 미국의 협조 요청에 관한 최종 합의에 끝내 도달하지 못했다. 독일, 프랑스 및 몇몇 회원국들의 지속적인 반대로 연기를 거듭한 나토의 결정은 지난달 22일, 29일에 이어 세 번씩이나 연기된 셈이다.
나토는 다음주 월요일인 10일 오전 10시(한국시간 오후 6시)까지 아무도 명시적인 반대 의사를 표하지 않으면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간주하는 소위 ‘침묵의 동의과정(silence procedure)’ 방식에 의해 결론내리기로 합의해 최종 결정에 대해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 NATO 본부 앞 반전시위>
나토에 대한 미국의 제안은 이라크 전쟁 발발시 이라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터키를 방어하기 위해 전투기와 미사일을 배치해 달라는 것이었다. 19개 나토 회원국 중 독일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4개국은 미국의 제안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지만 아직까지 외교적 수단과 유엔 무기사찰단의 활동을 통해 전쟁을 피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군사계획을 논의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는 입장을 피력해왔다.
이날 회의가 끝난 이후 조지 로버트슨 나토 사무총장은 "우리는 합의에 도달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나토가 이라크전에 대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전쟁이 발발할 경우 나토 회원국인 터키를 방위하는 원칙에는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나토의 터키에 대한 연대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덧붙였다.
베르호프슈타트 벨기에 총리는 7일 독일, 프랑스, 벨기에 등 3국이 10일의 결정 시한까지 공동 입장에 합의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공동 입장을 모색하기 위해 프랑스 및 독일과 노력하고 있으며 특히 터키 지원문제와 관련해 신중한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라는 주장들이 있다"며 "공동 입장이 10일에는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없다’ ‘게임은 끝났다’ ‘결단을 내려라’ ‘속임수 못 참는다’ 등 행동 개시가 임박했음을 시사하는 발언을 최근 잇달아 쏟아놓고 있는 미국과 외교적 노력을 강조하는 나라들 중 어느 편이 국제여론의 지지를 받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간 반대 입장을 강력히 표명해 왔던 나라들이 실제 군사행동이 벌어지면 어떤 행동을 보여줄지도 관심사다. 오는 10일의 나토 결정은 그 첫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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