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후보는 재벌해체론자다."
유승민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의 주장이다. 매주 두세차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독대하면서 이 후보의 '경제 과외교사'라 불리는 유 소장의 이 주장이 정가에 적잖은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유승민, "이회창 후보는 재벌중립적"**
유승민 여의도연구소 소장이 13일 조선일보에 '李후보 재벌정책, 다시 말한다'는 제목으로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 교수의 이회창 후보의 재벌정책에 대한 2차 비판에 재반론을 폈다. 장하성 교수가 지난 11일 조선일보에 기고한 '李후보 재벌정책 다시 묻는다'라는 제목의 2차 문제제기에 대한 재반론이다.
유 소장은 이 글에서 "이 후보가 출자총액제한, 증권집단소송, 상속ㆍ증여세의 포괄주의, 계열분리명령을 모두 폐지하거나 반대한다는 장 교수의 주장은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유 소장의 주장 가운데 주목해야 할 대목은 그동안 폐지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온 출자총액제한과 관련, 종전과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 소장은 "이 후보의 출자총액제한에 대한 입장은 당분간 유지하되 경영투명성과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조건이 충족되면 폐지한다는 것"이라며 "따라서 이 후보가 출자총액제한을 당장이라도 폐지할 것 같이 주장한 것은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그동안 노무현, 정몽준 후보가 펴온 주장과 일치하는 것으로, 종전의 입장에서 한 걸음 물러선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증권집단소송, 계열분리명령 반대 등에 대해선 종전의 입장을 고수했다.
유 소장은 증권집단소송에 대해선 미국식 제도를 우리 법에 이식하기만 한다고 해서 한국기업의 지배구조가 선진화되는 것은 아니라며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상속ㆍ증여세의 경우 완전포괄주의는 조세법률주의에 위배될 뿐 아니라 행정부가 엄청난 재량권을 갖게 돼 정경유착과 부패에 빠지기 쉬운 수단이 될 수 있으므로 유형별 포괄주의를 주장했다. 계열분리명령제에 대해선 '재벌해체'를 의미하기 때문에 분명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유 소장의 평소지론의 리바이벌이다.
***유승민, "노무현은 재벌해체를 주장"**
그런데 정작 문제가 된 대목은 조선일보 종이신문에 실린 유승민 소장 글의 마지막과, 조선일보 인터넷판에 실려있는 글의 마지막 부분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조선일보 가판과 시내판에는 이렇게 글을 끝맺고 있다.
"우리는 어느 후보처럼 재벌해체를 주장하지도 않으며 재벌2세 후보와는 더더욱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조선일보 인터넷판에 실려있는 글은 다르다.
"그러면 다른 후보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지금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가 정권연장을 위한 소위 '후보 단일화'를 말하고 있는데 재벌해체를 주장하는 후보와 재벌2세 후보가 결합할 때 과연 어떤 재벌정책을 낳을지 필자는 매우 궁금하다. (* 마지막 문단은 반드시 포함시켜 주십시오)"
당초 유승민 소장이 보내온 글의 원문은 13일 오전까지 인터넷판에 실렸었다(그러나 본지가 확인 취재를 하는 과정에 이 글을 이날 정오 이후 종이신문과 같은 내용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왜 "마지막 문단은 반드시 포함시켜 주십시오"라는 특별 주문까지 한 유승민 소장 글이 종이신문에서는 바뀐 것일까.
***"조선일보에서 일방적으로 바꿨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측은 "일반적으로 외부기고는 손을 대지 않으나 분량이 넘치거나 모자랄 경우 필자와 상의해 고친다. 인터넷판에 싫린 글이 변경된 과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으나 신문에 출고되지 않은 상태에서 디지틀조선일보측 담당자가 필자 원고를 그대로 실으면서 실수가 발생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승민 소장은 "조선일보측으로부터 신문 발행 이전에 내용 수정 등에 관한 상의를 받은 바 없다. 조선일보측에서 '그렇게 나가면 또 싸움이 된다고 생각해 바꿨다'는 얘기를 공보특보를 통해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조선일보측이) 상의도 없이 (글의 내용을) 바꾼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면서 "항의를 할까 말까 고민중"이라고 덧붙였다.
유승민 소장은 "조선일보에 실린 장하성 교수의 이전 글도 '시론'에는 성격이 맞지 않아 '기고'로 바꿨으며 그 과정에서 2매 정도 분량이 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조선일보측이 유 소장과 상의없이 일방적으로 유 소장의 기고 내용을 변경했다는 주장으로, '필자와 상의를 통해 변경한다'는 조선일보측 해명과 다르다.
유승민 소장은 그러나 자신의 글중 문제가 되고 있는 대목과 관련, "노무현후보는 재벌해체론자가 맞다"고 재차 주장했다.
요컨대 조선일보는 이 발언이 활자화될 경우 파문이 일 것을 우려해 문제 발언을 수정했다는 것이나, 유소장은 자신의 생각을 바꿀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계에서는 "우리는 어느 후보처럼 재벌해체를 주장하지도 않으며 재벌2세 후보와는 더더욱 분명히 다르다"고 조선일보가 수정한 대목도 노무현 후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기란 마찬가지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현재 대선후보중 재벌해체를 공약으로 내건 후보는 권영길 후보 한명뿐이다. 노무현 후보는 김대중 정부의 재벌정책을 발전적으로 승계한다는 입장이다. 재벌해체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바꾼 '재벌 해체를 주장하는 어느 후보'는 과연 권영길 후보를 가리키는 것인가. 조선일보가 정치적 파란을 불러일으킬 것을 우려해 '어느 후보'로 바꾸긴 했으나, 유 소장 글의 문맥을 보면 유 소장이 노무현 후보를 가리키고 있음을 감지케 한다. 유승민 소장이나 한나라당, 더 나아가 조선일보는 그동안 권영길 후보를 대선의 변수나 취재원으로 애당초 여기지 않아 왔기 때문이다.
유 소장은 취재 과정에도 "노무현 후보는 분명한 재벌해체론자"라는 주장을 꺾지 않고 있어 이같은 추정을 뒷받침하고 있다.
***노 후보, "재벌해체란 표현을 쓴 적도 생각했던 적도 없다"**
유 소장의 재벌해체론자 발언 파문은 '사실 자체의 왜곡'이라는 점에서 향후 큰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노무현 후보측의 이병완 선대위 정책선거특별본부 부의장은 "재벌해체란 표현을 썼던 적도 없고 생각했던 적도 없다"며 "노 후보의 재벌문제에 대한 인식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 불공정거래, 변칙적 세습 등 IMF를 불러왔던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해, 즉 공정하고 투명한 경제를 위해 경제개혁이 지속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부의장은 "노 후보는 대기업의 경쟁력이 고도화되어야 한국 경제의 경쟁력이 살아난다는 입장"이라며 "이런 입장에 대해 재벌해체란 말을 쓴 것은 자신들의 친 재벌적인 정책 기조를 호도하려는 악의적인 표현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누 후보측은 유소장이 "노무현은 재벌해체론자"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음에 따라 이를 정식으로 문제삼겠다는 입장이어서 앞으로 파문이 커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 파문은 신문 제작상의 사소한 해프닝으로 가볍게 보아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파문은 과정이 어떠했든 간에 평소 한나라당,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기득권층이 노무현후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노무현 후보는 결코 우리 사회에서 수용해선 안될 인물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인식은 지나친 적개감이 낳은 편견이 아닌가. 유 소장이 분명히 답해야 할 대목이 아닌가 듯 싶다.
다음은 문제가 되고 있는 유승민 소장의 2차 반론 전문이다.
***李후보 재벌정책, 다시 말한다(2002.11.13)**
'李 후보 재벌정책 다시 묻는다'는 장하성 교수의 글(조선일보 11월 11일자)에 다시 답한다. 외견상 객관적 위치에 있는 대학교수와 정당에 속한 필자 사이의 토론은 어색하지만 독자의 정확한 판단과 선택을 위해 마무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먼저 정확한 토론을 위해 장 교수가 필자의 글을 묘하게 변조한 부분부터 바로잡고자 한다. 이 후보가 출자총액제한, 증권집단소송, 상속·증여세의 포괄주의, 계열분리명령을 모두 폐지하거나 반대한다는 장 교수의 주장은 왜곡이다.
출자총액제한에 대한 이 후보의 정확한 입장은 이렇다. 이 규제는 비록 대증요법이긴 하지만 당분간 유지하되 경영투명성과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조건이 충족되면 폐지한다는 것이다. 현대상선 4억달러와 같은 사건은 여전히 경영이 투명하지 못하다는 증거인 만큼 아직은 이 규제를 폐지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이 후보가 출자총액제한을 당장이라도 폐지할 것 같이 주장한 것은 왜곡이다.
증권집단소송에 대한 이 후보의 정확한 입장은 한마디로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미국식 제도를 우리 법에 이식(移植)하기만 한다고 해서 한국기업의 지배구조가 선진화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기업제도의 발전방향, 역사적 경로 의존성과 집단소송이 가져올 혼란을 감안할 때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뜻이다.
상속·증여에 대하여 이 후보는 포괄주의 대신에 유형별 포괄주의를 주장한다. 완전한 포괄주의란 조세법률주의에 위배될 뿐 아니라 행정부가 엄청난 재량권을 갖는다는 의미다. 정부에 이런 재량권을 주면 미운 재벌에 정치보복을 가하고 예쁜 재벌과 정경유착과 부패에 빠지기 쉬운 수단이 되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서 유형별 포괄주의가 올바른 정책이라는 것이다.
계열분리명령제는 '재벌해체'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 후보는 분명히 반대한다. 정부가 강제로 기업집단을 해체한다는 급진적 발상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또 한국판 계열분리는 좋은 제도도 아니다. 이 정권이 뒤를 봐준 현대그룹의 계열분리에서 봤듯이 계열분리라는 정책은 부실재벌이 국민에게 갚아야 할 돈을 알짜기업으로 빼돌리고 국민에게 수십조원의 부담을 떠넘긴 수단이 되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재벌정책의 큰 그림 속에는 복잡한 정책수단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앞서 말한 네 가지에만 매달려 대선 후보의 재벌정책을 판단할 수는 없다. 우리 현실에서 올바른 재벌정책의 출발점은 정경유착과 특혜의 청산에서 시작해야 하며, 투명성 제고와 지배구조 선진화, 산업과 금융의 건전한 관계 발전, 부실재벌의 효율적인 정리, 부실경영·불법상속·증여에 대한 엄정한 법집행을 강조하는 이 후보의 재벌정책이야말로 정도(正道)정책이다.
이 후보에 대해 장 교수는 '재벌편향'이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쓰는데 이것은 왜곡이다. 이 후보는 5대 원칙의 구현에 필요한 정부의 규제와 역할에 대한 뚜렷한 철학과 소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역대 어느 정권보다 정도(正道)의 재벌정책을 강력히 추진할 것이다.
이 후보의 재벌정책은 급진세력의 재벌해체, 반재벌도 아니고, 부패세력의 정경유착, 표리부동도 아니다. 미국식 제도를 비판없이 수용하는 시장지상주의에는 더 더욱 반대한다. 이 후보의 재벌정책은 재벌과 투명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재벌의 폐해를 시정하기 위한 최선의 규제를 시행하고 한국자본주의의 건전한 발전을 모색하는 지극히 재벌중립적 정책이다.
우리는 어느 후보처럼 재벌해체를 주장하지도 않으며 재벌2세 후보와는 더더욱 분명히 다르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
***조선일보 웹에 떠있는 마지막 문장**
그러면 다른 후보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지금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가 정권연장을 위한 소위 '후보 단일화'를 말하고 있는데 재벌해체를 주장하는 후보와 재벌2세 후보가 결합할 때 과연 어떤 재벌정책을 낳을지 필자는 매우 궁금하다. (* 마지막 문단은 반드시 포함시켜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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