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와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가 오래간만에 한자리에서 정책대결을 펼쳤다.
두 후보는 26일 오전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전경련과 중소기협 공동주최로 '변화의 시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리더십'을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 각각 별도로 참석, 자신의 경제정책 기조와 기업관을 밝혔다. 양 후보의 연설내용은 지난달 한국CEO포럼 창립기념식 기조연설에서 밝힌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이 후보는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정책과의 차별화에, 노 후보는 이후보와의 차별화에 중점을 뒀다.
두 후보는 그러나 CEO들이 모인 자리라는 점을 의식한 듯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집권하면 대대적인 기업관련 규제 타파와 고성장 정책을 약속, 내년 새 정부 출범후 기업친화적 정책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계 일각에서는 이같은 정책이 93년 YS정권 초기의 신경제정책같은 거품 양산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노무현, "나는 다른 대통령후보보다 '분배문제'를 강조한다"**
먼저 연설에 나선 노무현 후보는"향후 10년간 최소한 연평균 5% 이상의 성장을 해야 한다"면서 "민간과 국책연구기관들은 대체로 연평균 4% 중반의 성장을 전망하고 있으나 나는 이 수준을 다소 웃도는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노 후보는 이같은 경제성장을 위해 ▲효율적 시장구축을 위한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과 공정한 경쟁환경 조성 ▲성장 혜택을 골고루 향유하는 고른 성장 ▲동북아 중심국으로의 도약을 3대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같은 비전 실현을 위해 노 후보는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역동적 경제 ▲균형적으로 발전하는 사회 ▲튼튼한 안보 ▲생산적 정치 ▲겸손한 권력 ▲경쟁력 있는 교육 ▲안전하고 편리한 제도 ▲자유로운 인간의 구현 ▲다양하고 수준 높은 문화 ▲쾌적한 환경 등 '10대 핵심 전략과제'를 주장했다.
노 후보는 특히 이날 강연에서 기업규제 철폐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해 눈길을 끌었다. 노 후보는 "기업에 대한 규제는 획기적으로 폐지하는 방향으로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면서 ▲특정 산업이나 기업에 대한 규모나 입지, 사업요건, 가격 등에 대한 정부간섭 배제 ▲관청의 자의적 해석을 가능케 해 부조리와 유착의 원인이 되고 있는 애매모호한 규정 정비 등을 약속했다.
노 후보는 그러나 "반드시 국가가 개입해야 하는 사안이 있다"면서 ▲시장지배력을 가진 기업의 권한남용 방지와 이해관계자 보호를 위해 국가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운영 ▲독과점에 대한 관리, 회계 및 경영 공시, 투자자와 소비자, 소액주주 보호제도 등을 사례로 들었다. 노 후보는 특히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관련, "존치 시기와 조건을 전제로 당분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노 후보는 또 "성장없는 분배는 불가능하며, 반대로 분배없는 성장도 가능하지 않다"고 전제한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대통령후보보다 분배문제를 강조한다"고 이 후보와 대립각을 세웠다.
한편 노 후보는 "연말 대통령선거에서 반드시 법정선거비용을 준수하겠다"며 "정치여건을 감안할 때 어렵지만 역사상 법대로 돈을 쓰고 당선된 최초의 대통령이 돼보겠다"고 다짐했다.
***이회창, "현 정부에서는 땜질식 경제정책이 판을 쳤다"**
노 후보의 뒤를 이어 연단에 오른 이회창 후보는 '일류경제를 향한 새로운 리더십의 역할'이라는 주제강연에서 "앞으로 20년 동안 연평균 6% 이상의 성장을 달성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 후보는 이를 위한 방안으로 ▲대한민국 전체를 경제특구로 만들 만큼 규제를 혁파하고 ▲관치경제를 청산하고 활기찬 시장경제를 열겠으며 ▲금융이 저축과 투자를 이어주는 제 역할을 다하도록 혁신하고 ▲성숙한 노사관계와 산업평화를 정착시키며 ▲21세기에 걸맞는 신기업정책, 신산업정책 수립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후보는 또 기업정책과 관련 ▲경영투명성을 높이고 지배구조를 선진화하기 위한 정책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고 부실기업을 엄정하게 처리하는 정책 ▲산업과 금융의 건전한 관계를 확립해가는 정책 등을 제시한 뒤 "그러나 정부가 가부장적인 자세로 기업의 경영과 투자에 일일이 개입하는 관행과 규제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보는 특히 현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지난 4년반동안 빅딜정책 등으로 관치경제의 병은 더 깊어져 관치경제의 피해규모는 권력형 부정부패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후보는 또 "99년 들어 대통령이 남북관계와 국내정치에 매달리느라 경제는 뒷전으로 밀려났고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 노력도 사라진 채 땜질식 정책이 판을 치기 시작해 구조 조정의 호기가 물거품이 됐다"면서 "98년 이후 총 투자율도 20%대로 떨어지는 등 미래 준비에 소홀했다"고 비판했다.
이 후보는 경제구조 개선을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새로운 성장 엔진 찾기 ▲관치경제 마감 및 활기찬 시장경제 도입 ▲공적자금등 재정위기 극복 ▲사상최악의 빈부격차 해소 ▲서민경제 회생 및 중산층 복원 ▲복지수요 증가 대응 등을 제시했다.
경제분야 인사정책에 대해 이 후보는 "그저 지역안배나 하고 논공행상을 하는 그런 인사는 하지 않을 것"이라며 "각자의 영역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인정받고 공복으로서의 자격에도 문제가 없는 인재를 등용할 것"이라고 말해 집권시 민간부문에서의 대거발탁을 시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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