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지지자인 탤런트 박철씨에게 대선이 끝날 때까지 방송을 중단하도록 조치하는 등 방송사들이 잇따라 이회창 후보 지지 연예인들에 대한 방송출연 제재에 나서, 그 배경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가 및 방송가에서는 그동안 이회창 후보 지지자들의 방송활동을 사실상 묵인해온 방송사들이 최근 이같은 제재조치를 내린 이면에는 대선결과에 대한 모종의 판단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해석을 하고 있다. 대선후에 대비한 '몸조심'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박철 "SBS 희생양, 나는 희생타"**
SBS FM은 지난 16일 <박철의 2시 탈출>(103.5MHZ)의 진행을 맡고 있는 박철씨에게 "대선으로 시끄러운 만큼 한시적으로 마이크를 놓아줬으면 좋겠다"고 통보하고, 이날부터 김범수 아나운서가 대신 진행을 맡도록 조치했다. SBS측은 "대선이 끝난 직후인 20일부터 다시 마이크를 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철씨는 이회창 후보 측의 자원봉사조직인 '한사랑 자원봉사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 후보의 적극적 지지자로 유명하다.
박철씨는 SBS의 이같은 조치에 대해 "특정 정당의 지지자로 이름이 거론되긴 했지만 방송에서 지지나 정치적인 발언을 한 적이 한번도 없다"며 "그런데 이런 조치를 취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반발했다. 박씨는 "16일 아침에 갑자기 통보 받았다"면서 "처음에는 '분위기가 안 좋으니 선거전까지만 참아라'고 하더니, '그럼 대선 후면 다시 방송을 할 수 있냐'고 묻자 다시 '당분간 마이크를 놓아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시 마이크를 잡으라 해도 SBS와는 일하고 싶지 않다"면서 "이민이라도 가고 싶을 정도로 울화통이 터진다"고 분개했다.
박씨는 16일 자신이 진행하던 <2시 탈출> 게시판에 글을 올려 "다시 한번 SBS는 희생양이며, 나는 희생타"라며 정치적 문제가 '퇴출' 배경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게시판에서 "전 이제 피하지 않구 더러운 세계로 뛰어듭니다. 가서 이겨낼 겁니다"라며 이 후보 선거 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사를 밝힌 뒤 16일 밤부터 본격적으로 이 후보 유세에 참여했다. 박씨의 부인인 탤런트 옥소리씨가 이 후보 유세에 참여한 적은 있지만 박씨가 유세에 직접 참여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또 17일 밤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이회창 후보 유세에 참석해 "최근 SBS <2시 탈출>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마이크를 놓게 됐다"면서 "16일 방송 4시간 전 제작진이 갑자기 마이크를 놓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유를 알고 싶어 고위 관계자를 만났지만 '저쪽에서 상당한 압력이 들어오고 있다'는 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당시 고위 관계자가 "신해철의 경우와 형평성을 맞춘다는 의도도 있고, 이번 대선이 끝나면 복귀하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SBS "돌출 발언을 할 우려가 있어 양해 구한 것"**
이에 대해 SBS 관계자는 "박철씨가 공개적으로 이 후보에 대한 지지 발언을 했다고 드러난 것은 없지만 선거전이 워낙 접전으로 치러지고 있는 상태에서 그럴 우려가 다분히 있어 대선이 끝날 때까지만 방송을 쉬라고 양해를 구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프로그램 자체의 결정이냐, 상부의 지시냐"는 질문에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면서 "박철씨가 워낙 애드립이 많아 그런 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어떤 정치적인 압력이나 의도가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라며 일각의 의혹을 부인했다.
SBS측은 또 타 후보의 공개지지를 선언한 가수 신해철, 김흥국, 영화배우 문성근씨 등이 자발적으로 방송을 그만 둔 점을 들어 박씨의 정치탄압설을 일축했다.
하지만 방송가에서는 SBS가 그동안 박철씨의 이회창 후보지지 활동을 묵인하다가, 대선을 불과 3일 앞둔 시점에 갑자기 박씨의 이 후보 지지를 문제 삼아 '방송 중단'을 결정한 것에 대해 "SBS의 눈치보기가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어린 눈길을 보내고 있다.
박철씨의 경우 지난달 10일 '한사랑 자원봉사단'이 공식 발족할 때부터 단장을 맡아 활동해왔다. 공식선거전이 시작된 지난달 27일 이전의 일이다. 따라서 박철씨의 정치행위를 문제 삼으려면 훨씬 이전부터 문제 삼았어야 한다는 게 방송가의 일반적 지적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SBS가 향후 대선결과를 내부적으로 정한 뒤 본격적인 몸조심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해석도 흘러나오고 있다.
***심현섭·강성범·김인문씨 등도 "방송사 탄압" 주장**
한나라당은 이와 관련, 17일 "탤런트 박철씨를 비롯해 개그맨 강성범, 탤런트 김인문씨 등도 방송사로부터 탄압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개그맨 심현섭씨도 17일 이 후보 유세장에서 같은 주장을 펼쳤다. SBS방뿐 아니라 다른 방송사들로부터도 이회창 후보지지 연예인들이 '정치적 탄압'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나라당은 박철씨의 사례외에 ▲지난 13일 방송된 KBS '행복채널'이 개그맨 강성범 이병진 김준호 김대희 등 '개그콘서트' 멤버의 일부를 섭외했다가 이중 녹화전 강성범에게만 출연 취소통보를 한 점, ▲KBS '체험 삶의 현장'이 탤런트 김인문 편을 녹화했으나 돌연 방송을 취소했다는 점 등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KBS '행복채널' 측은 "강성범은 불과 한달 전에 출연한 적이 있어서 애시당초 섭외 대상도 아니었다"며 섭외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반면 강성범 매니지먼트사인 스타벨리 측은 "지난 10일 녹화를 앞두고 프로그램 외주제작사로부터 갑자기 한나라당 선거운동원이기 때문에 출연이 곤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체험 삶의 현장' 측도 "사전 제작된 여러 편의 방송일정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일 뿐"이라며 "김인문씨 편은 취소된 게 아니라 내년 1월12일 방송된다"고 해명했다.
한편 개그맨 심현섭씨는 17일 이 후보 유세장 및 TV찬조연설 등에서 "이 후보를 지지하는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박해를 받고 있다"며 "나는 KBS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연하려는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윤도현씨의 반대로 출연을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러브레터'측 관계자는 "전혀 사실무근이며 법적 대응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윤도현씨 측은 "윤도현씨는 '아직 '러브레터'에 출연하지 못한 전문 가수들도 많은데 일회성 캐럴 음반 홍보로 출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윤도현씨는 18일 오전 기자회견을 갖고 심현섭씨에 대한 법적 대응 등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