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 검찰총장이 11일 돌연 김대중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김 대통령은 이를 반려했다.
이 총장은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신승남 전 검찰총장과 김대웅 광주고검장의 공무상 비밀 누설 등의 혐의를 수사하면서 검찰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 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드리는 입장에서 사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 총장은 또 "이 사건 수사를 시작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고뇌도 적지 않았고 무엇보다 또 다시 상처를 입게 된 검찰 조직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깊은 고민을 했다"며 "새로운 검찰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휘부와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김 대통령은 이날 오후 이재신 민정수석비서관을 통해 이 총장의 사표 제출 사실을 보고받은 뒤 "법을 법대로 집행한 총장이 책임질 일이 없다"면서 사표를 반려했다고 박선숙 공보수석비서관이 전했다.
이 총장은 김 대통령의 사표반려 이후 신임 국무총리 취임식에 참석하는 등 정상적으로 업무를 진행했으며, "사표가 반려된 이상 다시 제출할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김승규 대검차장은 말했다.
이 총장은 사표 제출 직전까지 대검간부 등 주변 인사들에게 사의를 전혀 표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개각에 이은 이 총장 사표 제출, 갖가지 해석 나돌아**
이 총장의 갑작스런 사표 제출에 대해 검찰 주변에서는 이날 단행된 법무장관 교체와 관련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었다.
홍업씨 수사과정에서 청와대의 외압설이 나돌았던 송정호 전 장관이 물러나고, 불과 1년 2개월전 법무장관을 지낸 호남 출신의 김정길 장관이 재기용된 것에 이어 청와대가 이 총장에게 사표를 종용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면 이 총장이 법무장관 경질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사표를 제출했을 것이란 정반대의 해석도 등장했다.
그러나 이 총장이 밝힌 사퇴 이유와 청와대 측의 즉각적인 반려, 그리고 사표 반려 이후 이 총장의 정상 행보 등을 종합해 볼 때 이번 사표 제출 파문을 개각과 연결시키기는 곤란하다는 시각이 주를 이루고 있다.
검찰총장으로서 전임 검찰총장을 기소해야 하는 인간적 고충, 그리고 선후배 사이의 조직기강이 강하기로 소문난 검찰을 계속 이끌어 가야 하는 조직 관리상의 어려움을 반영한 사표 제출일 것이라는 해석이다. 과거 검찰의 적폐를 검찰총장이 책임지고 해결하는 모양을 갖춤으로써 검찰 전체에 비난 화살이 쏟아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충정의 발로라는 것이다.
또한 사표 제출이란 일종의 통과의례를 거친 후 보다 강력한 전방위 사정수사를 이끌어 가겠다는 의지 표명이라는 확대 해석도 나오고 있다.
어쨌든 이러한 여러가지 해석 가운데 어느 쪽이 맞을지는 향후 검찰의 행보를 통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이 총장의 사퇴이유서 전문이다.
저는 오늘 신승남 전 검찰총장님과 김대웅 광주고검장에 대한 기소절차를 끝내고 대통령님께 사직서를 제출하였습니다. 저희 검찰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린 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드리고 또 제 평생을 바쳐왔던 검찰조직을 위해서도 이제는 떠나야 할 때가 됐다고 스스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의 수사개시와 처리과정에서 과연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라는 인간적인 고뇌도 적지 않았습니다만 무엇보다도 이번 일로 또 다시 검찰에 큰 실망감을 갖게 된 국민들, 그리도 크나큰 상처를 입게 된 검찰조직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의 길인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고심 끝에 검찰조직이 하루 빨리 이러한 아픔을 딛고 새로운 각오로 한마음 한뜻이 되어 신뢰받는 국민의 검찰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휘부와 새로운 리더십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사직의 뜻을 표명하게 된 것입니다.
떠나면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검찰을 위해서 계속해서 아낌없는 격려와 애정을 보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