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의 홍명보가 우승컵을 들어올리길 바랐다”

영국 인디펜던트, 한국대표팀의 '순수한 축구' 격찬

"축구를 주제로 이토록 멋지고 또 자극적인 글을 쓸 수 있다니... 진정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축구의 가치를 변질시키는 모든 것에 대한 분노로 쓰여진 글"이라며 본지 한 독자가 영국 인디페던트지에 지난 25일 제임스 로튼이 쓴 기사를 보내왔다.

이 글은 한국과 독일의 4강전이 치러지기 직전에 쓰여진 글이다. 비록 한국이 독일에 패했지만 "한국만이 새로운 피와 가치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세계인의 경기인 축구를 위해서도 우승을 했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한국 축구에 보낸 필자의 찬사는 여전히 유효하다.

기사를 보내준 독자는 "이 글에서 한국 축구에 바쳐진 가장 근사한 말은 국경을 뛰어넘어 찬사를 받는 유일한 팀"이라고 지적했다. 또 "축구가 종종 애국주의, 국수주의로 흘러가는 것이 사실이지만 축구의 진정한 가치란 이기고 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며 승패라는 두려운 상황 앞에서 용기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감동적 인간성과 맞닿아 있다는 지적에 공감이 간다"고 이 글을 추천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 글의 원문은 http://www.independent.co.uk/story.jsp?story=308679에서 볼 수 있다. 편집자.

***"한국은 두려움의 축구를 기억의 뒤편으로 밀어냈다"(인디펜던트, 25일자)**

이제 이 격정적이고 이변이 속출한 제17회 월드컵에 대한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할 때가 됐다. 잉글랜드가 힘없이 퇴장한 지금 우리는 일요일 요코하마에서 벌어질 마지막 경기에서 누가 이기길 바라는가? 내 자신의 바람은 확고하다. 나는 축구 최고의 상인 월드컵 우승이 가장 자격 있는 팀, 플레이 모든 면에서 정직함과 열정과 깨끗한 양심적 축구를 보여준 팀에게 돌아가길 바란다. 나는 그 팀의 주장이 대회 최고의 선수로서 축구란 것이 추한 냉소거리가 아니라 도덕적 용기에 관한 거라고 아직도 믿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대표하여 우승컵을 가져가길 바란다.

나는 진정한 리더요 성숙하고 강인한 주장이며 지난 주말 스페인을 물리치는 마지막 페널티 킥을 차 넣을 때 그토록 당당했던 한국의 홍명보가 우승컵을 들어올리기 바란다. 왜냐면 그만이 유일무이하게 팀 동료와 조국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새로운 피와 가치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세계인의 경기인 축구를 위해서도 우승을 했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리드를 지킬 동안만 뛰는 척 하는 게 아니라 전 경기를 뛸 모험심과 용기와 의지가 있던 축구의 뿌리로 되돌아가게 하는 가치를 위해서 말이다.

8강전에서 스페인의 두 골을 무효처리한 이집트 심판 가말 간두르의 관대한 판정은 잊어버려라. 낡은 축구의 수구세력은 FIFA가 공동 주최국 중 하나인 한국을 통과시키려고 했다고 주장한다. 열광적 관중 앞에서 경기하는 주최국은 애매한 상황에서 덕을 볼 수도 있다. 1966년 잉글랜드가 우승할 때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것을 어렵지 않게 단언할 수 있다.

패퇴한 세계 축구 강국들인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아르헨티나, 잉글랜드가 곰곰 따져봐야 할 것은 오늘 서울에서 열리는 독일과의 준결승에 한국이 자리 잡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잉글랜드가 죽어도 못 버리는 의심 탓에 호나우딩요의 기막힌 프리킥에 덧씌우는 혐의인 괴상망칙한 행운인가, 아니면 훌륭한 다섯 게임에 걸친 엄청난 양의 노력의 결과인가? 당연히 후자인 것이다.

'코리아팀 파이팅'은 관록의 네덜란드인 감독 거스 히딩크가 지난 18개월 동안 만들어낸 팀에 대한 더할나위 없는 수식어이다. 당연히 한국팀이 보여준 체력은 약물 덕분이라는 중상이 따랐다. 히딩크는 그따위 주장을 헛소리로 일축한다. 그보다 그는 엄청난 수준의 신념과 경기에 대한 열정으로 육체적ㆍ정신적으로 힘든 경기를 소화하게 해주는 체력을 만들어 낸 힘들었던 시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한국 축구는 근본적으로 공격적이며 대충 차는 긴 볼에 어떤 공간도 허용치 않는다. 그것은 쉴 새 없이 달리기를 요구하며, 따라서 볼을 가진 선수가 늘 패스할 수 있는 곳이 많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식의 축구는 지난 금요일(21일) 35분 동안 아무 생각없이 둔한 플레이를 펼친 잉글랜드를 그토록 편안하게 쫓아냈던 10명의 브라질팀을 강하게 압박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의 놀라운 선전이 있게 한 사람이 네덜란드인이라는 건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 1970년대에 '토탈 사커'로 축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게 바로 네덜란드 아닌가? 1974년 뮌헨에서, 4년 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들이 준우승에 그친 건 비극이었다. 당시 네델란드 감독인 라이너스 마이클에겐 토탈 사커의 지휘자로 엄청난 재능을 타고 난 요한 크루이프 선수가 있었다.

히딩크에겐 축구의 신이 내려준 그런 천재는 없다. 하지만 그에겐 세 번의 월드컵 출전 동안 1승도 못 올렸지만 강철같은 의지로 수비를 조직하는 노장 홍명보와, 일생일대의 도전에 맞서 이탈리아에게 결정타를 먹인 죄로 페루자가 창피하게 쫓아낸 안정환 같은 공격수가 있다.

한국의 승리에 대한 불만은 그것이 축구의 이미지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리라. 한국 축구엔 지단도, 베론도, 토티도, 히바우두도, 선수 중 선수도, 축구의 아룸다움을 대표할 누구도 없다.

그러나 축구 역사의 현 시점에서 그것은 무시하고 말 사항이다. 남미의 모든 최고 선수들을 흡수하는 유럽 축구 조직과 그들의 돈과 수단방법을 안 가리는 승리에 대한 강조 때문에 축구의 구질서는 한국에서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이탈리아는 불운을 주장한다. 하지만 운은 스스로 만든다는 게 사실이라면 아주리 군단은 징징대는 운명론을 가지고 경기에 임했다 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멕시코 앞에서 가련했고, 한국에게 앞섰을 때 그네들 식 축구의 신중함은 장막처럼 내려왔다.

16강 전에서 아일랜드 팀을 맞아 압도적인 게임을 할것이라고 많은 이에게 기대를 주었던 스페인팀은 보잘것 없는 수준의 게임을 보여주었다. 그 시합에서 심판이 스페인에게 페널티 킥을 판정하는 호루라기를 불었을 때 라울은 안도의 미소를 활짝 머금었다. 과연 이 팀이 스스로 세계 최고의 팀이라고 생각한 팀이었나?

잉글랜드는 스스로를 배신했다. 언젠가 크루이프는 영국 축구는 기술이 아무리 모자라도 엄청난 용기와 상대를 위협하는 체력 때문에 세계가 두려워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소리 브라질한텐 하지 마라. 그냥 웃을 것이다.

독일은 아일랜드와 미국을 상대로 살아남은 게 다행이었다. 불쌍한 사우디아라비아를 박살낼 때 그들이 보여줬던 모든 거만은 쪼그라져 없어졌다. 골키퍼 올리버 칸과 독일 수비수가 골라인에서 저지른 핸들링을 주심이 운 좋게 못 보고 넘어간 것이 미국과의 경기에서 그들을 구했을 뿐이다. 20년전에 독일은 알제리를 떨어뜨리려고 오스트리아와 비기는 월드컵 역사상 가장 수치스럽다 할 경기를 치른 바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한국팀이 오늘 서울에서 축구의 무슨 덕목을 위협한다는 것인가? 그들이 축구의 전통적 가치를 멱살잡이라도 한다는 것인가? 그들이 이번 월드컵의 질을 말살시키는 마지막에서 두 번째 게임을 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들은 두려움의 축구, 하다 마는 축구, 뺑소니치고 지키는 축구를 망각의 저편으로 조금 더 밀어붙이려는 것인가? 그들은 물론 마지막을 택한다.

대회 내내 기울인 노력의 결과로, 또 스페인보다 이틀 덜 쉬고 경기를 치러야 했던 결과로 지난 주말 명백히 바닥난 체력이 아마 충분히 재충전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독일이 다시 어찌어찌 이겨서 네번째 월드컵 우승의 냄새를 맡으며 요코하마로 향할지 모른다.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높지만 결국 그래 봐야 자기네 조국의 국경을 초월하는 경축의 대상은 될 수 없을 것이다.

독일은 이번 월드컵에 가져다 준 게 거의 없지만 한국은 그 어느 팀에게 요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져다주었다. 한국은 능력의 절대 한계에 이르도록 경기했고 그 축구의 질 또한 뛰어났다. 한국은 뛰고 패스했으며 늙고 배부른 거물들에게 창피를 주었다.

오늘 밤(25일)과 일요일에 어떤 결과가 나오든 한국은 관록의 축구인 히딩크에게 동상을 세워줄 것이다. 그것은 한 나라를 일깨워 준 이에게 바치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더 넓은 세계의 축구계는 히딩크가 그보다 더 큰 일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는 부자와 가난뱅이, 전통의 강호들과 새로운 도전자들 모두를 스스로 돌아보게 했다.

지난 몇 주 동안 한국의 이미지보다 더 눈길을 끄는 건 없었다. 한국은 지치고 돈독이 오른 낡은 축구의 잔꾀를 때려 부수고 축구에 새 생명, 새 영혼을 불어넣었다. 그들은 아무리 잠깐일지라도 그들이 재생시키려 그토록 노력한 축구의 세계를 상속할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