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정기국회에서 선거법과 정치자금법 등 정치관련법을 개정해 12월 대선을 깨끗하고 돈안드는 선거로 치르겠다던 정치권의 큰소리가 물거품이 될 조짐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31일 총무회담을 갖고 11월 4일 운영위에서 정치개혁특위 구성 결의안을 처리, 7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번 정기국회가 8일 폐회될 예정이어서 정치개혁 관련법안이 하룻새 처리되기는 사실상 기대난망이다.
***후보 대표가 앞장서 큰소리만 뻥뻥**
지난 9월 선관위가 제출한 개정안의 골자는 ▲정당 후보자 연설회 및 후보자 거리유세 폐지 ▲TV토론 등 미디어 선거 확대 ▲선거보조금 폐지 및 1백만원 이상 정치자금 기부자 인적사항 공개 ▲대선자금 회계 책임자 선임 및 선거비용 입출금 내역 공개 등에 있다.
정치세력별로 각론상의 이견은 있었으나 '정치개혁'이라는 취지에는 그간 대선 후보와 당 대표가 앞장서 공감을 표해 왔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각종 토론장에서 법정 선거비용 준수 및 선거자금 공개를 약속했고, 서청원 대표는 8월 임시국회 대표연설에서 "국회에 정치혁신특위를 구성해 정치개혁을 추진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 역시 22일 "선거운동 자체가 정치개혁의 과정이 되게 할 것"이라고 공언했고 한화갑 대표는 정기국회 대표연설에서 "선관위 안을 토대로 법 개정작업에 나서자"고 강조했었다.
***정쟁에 매달려 정치관련법 개정 뒷전**
그럼에도 정치관련법 개정작업이 첫 삽도 뜨기 전에 물건너갈 조짐을 보이는 것은 양당이 그동안 특위 위원장 자리를 둘러싼 주도권 다툼이나 소모적인 정쟁에만 매달려왔기 때문이다.
양당은 지난 8월부터 수차례의 총무회담을 갖고 선관위가 제안한 선거관계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를 위해 정치개혁특위 구성문제를 논의했으나 특위 위원장 자리를 놓고 입씨름만 거듭했다.
게다가 여론에 뭇매를 맞고 난 지난달 28일 정치개혁특위 구성에 합의해 놓고도 30일 열린 본회의에서 특위 구성안조차 상정하지 않아 사태를 이 지경으로까지 몰고왔다. 여전히 국정원 도청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를 둘러싼 논란만 치열했을 뿐 당장 시급한 정치개혁 법안 처리는 관심 밖이었다.
양당의 이같은 늑장 대응은 대선 전에 정치관련법을 개정하려는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 일차적 책임은 법 개정에 가장 소극적인 한나라당에 있다. 선관위 개정안과 관련 한나라당은 정치자금 기부자와 수입 지출 공개 조항이 탐탁지 않다. 특히 법정 선거비용 내에서 선거를 치르겠다는 약속은 조직 규모상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세몰이에 가장 효과적 수단인 대규모 정당연설회 및 후보자 연설회 폐지도 내심 반대하는 눈치다. 당 내에서는 차라리 현행 규정대로 선거를 치르는 게 낫다는 주장이 공공연할 정도다.
민주당은 선관위가 금지하고 있는 자원봉사자 중심의 '서포터즈 운동'의 합법화를 주장하고 있다. 선거일이 임박할수록 노 후보 팬클럽 '노사모'나 '국민참여운동본부'의 활동을 통한 밑바닥 바람을 기대해야 할 처지이기 때문이다.
***심의기간 연장해서라도 처리해야…**
정치관련법 개정이 이처럼 무산 위기에 처하자 정치권의 직무유기를 탓하는 비판여론도 거세지고 있다. 나눠먹기, 인심쓰기식 예산 심의에는 손발이 척척 맞아 일사천리더니 정작 개혁법안 처리는 '말 따로, 행동 따로냐'는 비난이다.
이에따라 정기국회 회기와 무관하게 심의 기간을 연장해서라도 정치관련법안은 반드시 처리돼야 한다는 요구가 드높다. 또한 일괄 처리에 시간적 어려움이 있다면 핵심 정치개혁법안만이라도 이번 회기 내에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조차도 각자의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불리한 조항은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정치권의 논리 앞에 성사될 가능성은 지극히 낮아 보인다. 결국 이번 선거 역시 예년과 같은 대규모 유세 중심 '세몰이 선거판'을 벗어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또한 모든 후보가 제1성으로 공언해 온 부패척결 역시 반부패입법의 연내처리가 무산됨에 따라 차기 정부의 의지에만 매달려야 하는 형국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