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에 반영된 음양 오행의 구조를 풀이해보고자 한다. 소설이나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은 다소 답답할 수도 있겠다.
톨킨의 이 환타지는 유럽 역사의 실제 흐름을 소설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설의 무대인 '중간계' 역시 유럽이다. 모르도르의 사우론과 이센가드의 사루만에 의한 공격은 유럽사에 실재했던 사건에서 소재를 따온 것이다.
전자는 몽골과 오스만 터키의 침공에 해당되고, 후자는 아랍 회교세력의 유럽 진출에 해당된다. 이 두 세력의 침공 중 어느 하나라도 성공했더라면 오늘날 우리는 몽골이나 터키 문화가 뒤섞인 유럽 또는 회교화 된 유럽을 보게 되었을 것이니, 오늘날의 서구인들이 생각하기에, 정말이지 끔찍하고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즉, 이 두 가지 역사적 사건들은 톨킨만이 아니라 전 서구인들에게 서구의 정체성(identity)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자 시련으로서 각인되어 있음을 소설은 은연중에 말해주고 있다.
그럼 먼저 이 소설에 나오는 각 세력들을 오행(五行)으로 배분해보자.
모르도르(mordor)의 사우론은 동방의 목(木)이다. 몽골 기병대 내지는 오스만 터키를 연상시키며, 모로도르는 오늘날의 터키 지역이다.
오스만 터키는 13 세기 말엽, 오스만 I 세에 의해 건국된 몽골계의 왕조다. 1300년대 중반부터 유럽 침입을 시작하여, 동로마제국을 수시로 골탕먹이다가 1453년에는 마침내 무력화된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콘스탄티노플(오늘날의 이스탄불)을 수도로 삼았다.
이란과 시리아, 아라비아, 이집트를 정복하고 칼리프 칭호를 물려받아 이슬람의 종주권을 장악함으로써, 술탄 칼리프 시스템을 확립하였다. 극성기에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세 대륙에 걸친 대제국을 영위했었으며, 그 군대는 한때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를 포위공격하기도 했으나 17세기 이후로는 점차 쇠퇴의 길을 걸었다.
남방 화(火)는 이센가드의 사루만이다. 아라비아 반도에서 흥기한 이슬람 세력에 해당된다. 아프리카 북안을 따라 세력을 키워나간 후, 스페인을 점령하고 피레네 산맥을 넘어 오늘날의 프랑스로 들어갔다가 프랑크 왕국의 영웅 카를 마르텔에 의해 저지당했다.
그러면 권위를 상징하는 중앙 토(土)에 해당되는 세력은 어딜까? 소설에서는 요정의 나라인 리벤델과 곤도르 왕국에 해당된다. 리벤델은 로마 교황청이며, 리벤델의 주인 엘론드는 바로 로마 교황이다. 따라서 리벤델은 소설 속에서 가장 신성하고 신비한 장소로 묘사되며, 그곳의 나뭇잎들도 모두 황금색으로 빛난다. 교황청인 바티칸을 생각하면 된다. 레골라스는 교황청의 근위 무사인 셈이다.
곤도르 왕국은 동로마 제국이며, 그 수도인 미나스 티리스는 콘스탄티노플이다. 동로마 제국은 서구인들의 관점에서 볼 때, 동쪽의 강대했던 세력들, 페르시아나 사라센, 몽골 계 터키의 침입을 막아냄으로써 유럽을 지켜준 든든한 방파제이자 보루였다. 소설 속에서 스트라이더(아라곤)는 곤도르 왕국의 혈통으로 나오며, 나중에 황위를 계승하게 되는데 이는 신성 로마 제국의 출발을 의미한다.
리벤델과 곤도르 왕국은 중앙 토로서 전자는 성(聖)의 권위이고 후자는 속(俗)의 권력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면 금(金)의 세력에 대해 알아본다.
금의 세력은 로한의 기사단과 난쟁이 부족 출신의 김리, 그리고 정찰 임무를 수행하는 스트라이더와 그 무리들이다. 로한의 기사단은 프랑크 왕국이며, 난쟁이 김리는 독일, 스트라이더는 이탈리아를 의미한다. 바로 중세 당시, 세계사의 변방에 불과했던 서 유럽을 의미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수(水)의 세력은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인물인 호비트 족의 프로도와 회색의 마법사인 간달프이며 영국을 상징하고 있다. 톨킨이 영국인이니 영국이 주인공이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면 이쯤에서 반지의 제왕이 지닌 소설적 구조를 얘기해보자.
먼저, 모든 반지를 통령하는 '절대 반지'는 절대권력을 상징하고 있다. 소설에서 절대 반지는 버려졌다가도 때가 되면 스스로를 나타나게 하는 힘이 있는데, 이는 절대권력에 대한 욕구가 세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절대 반지는 김리의 도끼날로도 파괴되지 않으며 불 속에 넣어도 녹지 않는다. 오로지 모르도르의 화산 구덩이(절대 지혜 내지는 정신을 뜻한다)속에서만 용해될 수 있는 것으로 나온다. 권력에 대한 우리들의 집요한 탐욕이란 이런 것이다.
절대 반지는 절대 권력이고 절대 유혹이기에, 나즈굴의 유령들-한때는 제왕들이었던-은 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어서 마저 악령으로서, 절대 권력에 충성하는 권력 추종 집단으로 나온다. 권력의 비린내 나는 속성을 너무나 잘 아는 지혜의 간달프 마저 절대 권력에 대한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정도다.
그렇기에 이 반지를 운반하여 모르도르의 화염 구덩이 속에 던질 수 있는 자는 오로지 천진무구한 인격의 소유자가 아니면 불가능한데, 그런 인물이 바로 프로도 이다.
가장 평범하면서도 천사의 고결함을 지닌 인물, 이는 톨킨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프로도 마저 모르도르의 화산에 접근해 가면서 몸이 부대끼고 초췌해지는데, 이는 순진무결한 프로도마저 절대 반지의 유혹이 얼마나 큰 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또 하나의 빠질 수 없는 주인공이 골룸이다. 골룸은 원래 호비트 족에 속하지만, 절대 반지가 이 세상에 드러날 때까지 그것을 보관하는 역할을 맡았었다. 여기서 골룸은 권력 앞에 굴종하는 보통의 인간상을 상징한다. 절대 권력은 굴종적인 대중들 속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골룸이 유약함과 굴종의 인간상이라면, 또 하나의 인간상이 제시된다. 바로 골룸 속에 깃든 또 하나의 개성인 스미골이다. 스미골은 약하지만 양심과 선을 잃지 않는 평범한 대중을 의미한다. 골룸과 스미골이라는 두 인격이 하나의 몸뚱이 속에서 갈등하는 구조는 소설 전편을 지배하는 긴장감이다. 그런 골룸과 스미골은 그리고 마침내 프로도가 임무를 완수하는데 있어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는 일반 대중의 유약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악을 물리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맡는 숨은 주인공이 있으니, 바로 거대한 나무의 정령들이다. 나무의 정령들은 이센가드의 사루만을 괴멸시키는 대공을 세우는데, 가만히 살펴보면 사루만의 세력은 첨단 테크놀로지를 상징하며, 반면 나무의 정령은 원시 자연이 지닌 순순한 힘이다.
또 하나의 명쾌한 대비는 사루만이 테크놀로지, 즉 물질과 기술의 화신이라면, 간달프는 정신력과 지혜의 화신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우론의 보병 부대인 오르크하이는 땅속의 쓰레기 더미 속에서 창조되는데, 이는 유럽인들이 보았던 몽골 기병의 야만적이고 험한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유럽인들이 마음속으로 지녔던 두려움과 적개심의 집약적 표현인 황화론(黃禍論)이 어떤 심상(心象)이었던 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그런가 하면, 스트라이더가 첫 사랑인 리벤델의 왕녀와 사랑을 이루기 어려웠던 것은 그녀가 교황청의 수녀이기 때문이다. 이브닝 스타(저녁별)라는 이름의 그녀는 결국 영생을 포기하고, 사랑을 택한다. 그리고 리벤델의 요정들이 중간계를 떠나 건너가는 서쪽 바다의 또 다른 세상은 천국이자, 플라톤의 이데아며, 동시에 전설 속의 아틀란티스이다.
이제 전체 소설을 간단히 정리해보자.
목(木)에 해당되는 사우론과 화(火)에 해당되는 사루만이 편을 먹은 것은 터키와 이슬람이 하나의 세력을 이룬 것이다.
이에 유럽의 정통 권위를 대변하는 리벤델(교황청)과 곤도르 왕국(동로마제국)이 토(土)로서 맞서고, 금(金)에 해당하는 로한의 기사단(프랑크 왕국)과 난쟁이 김리, 스트라이더의 무리들(신성로마제국), 마지막으로 지혜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으로 가득한 영국이 수(水)기를 대변하면서 소설의 골격을 형성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음양(陰陽)의 대비도 대단히 풍부하고 다채로운 중층 구조를 이루고 있다.
사루만의 테크놀로지와 원시 자연인 나무 정령간의 대립, 골룸과 스미골의 대립, 기술의 사루만과 정신의 간달프 간의 대립, 절대 권력의 상징인 절대 반지와 순진 무구한 프로도간의 대립, 소설 앞부분에서 프로도가 브리 마을을 향해 숲길을 갈 때의 풍부한 서정적인 묘사와 후반부의 박진감 있는 전개, 이 모두가 음양(陰陽)의 구도로서 소설 전체를 죄였다 풀었다 하고 있다.
대작 환타지 '반지의 제왕'은 저자의 풍부한 상상력과 나름의 해석에 의해 재구성된 유럽사이며, 은유(metaphor)의 드넓은 대양으로서, 20 세기의 일리어드와 오디세이라 하겠다.
그런 이 소설은 어린아이가 읽어도 무리가 없는 평이한 문장과, 필자와 같은 중년의 사람이 거듭해서 읽어도 감탄을 금치 못하게 만드는 작가의 삶과 세상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담고 있다. 한 가지 흠을 잡는다면 이 글을 쓰는 필자 역시 한국인이라 같은 피에 속하는 몽골인이 흉칙한 오르크하이로 나온다는 점인데, 마치 '스타워즈'에서 악의 세력이 일본의 무사 복장을 하고 있다는 점과 같은 맥락이다.
필자가 이 소설을 처음 접한 것은 1991년 말경이었는데, 도서출판 '예문'사가 발행한 책이었다. 읽고선 감동해서 몇 번을 읽었지만, 그 출판사는 이 책으로 별 재미를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홍콩에 들렀던 길에 책방에서 'Houghton Mifflin'사가 발행한 책을 사게 되었는데 대단히 좋았다. 무엇보다도 책 속에 수십 개의 수채화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상영되고 있는 반지의 제왕은 바로 그 수채화를 기본 그림으로 쓰고 있다는 점이 또한 재미있었다.
그리고 영화 '반지의 제왕' 2편에 나오는 헬름 협곡의 전투는 금년에 나온 액션 중에서 가장 장대한 그림이었다고 생각된다. 본의 아니게 영화 선전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말 볼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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