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16대 대선 후보 등록 첫날인 27일 "1만명 당원들이 5만원씩 특별당비를 낸" 돈 5억원을 기탁금으로 내며 거뜬히 후보등록을 마치고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전체 민노당 당원 3만명 중 3분의 1에 달하는 당원이 자발적으로 특별당비를 납부한 결과다.
지난 97년 15대 대선에 권영길 후보가 민노당 전신인 '국민승리21' 후보로 출마했을 당시, 민주노총, 전국연합 등에서 후원금을 거둬 어렵게 기탁금을 마련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그후 민노당이 어느 정도 대중성을 확보했는지 감지할 수 있는 부분이다.
김종철 민노당 대변인은 이와 관련, "대선이 끝날 때 까지 당원 2만4천명이 특별당비 5만원을 납부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대선을 치루는 데 '총알' 걱정을 크게 안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민노당은 이와 별개로 대선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3만원짜리 대선승리채권 3만장을 발행, 현재 1억3천만원 가량을 모았다.
***권영길, "이번 대선은 수구보수,온건보수,진보의 3자대결"**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민주당 노무현 후보간의 양강 대결이 치열하게 펼쳐질 것이 예상되는 이번 대선에서 권 후보는 '군소후보' 중 가장 주목받는 지지율 3위 후보인 동시에, '진보정당' 후보다.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권 후보가 두차례나 대선 출마를 강행한 명분은 '진보정당 육성론'이다. 권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당선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진보정당 발전의 토대가 돼 10년 후에는 진보정당의 집권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권 후보는 특히 최근 민주노총, 전국연합, 전국빈민연합, 한총련 등 진보진영 단체들이 지지를 선언, '진보진영 단일후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진보정당 후보인 만큼 권 후보는 선거운동도 차별적으로 벌인다.
권 후보는 이날 오전 첫 번째 공식 선거 일정으로 마석 모란공원의 전태일 열사 묘소를 참배한 데 이어 오후엔 인천 부평의 대우자동차 공장을 방문해 노동자들을 만났다. 28일엔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을 방문할 예정이다. 지난주 신효순.심미선양 압사사건 무죄평결이 나왔을 때에는 대선후보 가운데 유일하게 시민단체들과 함께 항의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권 후보는 특히 노 후보로 단일화가 된 만큼 진보성향의 유권자들을 끌어오기 위해 진보적 정책으로 차별화를 시도하는 한편, 이회창 후보의 수구보수성과 노 후보의 온건보수성을 함께 공격한다는 전략이다. 권 후보는 이번 대선을 '수구보수', '온건보수', '진보' 3대진영의 대결로 규정하고 있다.
***TV 합동토론 참여 등 기존에 비해 유리한 조건**
지난 56년 조봉암이 이끌었던 진보당 이후 사회대중당, 한국사회당 등 4.19 직후 혁신정당, 87년 대선에서 백기완 후보를 독자적인 민중후보로 추대했던 세력이 만든 민중의 당(88년), 90년대 초반의 민중당, 이어 97년 권영길 후보를 대선후보로 내세웠던 국민승리 21까지 지난 40여년간 우리나라에서 진보정당은 독재정권의 탄압과 유권자들의 '레드 콤플렉스', 내부 분파성 등에 번번이 무너지는 '실패를 위한 실험'이었다.
그러나 이번 권 후보의 대권 도전은 상당히 의미를 달리한다. 지난 2000년 1월 국민승리 21에서 민노당으로 재출범한 이래로, 민노당은 점차 당세를 확대, 지난 6.13 지방선거 정당투표에서 8.1%를 득표, 자민련을 제치고 '제3당'으로 당당히 등극했다. 이에 따라 권 후보는 다음달 3일, 10일, 16일에 실시될 TV 합동토론에도 참여하게 됐다.
이런 조건들을 발판으로 민노당은 ▲부유세 신설 ▲국민발안제.국민소환제.참여예산제 도입 ▲선도적 군축과 주한미군 단계적 철수 등 진보적 공약을 내걸고 10%대 득표를 목표로 하고 있다.
***死票방지 심리, 대중성 부족, 대선자금 마련 등 난관 많아**
민노당이 이같은 목표 달성 앞에 몇가지 난관이 놓여있다.
우선 노 후보로 단일후보가 확정되면서 한나라당과 박빙의 승부를 펼치게 됨에 따라 진보성향 유권자 표의 상당 부분이 '사표(死票) 방지 심리'에 따라 노 후보로 쏠릴 가능성이다. 권 후보가 내세운 '진보정당 육성론'은 당장 눈앞의 '대선 승리'라는 목표에 비하면 설득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 지방선거에서의 선전을 기반으로 이미 여러 차례 TV토론에 노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요지부동인 점은 민노당과 권영길 후보 자신이 갖고 있는 '대중성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진보적 정책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대중적 지지를 얻어낼 묘수를 찾아야 할 상황이다.
40억원 안팎으로 예상하고 있는 대선 자금 마련도 수월치 않을 전망이다. 민노당이 전국에서 모은 당비는 매달 1억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평소 자금 동원력의 40배 이상을 발휘해야 대선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특히 정체된 지지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려면 홍보 활동 등에 대한 '투자'가 필수적이어서 자금수요가 훨씬 높아질 가능성도 높다.
민노당은 국가에서 지급되는 선거보조금 5억원을 포함해 기본적으로 기존 당원들의 특별당비와 일반 유권자 10만명의 후원금, '대선승리채권' 등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을 제외하면 '뭉칫돈'을 기대할 창구가 마땅치 않아, 11월 말까지 40억원을 모금한다는 애초 계획이 성사될지는 불확실하다.
양강구도로 치열한 혈전이 예상되는 이번 대선에서 민노당이 이같은 제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소기의 목표를 달성, 진보정당 활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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