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명 가까운 간첩이 우글우글 한다던데 그 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이회창 후보의 신변을 보호해야 한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27일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지원연설을 하면서 이같은 발언을 해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 교수는 이날 오전 11시 30분께 서울 명동에서 열린 이 후보 유세장에서 "민족의 정신과 민족의 혼이 이회창 후보의 가슴 속에 있다"며 이 후보 지지연설을 했다.
김 교수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개혁국민정당은 28일 논평을 통해 "김 교수의 발언은 한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며 "김 교수는 아직도 구태의연한 색깔공세가 국민들에게 먹힐 것이라고 생각하냐"고 비난했다. 개혁당은 또 "이회창 후보가 아직도 이런 시대착오적 인사를 지지자라고 찬조연설까지 시키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고 덧붙였다.
***97년 대선때도 유사한 의혹 제기돼**
대선만 돌아오면 약방의 감초처럼 꼭 등장하는 것이 이른바 '간첩 발언'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997년 상황만 살펴보자.
1997년 4월21일자 동아일보는 '청와대회의 북누출 의혹'이라는 제목으로 국가기밀이 북에 빠져나가고 있는 중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내용은 이러했다.
"최병렬 신한국당의원은 21일 '황장엽 리스트'와 관련, "김광일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청와대의 실제 회의내용과 북한 최고위층에 메모로 보고된 (청와대의) 회의내용이 유사하다'는 얘기를 한 것으로 전해들었다"며 "대화내용이 비밀사안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최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나라의 안보를 걱정하는 의원모임' (간사. 김용갑의원)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에 대해 김용갑의원은 "청와대 수석실의 회의내용이 김정일의 책상에 메모형태로 놓여 있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의원은 "황리스트가 어떤 형태로든 인구에 회자될 경우 한국정치의 판도를 뒤집을 핵폭탄이 될 수도 있다"면서 "검찰과 안기부수사의 신뢰성이 문제되고 있는 상황에서 황리스트가 나온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판단해서는 안되며 수사단서 차원에서만 활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보도에 대해 김광일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를 전적으로 부인했다. "그러한 사실은 없을 뿐 아니라 나는 그와 유사한 말도 한 적이 없다. 최의원이 전한 말은 전적으로 사실무근이므로 최의원은 자기발언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최병렬 의원이 제기한 청와대 고정간첩, 속칭 '황장엽 리스트' 의혹은 한동안 정국을 밑둥채 뒤흔들다가 그후 유야무야 사라졌다.
그로부터 석달 뒤인 1997년 국내에 들어온 전 북한노동당 비서 황장엽과 전 여광무역연합총회사 총사장 김덕흥은 국가안전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이날 황장엽이 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대남사업자들과의 토론에서 한국내에 상당한 숫자(의 고정간첩)가 들어가 있으며 작년 9월 동해안에 침투했던 잠수함이 침몰 적발된 것은 실수이며 그동안 제집 드나들 듯 했다고 들었다."
황장엽은 그러나 최병렬 의원이 제기한 '황장엽 리스트'에 대해선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이회창 후보, 주위의 매카시부터 청소해야 집권 가능**
한나라당은 최근 오랜 전략회의 끝에 지난 26일 이번 대선을 '보혁 대결구도'로 치루지 않기로 결정하고, 이회창 후보가 "한나라당에도 진보적 인사가 많다"며 공식적으로 보혁 대결구도를 부인했다.
하지만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한나라당 찬조연사인 김동길 교수가 가장 상투적인 매카시즘 발언을 함으로써 한나라당이 여전히 보혁구도라는 시대착오적 미망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스스로 드러냈다.
한나라당은 "찬조연사의 발언을 우리가 어떻게 사전에 통제할 수 있느냐"고 해명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혁 대결구도' 타파는 말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적 구성'의 문제라는 점을 이번 김동길 파문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게 지배적 분석이다.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못하는 것도 국민들이 한나라당의 이같은 구태의연함에 식상해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보가 진정 집권하고자 한다면 우선 주변에서 김동길 같은 매카시들부터 솎아내야 할 듯 싶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