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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정책을 산업논리로 풀려 하나”

쌀 수매가 최초로 인하결정, 농민 강력반발

정부가 48년 쌀 수매제도를 실시한 이후 처음으로 추곡수매가를 2% 인하하겠다고 결정해 정부가 쌀의 구매자가 되어 가격을 지지하는 정책을 사실상 포기했다. 농민단체들은 수매가 인하가 논농업을 말살하려는 정책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반대 입장을 표명해 정부안의 국회통과는 미지수다.

수입개방 확대와 농업환경변화에 대비한 장단기적 대책마련이 절실한 시점에서 나온 정부의 이번 결정은 농업정책이 큰 틀에서 전환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추곡수매제는 농가소득지지 등 본래의 기능이 크게 축소돼 전면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이 제도를 공공비축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농림부 관계자의 말은 정책전환 방침을 선명히 보여주고 있다. 공공비축제는 비상시에 대비한 적정비축 목표를 설정해놓고 쌀을 시가로 매입해 방출하는 방안이다.

<사진: 할머니>

***정부, “개방 충격 완화와 재고량 과잉 때문에 인하 불가피”**

정부는 4일 국무회의에서 올해 추곡수매가를 작년보다 2%로 내리고(벼 40kg 1등급 기준 5만9천2백30원) 수매가 인하에 따른 농가소득 감소는 논농업직불금을 늘여 보전해주기로 했다.

농림부는 "2004년 세계무역기구(WTO) 쌀재협상에 대비해 국내외 쌀 가격차를 줄임으로써 국내 쌀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쌀 과잉공급을 해소하기 위해 수매가 인하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결정의 이유를 설명했다.

안종운 농림부 차관은 ‘내년으로 다가온 WTO 쌀재협상에서의 입지강화’와 ‘우리 쌀 산업의 체질강화’를 인하의 근거로 내세웠다. 그는 “쌀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수매가를 동결하거나 올려줄 경우, 쌀생산을 촉진하는 결과를 낳게 되고, 그러면 또다시 재고가 누적되는 악순환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농림부는 농가소득 감소를 보전하기 위해 농업직불금을 800억원 증액키로 결정했다. 농림부는 "현재 1㏊당 40만∼50만원으로 돼 있는 지급단가를 올리기보다는 2㏊까지로 묶여있는 지급상한을 5㏊까지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며 "이 경우 영세농가보다는 규모화 농가가 혜택을 받아 쌀산업의 경쟁력이 강화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사진: 어린이 그림>

***농민단체, “쌀농업 포기정책”**

정부의 수매가 인하결정에 농민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은 규탄성명에서 “1천1백90만섬의 쌀 재고량은 과잉이 아니라 갑작스런 식량위기에 대처하고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과잉생산을 얘기하면서도 소비확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지는 않았다”고 정부를 비난했다.

전농 전북도연맹은 별도의 성명서에서 “열심히 생산해 쌀자급을 이룬 것은 농민들의 노고이지 이로 인해 추곡수매가를 내려 농민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결정”이라며 “수입쌀로 인한 재고누증과 보관관리비용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도 성명서를 발표, “‘쌀 재협상시 입지강화’를 핑계로 내세워 쌀의 완전개방에 대비해 시장가격을 의도적으로 하락시키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치권의 반응도 부정적이다.

한나라당은 4일 대변인 논평을 통해 “턱없이 낮은 농산물 가격과 폭증하는 농가부채로 고통 받고 있는 농가의 현실을 철저히 무시한 결정”이라고 비판했고, 민주당은 “4백만 농업인에게 미칠 경제적 손실과 정신적 허탈감에 대하여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논평했다. 민주노동당도 정부의 이번 결정이 ‘2004년 쌀 개방을 위한 정지작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사진: 논 갈아엎는 장면>

***농업정책은 순수 ‘산업정책’인가**

정부의 수매가 인하 결정은 농업정책에 ‘경쟁력’과 ‘구조조정’이라는 산업논리만을 적용한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안종운 차관은 “경쟁력을 갖춘 규모화 농가에 더 많은 (논농업직불제의)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구상중이다. 그래야만 농업구조조정을 이루면서 쌀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해 이번 결정에는 ‘경제적 고려’가 무엇보다 강하게 작용했음을 드러냈다.

이에 전농 충북도연맹은 “쌀이 가지고 있는 식량안보, 안전성, 환경성 등 여러 가지 공공성을 무시하고 단순히 상품으로 전락시킨 극히 위험한 발상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농의 한 관계자는 “WTO에서 허용하고 있는 다양한 직불제가 있는 데도 단지 땅을 많이 가진 농민들만을 고려한 대책을 내놨다"며 "논농업 직불제는 농업의 다양한 기능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이건 완전히 반발 무마용이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남는 쌀을 북한에 지원해 저장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진짜 경제적인 정책”이라고 덧붙였다.

눈덩이같이 불어난 농가부채에 시달리면서 쌀농사를 계속 지어야 할지의 기로에 있는 농민들을 그냥 방치하는 것은 이미 ‘사회적 약자’가 된 농민들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확정한 수매가 인하안은 임시국회에 제출되어 여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한나라당 이상배 정책위의장은 5일 "절대 인하할 수 없다"며 반대방침을 밝혔다. 여야의 부정적인 반응으로 볼 때 국회통과가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북한에 지원하는 방안도 있고, 군인 및 학교 급식을 늘려 쌀소비를 촉진하는 방안도 연구하겠으나 생산조정이 불가피한 게 아니냐는 게 지금까지의 내 생각"이라고 4일 밝힌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입장과 맞물려 어떤 정책으로 귀결될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노 당선자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쌀문제를 뒤로 미루지 않고 병을 키우지 않겠다”고 정면돌파 의지를 피력했다. 미봉책으로 연연하지는 않겠다는 입장 표명으로 읽힌다.

식량산업인 동시에 생명산업인 논농사의 위기에 대해 과연 농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해법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지, 지금 노무현 당선자를 지켜보는 농민들의 시선이 어느 때보다 날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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