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을 앞둔 노동계가 초긴장상태다. 정부의 '월드컵 무파업' 유도조치가 계속되고 있으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정부가 노동탄압을 중단하지 않으면 월드컵 기간에도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특히 노동계의 ‘월드컵 투쟁 선언’은 각 단위 사업장의 임금협상과는 별개로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 등 구속 노동자 석방, 발전 해고노동자의 복직, 손해배상 가압류 철회 등 ‘노동탄압 철회’를 요구조건으로 내걸어 타결될 전망이 더욱 불투명하다.
이한동 총리는 17일 오전 삼청동 총리공관에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지도부를 초청, 월드컵 기간 ‘무파업 선언’을 요청할 예정이었으나 민주노총 지도부는 지방일정을 이유로 불참했다. 또 이날 이 총리와 간담회에서 이남순 한국노총 위원장은 정부의 ‘무파업 선언’요청에 “정부가 노동계의 요구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기존 입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민주노총 손낙구 교육선전실장은 “정부가 겉으로는 월드컵 노사 평화선언 운동을 펼치면서 뒤로는 민주노조를 말살하려는 노동탄압을 계속하고 있다”면서 “이를 중단하지 않으면서 노동자들에게 조용히 있으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10일 김대중 대통령이 구속노동자에 대한 배려를 당부한 것에 이어 법무부는 오는 19일 석가탄신일을 맞아 김한상 전국의료보험노조 위원장 등 노조간부 7명을 가석방한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국가적 중대사인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노사관계 안정을 꾀하기 위해 불법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형이 확정돼 복역중인 노조간부들을 가석방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정도론 부족하다는 게 노동계의 입장이다.
***“교섭 결렬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지 말라”**
현재 ‘월드컵 파업’을 둘러싼 쟁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사업장별 임금ㆍ단체협약 교섭이다. 현재 각 사업장별로 진행되고 있는 임단협 교섭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22일부터 각 업종별로 연쇄파업이 예정되어 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손낙구 실장은 “노동자들도 월드컵에 관심이 많고 이를 방해할 생각은 전혀 없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매년 6월 10일 전후에 치르던 임단협 시기를 5월 하순으로 앞당겨, 되도록 월드컵 전에 원만히 마무리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손 실장은 또 "거꾸로 정부나 사용주가 월드컵을 핑계로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인 임단협 교섭에 성실히 임하지 않는 게 문제"라면서 "교섭 결렬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해서는 안된다"고 정부와 재계의 '월드컵 무파업' 정책을 비판했다.
노동계가 월드컵을 이용해 파업을 벌이려는 게 아니라 정부와 사용자가 '월드컵 무파업'에 대한 지지여론을 빌미로 임단협에 불성실한 것이 문제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사용자단체에서는 노동계가 임단협의 실익을 챙기고자 일부러 교섭과 파업일정을 월드컵 기간에 맞추는 것이라는 주장을 펴며 맞서고 있는 상태다.
***"구속노동자 석방, 발전노조 손해배상 가압류 철회"**
두 번째 쟁점은 구속 노동자 석방 등 노동탄압에 대한 중단 요구다. 민주노총은 단병호 위원장 등 41명의 구속노동자 석방, 44명 노동자에 대한 수배 철회, 발전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가압류 철회 등을 요구하고 있다. 법무부가 발표한 석탄일 7명 석방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자세다.
한국노총도 월드컵을 빌미로 한 현장의 부당노동행위와 노동탄압 엄단, 노동운동 관련 구속노동자 석방, 임금체불사업장 특별조치 등 노사갈등을 실질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손낙구 실장은 “김대중 정부 들어 감옥에 수감된 노동자 수만 7백51명에 달한다”면서 “또 정부는 발전노조에 211억원을 손해배상청구해 3천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월급 중 절반을 가압류 당하고 있다”고 현 정부의 노동탄압 정책에 대해 비판했다. 손 실장은 “이런 문제는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다”며 “정부가 노동탄압을 중단하지 않는 한 노동자들은 투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월드컵 때문에 정당한 법집행을 중단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노동계가 '월드컵 기간중 파업'을 무기로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총파업 전개될지 미지수**
민주노총은 17일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월드컵에 참가하는 나라 대사관 앞에서 정부의 노동탄압을 알리는 1인 시위를 벌였다. 민노총은 또 18일 5.18 광주민중항쟁 22주년을 맞이해 전국 20여개 도시에서 정부의 노동탄압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를 개최하고 20일에는 파업 돌입 기자회견을 갖는다.
이처럼 '월드컵 기간중 파업'을 바라보는 노동계와 사용자단체 및 정부 사이의 입장차가 명확하고, 임단협과 구속노동자 석방 등의 쟁점도 해결이 난망한 상태다. 하지만 국민여론동향을 감안할 때 노동계의 총파업이 전면적으로 전개될 지도 미지수다. 최근 노동계가 예고한 몇차례의 총파업도 무위로 끝난 바 있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노사정 사이 교섭의 추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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