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청와대 앞에도 1인 시위를 벌이는 서민들로 붐빌까.'
8일 대통령 경호 등을 이유로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가로막는 것은 위법이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자 든 생각이다. 조선조 억울한 피해를 입은 백성들이 신문고를 두드렸듯이 저마다 억울한 사연들을 들고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대통령의 ‘눈’과 ‘귀’가 뜨일까.
서울지방법원 민사 30단독(재판장: 윤흥렬)은 지난해 6월 국무회의 회의록 작성을 촉구하면서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의해 강제 연행당한 참여연대 최한수 간사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원고에게 위자료 5백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유독 이 소식이 반가왔던 것은 지난해 여름 내내 1주일에 한번씩 청와대 앞에서 실랑이를 벌였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작년 6월26일, 당시 필자는 참여연대(www.peopepower21.org) 소속 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때 참여연대는 ‘국가회의록 남기기’ 운동을 한창 벌이던 때였고, 그 사업의 일환으로 국무회의록 작성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아침 9시 청와대 분수 앞에서 벌이기로 했다. 1인 시위는 혼자 하기에 집회라고 볼 수 없고 침묵하므로 시위도 아니기 때문에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늘상 하는 1인 시위인데...’라는 생각에 사무실이 아닌 시위 장소에서 최한수 간사를 비롯한 동료 간사들을 만나기로 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근처에도 가본일이 없었던지라 정문이 아닌 후문으로 잘못 찾아갔고 하는 수없이 넓디넓은 청와대 안을 가로질러 시위 장소인 청와대 분수대 앞 인도에 기자가 도착한 시각은 오전 9시 5분경이었다. 예정대로라면 조선시대 사관 복장을 한 최 간사가 서 있어야할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봉고차 한대가 세워져 있었고, 그 앞엔 사복경찰과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시위를 벌이던 최 간사는 5분도 채 못 돼 현장에 같이 있던 이태호 당시 투명사회국장(현 정책실장)과 함께 경찰에 의해 강제 연행됐다.
청와대 분수대 앞 인도는 청와대 경내로 보고 있어 경호상의 이유로 집회 및 시위는 물론 1인 시위 형태의 개인적 의사 표현도 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 후로 참여연대는 9월 중순까지 매주 청와대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경찰과 실랑이를 벌였지만 경찰은 끝내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의 1인 시위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 곳은 일과시간 안엔 일반인의 통행이 가능한 곳이었는데 말이다.
그 지루한 과정을 취재하면서 청와대 안의 대통령이 마치 구중궁궐 속 왕처럼 느껴졌다.
미국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장면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월리엄 토머스라는 사람은 ‘핵무기 사용 반대와 군비 삭감’을 요구하며 1981년 6월 3일부터 20년이 넘게 백악관 옆에서 시위하고 있다.
연말 대선을 맞아 주요 후보들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 등을 주장하며 ‘구중궁궐 속에 갇힌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을 바꾸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회창 후보는 지난 5월 대선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집무실을 정부종합청사 등 청와대 밖으로 옮기고 청와대는 숙소와 영빈관 용도로 사용하겠다”고 밝힌 뒤 기회 있을 때마다 이를 강조하고 있다.
정몽준 후보도 “출·퇴근하는 대통령도 생각해볼 수 있다”며 “청와대는 대통령 숙소와 내외빈 환영행사 장소로 주로 이용하겠다”고 말했다.
노무현 후보도 “가벼운 농담도 주고받고 토론하는 국무회의를 주재하겠다”면서 행정수도의 충청권 이전 등 청와대 문턱을 대폭 낮추겠다고 선언했다.
후보들의 이같은 문제의식이 집권 후에도 이어져 다음 정권때는 청와대 앞 1인 시위가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청와대 앞 말고도 수시로 1인 시위가 규제받는 곳이 바로 미 대사관 앞이다. 이 문제는 언제쯤 해소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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