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후보가 맡겨야 하는 기탁금을 20억원을 올리는 요지의 중앙선관위의 정치관계법 개정안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살림살이가 넉넉치 않은 민주노동당은 물론,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기성정치권까지도 반발하고 있어 과연 개정안이 국회의 심의를 통과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선관위의 원내교섭단체 중심의 선거공영제 개정안**
선관위가 8일 발표한 개정안은 ‘검은 돈’ 거래를 차단하고 정치자금 수입 및 지출의 투명하게 관리, 불법 정치자금과 돈선거의 관행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개중에 후보 기탁금의 상향조정 등 군소정당에 상대적으로 불리한 내용도 상당수 포함돼 있어 논란의 소지를 남겼다.
선관위는 우선 기탁금을 현행 5억원에서 20억원으로 상향조정했다. 선거공영제 확대 실시에 따라 후보 1인당 약 3백억원 가량의 국고가 지원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기탁금 상향조정은 후보난립을 방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게 선관위의 입장이다.
선관위는 이어 원내의석이 20석이상 되는 원내교섭단체의 대통령 후보에 대해서만 방송사 연설시 비용을 국가가 대주기로 했다.
***민노당, 선관위 개정안 통과되면 대통령선거 거부투쟁 불사**
선관위 개정안에 가장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쪽은 민주노동당. 민노당은 9일 기자회견을 통해 “대선후보의 기탁금을 현행 5억원에서 20억원으로 상향조정한 것은 돈 많은 후보에게만 대선에 출마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것으로 우리 정치의 근본적인 개혁과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갈망하는 국민들의 여망을 정면으로 짓밟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노당은 이외에도 ▲기부자 인적사항 및 기부금 공개조건 완화(연간 1백만원이상자→1회 1백만원 이상 또는 연간 5백만원 이상자) ▲국고보조금 지급대상 한정(2% 이상 득표한 정당→원내교섭단체) 등의 개정안은 "사실상 선거공영제란 이름으로 선거독점제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중앙선관위 스스로 기성정치권의 꼭두각시 노릇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라고 강력하게 성토했다.
민노당은 이에 따라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의 즉각 철회와 중앙선관위원장의 사퇴 ▲시민사회단체를 망라한 ‘정치관계법 개정 범국민위원회’ 구성 등을 촉구하고 여야 정치권이 중앙선관위의 개정안을 통과시킨다면 ‘대통령선거 거부투쟁’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사회당도 논평을 통해 기탁금 상향조정과 관련 ‘돈 없는 국민의 피선거권을 박탈한 것으로 국민적 위화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하다’고 비판했다. 또한 ‘정당의 정강정책 신문광고와 국가부담 대상과 공영방송사 무료 연설 대상을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으로 제한한 것은 기성정당 만으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민주당 적극 반대, 한나라당은 소극적 반대**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선거공영제 확대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대선 기탁금의 상향조정 등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선 민주당이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노무현 대통령 후보는 9일 중앙선관위의 선거공영제 확대안에 대해 "여러 좋은 내용들이 포함돼있으나 국회 교섭단체에 한해 여러가지 혜택을 부여하는 내용과, 대선 기탁금을 20억원으로 인상하는 두가지 내용은 불합리하다"고 밝혔다.
노 후보는 이날 유종필 공보특보를 통해 "교섭단체에 한해 부여토록 한 (방송사 무료연설 등의) 혜택은 객관적인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일정한 후보에게도 부여하는 등 각 정당과 선관위, 시민단체, 방송사 등에서 객관적인 혜택기준을 연구해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안을 제안했다. 그는 또 대선 기탁금과 관련, "현행 5억원도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닌데 20억원은 너무 많다"며 "진입장벽을 너무 높게 설정해선 안된다"고 밝혔다.
민주당 이낙연 대변인도 이날 논평을 통해 "선거공영제를 획기적으로 확대하자는 선관위 의견에 동의하지만 기탁금 20억원은 지나치게 많아 돈 많은 후보나 정당에만 유리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변인은 또 "신문 정강정책 광고의 국가부담과 무료 방송연설 대상을 교섭체에만 국한하고 비교섭단체를 완전 배제하는 것은 소수자 보호 원칙에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은 당초 선관위 개정안에 대해 적극 환영하며 조속한 입법화를 주장했었다. 그러나 개정안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9일 대선 기탁금 상향조정의 불합리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남경필 대변인은 "현행 5억원에서 4백%나 인상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고, 당 정개특위위원장인 강재섭 최고위원은 “헌법재판소가 이미 다른 선거의 기탁금이 많다고 지적해 줄인 바 있는데 대선 기탁금만 늘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나라당은 그러나 교섭단체에 한해 방송사 무료연설 등의 혜택을 부여키로 한 대목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한편 독자신당을 추진중인 정몽준 의원의 경우 공식적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으나, 원내교섭단체 후보에게만 방송사 무료연설 등의 지원을 하는 안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선관위, “후보 1인당 3백억원 지원, 재정부담 크다”**
그러나 선관위 관계자는 “이번 개정안을 보면 공영제 비율이 81%에 달할 정도로 후보 활동비 외에는 거의 모든 비용을 국가가 부담토록 돼 있다”며 “후보 1인당 약 3백억원 가량이 지원되는 만큼 재정상의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기탁금은 2%의 득표율만 확보해도 절반을 돌려 받을 수 있고 10%이상 득표하면 전액을 환수받을 수 있다”며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민노당도 그 정도 득표력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경희대 김민전 교수(국제관계학과)는 “후보난립을 방지하는 방법은 등록요건 강화와 기탁금 강화 방식이 있다”며 “이번 개정안에는 등록요건을 크게 강화한 만큼 굳이 기탁금을 20억원까지 상향조정하지 않더라도 후보난립 방지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반박했다.
김 교수는 또 “전세계적으로 기탁금 제도를 운용하는 나라는 얼마 되지 않는다”면서 “미국은 우리보다 문턱이 낮은 등록요건으로도 후보난립을 방지하고 있으며 독일의 경우는 거대정당보다는 군소정당에게 유리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번 개정안에 대해 기성 정치권이 실제로 반발할만한 내용은 기탁금 문제보다는 시도지부에서의 후원회 금지조치 등이 될 것”이라며 “현안에 파뭍혀 입법과정에서 이같은 내용이 후퇴처리될 가능성이 있는만큼 이러한 부분도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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