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정국 최대 뇌관으로 지목된 이른바 '병풍'의 결말이 '진실은 없고 정치공방만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흐를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5년간 갖은 '의혹'과 '설'로 점철된 병역비리 사건이 지난 7월말 검찰 손에 넘어갈 당시만 해도 명징한 진실 규명이 기대됐던 게 사실이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에 대한 도덕성 검증 차원에서도 여론의 이목은 검찰의 수사결과를 주목해 왔다.
그러나 검찰에 넘어간 공은 수사 착수 20여일만에 다시금 무한적인 정치권 공방으로 되돌아올 분위기다. 정치권이 이미 검찰 수사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빌미'를 잡았기 때문이다.
검찰수사에서 병역비리가 사실이라는 결론을 내린다면 한쪽에선 '정치공작론'을 앞세운 대대적인 역공이 예정돼있다. 반대의 경우라고 해서 다른 한쪽이 침묵할 리도 없다.
검찰의 수사결과가 각 정치세력의 주장에 신빙성을 보태는 유력한 근거로는 작용하겠지만 결국 처음과 다를 바 없는 정치싸움 속에서 국민들은 12월 대선을 맞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정치권의 고강도 '검찰흔들기'**
병풍 국면이 급격히 전환된 직접적인 계기는 역설적이게도 칼자루를 쥔 민주당 쪽에서 나왔다. 검찰측에서 먼저 병풍을 유도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는 이해찬 의원의 발언은 청와대-검찰-민주당-김대업을 '정치공작단'의 한통속으로 묶어세우려는 한나라당의 주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병역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 전부터 한나라당은 '정치공작' 의혹을 줄기차게 제기해 왔으나 이에 대한 여론의 반향이 미미했던 것은 수세에 몰린 정치세력의 의례적인 '항변'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해찬 의원의 발언은 진위와 무관하게 스스로 정치공작을 자인한 듯한 빌미를 한나라당에 제공한 셈이다.
김정길 법무장관과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의 해임, 박영관 특수1부장과 김대업씨의 구속수사를 요구하는 한나라당의 고강도 공세가 당연히 이어졌고 원내외 지구당 위원장들은 서울지검을 항의 방문했다.
반면 다잡은 고기를 놓쳐버렸다는 장탄식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사건의 본질은 병역비리의 사실여부라는 점을 강조하며 시선이 분산되지 않도록 단속에 나섰다.
민주당은 또한 "김대업씨가 제출한 테이프의 성문감정 결과 김도술씨의 것이 맞다는 잠정결론이 나온 이상 한인옥씨에 대한 수사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며 한나라당의 '검찰흔들기'에 맞서 검찰의 압박수사를 요구했다.
***검찰수사, 선명한 판결 나올까?**
정치권의 이 같은 공세에 검찰은 곤혹스런 입장이다. 한나라당의 공세와는 별개로 '기획수사' 의혹부터 당장 벗어야 할 처지에 놓인 검찰이 제대로 된 수사 결과를 내겠냐는 의심을 피해갈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또한 관심이 집중됐던 22일 검찰 인사에서 박영관 부장을 유임, 외압에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으나 사건의 수사를 맡은 담당 검사가 사건 자체에 연루된 듯한 의혹이 불거진 이상 수사의 신빙성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은 상태다.
이같은 정황으로 볼 때 정치권의 승복이 전제되지 않은 '병풍'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는 아무래도 뒷심이 부족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크다. 이회창 후보 스스로 정치생명을 걸 만큼 대선정국의 민감한 사안이라는 점도 검찰 수사가 선명한 판결로 끝나기 어려운 대목이다.
검찰은 자신 있는 수사결과를 내놓기 어려운 상황, 게다가 어떤 수사결과를 내놓아도 정치권의 극한 반발이 예정된 형국이다. 진실규명보다는 정치공방만 예상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대선 전에 모든 비리의혹 규명하자**
이렇듯 혼탁한 국면이 연말 대선까지 이어진다면 엄청난 국력낭비요 국론분열이 아닐 수 없다. 누가 되었든 차기 집권에 성공한 대통령도 국정운영이 지극히 어려워질 것이다.
상황이 이렇듯 혼란스러워진 이상 특검제 도입이 불가피해졌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거론된다.
한나라당이 요구하는 대통령 주변의 권력비리, 공적자금 부실운용에 대한 특검 및 국정조사와 함께 병역비리 특검도 함께 실시하자는 요구다.
이같은 주장은 그 실현가능성을 떠나 12월 대선 전에 정치권의 모든 비리 의혹을 낱낱이 밝혀 국민들에게 올바른 선택의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외침으로까지 들린다.
진실이 무엇이냐에 대한 아무런 결론도 없는 정치권의 공방은 지난 5년으로도 충분히 지루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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