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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패, 의인, 협객?

김유주의 '방송 산책' <1> '야인시대'의 허와 실

***'야인시대'의 허와 실**

중반으로 접어든 SBS의 화제작 '야인시대'의 열풍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뒷골목 주먹패가 마치 독립투사인 양 미화되어 우국지사로 둔갑하는 듯한 인상이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김두한은 의인도 아니고 한낱 주먹패에 불과할 뿐이다.

필자는 전두환 정권의 1980년 언론통폐합에 의해 지금은 없어진 동아방송 재직시에 '노변야화(爐邊野話)'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1969년에 매일 30분씩 두달간 대담프로 '김두한'을 인기리에 방송한 적이 있다. 지금 SBS 월화 드라마 '야인시대'는 내가 제작한 프로그램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원래 '노변야화-김두한'은 한달간 방송될 예정이었으나 하도 재미있어서 연장해 약 두달간 방송했다. 그 당시 김두한이 방송대담에서 밝힌 것은 우국지사나 독립투사도 아니고 단순히 종로일대를 주름잡고 있는 '주먹패-어깨'에 불과할 뿐이었다. 종로의 한인상권(韓人商權)을 일본 '야쿠자'로부터 보호해주는 대가로 요즘 깡패들이 상인들에게서 징수하는 '세금(稅金)'이 우미관의 김두한 패에게 돌아갔던 것이다.

극적 해석이 필수적인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멋지게 그리려는 시도는 당연하다. 그러나 '야인시대'의 경우는 좀 과잉 의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청소년들이 TV 속에 묘사된 주인공을 사실적인 실존인물로 생각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드라마 전개에 좀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요즘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긴또깡(김두한의 일본식 발음)'을 모르면 말이 안 통할 정도이고 인터넷 시청자 게시판과 관련 동호회는 연일 역사적 사실과의 비교, 조폭의 역사, 앞으로의 전개에 대한 이야기 꽃이 한창이라고 한다.

요즘 세상이 하도 권모술수와 배신, 비리가 판치다 보니 의리를 중시하는 폭력 사회를 주제로 한 선 굵은 남성 시대극 '야인시대'의 인기가 저절로 상승하는 것 같다. 뒷골목 세상은 비정한 승부와 의리가 공존한다. 그래서 뒷골목 사나이들의 세계는 호쾌한 액션이 등장하게 된다.

구마적, 신마적, 쌍칼 등 종로를 무대로 한 조선 어깨패와 일본 야쿠쟈 '하야시'패가 종로 상권을 놓고 겨루는 쟁탈전엔 이미 영화를 통하여 잘 알려진 '스크린 출신 조폭'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영화 '네 발가락'의 이창훈, 박준규, 이원종을 비롯해 우리 영화계에서 주먹께나 쓰는 액션 스타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런데 요즘 조폭세계나 정치판과는 달라서 당시 '주먹사회'는 일어설 때와 물러설 때를 분명히 알고 있어서 결투에서 지게 되면 깨끗이 승복하고 약속을 지켰다고 한다. 그리고 결투를 할 때도 부하(조무래기)들은 시내에서도 싸우지만 두목(오야붕)들은 시내에서 싸우지 않고 시간과 장소를 정하여 부하들을 대동하고 나타나 조용한 곳(예: 장충단 공원)에서 두목들끼리 결투를 벌였다.

이때 금기사항은 무기를 쓰지 않고 일대일로 맞대결하며, 비겁하게 뒤에서 공격하지 않는 것이 예의였다고 한다. 결투에서도 신사도가 철저하게 지켜졌으니 요즘 조폭들처럼 무기를 사용하거나 비겁한 싸움은 안했던 것으로 김두한씨는 방송에서 증언했다. 그리고 김두한씨는 말도 잘했지만 표현력도 풍부하여 우수한 얘기꾼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녹음 중에도 가끔 벌떡 일어나 결투 장면을 실연(實演)하는 경우도 많았다.

방송가에선 시청률 40%를 속칭 '대박'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SBS의 '야인시대'는 7월말 첫 방송을 할때 21.6%의 시청률을 보이더니 9월말엔 40%대를 훌쩍 뛰어넘어, 지난해 월ㆍ화요일의 밤 10시대를 장악했던 '여인천하'의 열풍을 재연하면서 90년대 중반 SBS '모래시계'의 신화를 재연시킬 조짐이다. 이와 같은 '야인시대'의 돌풍은 탄탄한 스토리 전개와 주ㆍ조연급들의 감칠맛 나는 연기가 어우러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김두한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에게 앞길을 터주는 '쌍칼'역의 박준규 역시 요즘 세상에선 찾아볼 수 없는 흐뭇한 인간애를 느끼게 하고 있다. 그리고 '쌍칼'의 오른팔로 나오는 개그맨 이혁재의 익살스런 전라도 사투리도 드라마 분위기에 탄력을 넣어주고 있다.

1백회로 예정된 이 드라마가 앞으로 계속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선 지나친 폭력성을 극복하는 것이다. 제작진은 진정한 사나이들의 모습(우정)에 매료된 여성들이 최근 주 시청층을 부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싸움 자체가 드라마의 목적이 아닌 만큼 볼거리와 인간미를 풍성하게 가꿔가면서 잔인한 장면을 줄여 '인간 김두한'이 살아온 과정을 참되게 그려 나갔으면 한다. 이 드라마는 요즘 세대에 교훈이 될 만한 요소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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