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한나라당 내부 갈등이 대선 재검표 해프닝을 계기로 재현될 조짐이다.
서청원 대표 등 당 지도부는 28일 대국민 사과에 이어 당선무효소송을 취하하는 등 사태수습에 나섰으나, '국민속으로' 등 개혁파들은 당 지도부에 대한 여론의 따가운 비판을 힘 입어 지도부 문책론을 제기하며 쉽게 물러서지 않을 분위기다.
***"결과 승복, 국민에게 죄송"**
이날 오전 서청원 대표는 재검표 결과와 관련, "대선 직후와 마찬가지로 겸허하게 대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며, 일부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서 대표는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재검표 결과가 나온 만큼 당선무효소송의 취하 등 후속조치를 깨끗이 취할 것"이라며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신정부 출범에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야당으로서 국정의 동반자와 견제자 역할도 충실히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 대표는 "80개 개표구에 대한 재검표 결과 몇 가지 납득하기 어려운 사례도 있었지만 그동안 시중에서 제기됐던 개표관련 의혹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었으며 광범위하게 제기된 전자개표기 의혹도 해소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이어 "이를 계기로 대선 과정의 후유증을 털고 새롭게 출발해야 하며, 새출발 하는 정부도 선거와 관련한 의혹을 털고 홀가분하게 신정부 구성에 나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서 대표는 재검표 결과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 27일 오후부터 대표직을 사퇴하고 대행체제를 가는 방안을 적극 검토했지만 "당 정치개혁특위의 쇄신안 마련이 얼마 남지 않은만큼 이를 마무리해주고 가야한다"는 만류 의견이 많아 이를 백지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28일 중으로 당이 제기했던 당선무효소송과 선거무효소송을 취하하는 한편, "대선 과정에 있었던 각종 고소고발 사건을 공동취하하자"는 민주당 제안도 수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속으로, "대선 이후 책임지는 사람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국민속으로'와 '미래연대' 등 소장파 의원들은 대국민 사과 수준으로는 부족하며, 가시적으로 책임지는 모습을 당 지도부에 요구하고 있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들의 지도부 성토는 최근 본격화된 민정계 보수중진들의 물밑 당권경쟁과 맞물려 미묘한 파장을 낳고있다.
당내 개혁파 모임인 '국민속으로'는 28일 성명을 내고 "당 지도부가 당선무효소송을 통해 당내 개혁에 철저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더 나아가 개혁의 흐름을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를 자행하고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경고한 바 있다"며 지도부 문책론을 강력하게 제기했다.
국민속으로는 이어 "결과적으로 우리당을 다시 한번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도록 한 이번 일에 대해 관련 책임자는 국민과 당원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며 "대선 이후 이회창 후보외에 책임지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음을 상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재검표 논란의 책임을 지도부뿐만 아니라 당내 보수세력 전반의 '정치적 오판' 탓으로 규정하는 분위기다. 특히 "당 개혁특위가 보수화로 회귀하는 경향이 있다"며 연일 경고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재검표 책임론은 당내 신구세대 갈등의 새로운 기폭제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들은 27일에도 홍사덕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이 "최고위원들의 족쇄를 풀어주겠다"고 말한 것과 관련, 홍 위원장 발언이 서 대표와 지도부의 2선 후퇴 선언을 백지화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냐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이들은 "특위 위원장은 그런 말을 할 자리에 있지 않을뿐더러 권한도 없다"며 "이는 당의 개혁논의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발언"이라고 성토했다. 이들은 29일 개혁특위 전체회의에서 이 문제를 공식제기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당 개혁특위 2분과가 국회의원, 지구당위원장을 대상으로 현재 실시중인 개혁방안에 관한 설문이 "(국민의견을 배제한 채 당내) 다수의 힘을 빌미로 한쪽으로 결론을 유도하고자 하는 의도"에 따른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한편 소장파 원내외 위원장 모임인 '미래연대'도 이날 저녁 전체회의를 갖고 재검표와 관련한 대응방안을 논의할 예정이어서 대선 재검표를 계기로 재점화된 당내 갈등은 당분간 확산일로를 걸을 전망이다.
한마디로 말해 지금 한나라당 지도부는 자신이 던진 부메랑에 맞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경에 처한 셈이다. 한나라당의 어지러운 24시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