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후보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됨에 따라 정계개편론이 다시 정가의 화두로 떠올랐다.
노 후보는 이미 지난해 9월부터 프레시안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민주당 후보가 되면 정계개편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그러나 경선과정에서 야당과 여타 주자들로부터 집중 공격대상이 되자 "정계개편 관련 얘기는 하지 않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후보 확정 연설에서 "지역분열로 흩어진 개혁세력을 모아야 한다"며 다시 정계개편론에 불을 지폈다. 이제 정계개편은 정가 최대 관심사로 부상한 것이다.
노 후보는 29일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 30일 김영삼 전 대통령을 예방한다. 단절된 양김 세력의 화해 및 연대를 통해 과거 민주화 세력을 '신민주대연합' 구도로 결집시키겠다는 첫 단추인 셈이다.
그러나 노 후보가 정계개편론을 주창했고, 후보 확정 이후 첫 카드로 다시 공론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그 성패의 열쇠는 노 후보가 쥐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오히려 정계개편의 파트너라 할 YS, 한나라당 민주계 혹은 소장개혁파 의원들의 반응에 더 많은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일단 YS와 김덕룡 박종웅 김원웅 의원 등 정계개편 대상으로 거론되는 의원들은 아직은 "좀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무현 '자연스런 정계개편' 주장**
노 후보는 27일 후보로 확정된 직후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정계개편은 당과 상의하고 또 당 바깥의 사람들과도 상의하면서 적절한 태도를 취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당 내외 공론화 과정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29일 각종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내가 나서서 무리하게 추진할 때 인위적 정계개편, 의원 빼오기 등의 오해를 살 수 있으므로 국민이 변화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정치인들에게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 후보는 또 한나라당 김덕룡 강삼재 박종웅 의원 등 상도동계 의원들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특정인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서 "여당뿐 아니라 야당에서도 자발적인 공감대가 넓혀지고 자연스럽게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며 '자연스러운 정계개편'에 무게를 두었다.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에서 2위로 당선된 정대철 최고위원도 29일 KBS 라디오에 출연, "정계개편을 인위적으로 하면 부작용이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지만 자연스럽게 하면 개혁세력이 뭉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회창 "역 정계개편으로 맞서겠다"**
노 후보와 정 최고위원 모두 '자연스러운 정계개편'에 강조점을 두는 것은 정계개편 추진에 따른 '역풍'을 고려한 발언이라고 보여진다. 노 후보의 이런 입장은 대선후보 경선 초기 "당내 합의가 이뤄지면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공개 제안하고 접촉에 나설 것"이라던 것에 비해 조심스러워진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노 후보가 정계개편을 추진할 경우 그 실체가 야당의원 빼가기로 귀결될 것으로 보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회창 후보 측은 "노 후보가 정계개편에 나설 경우 우리도 역(逆) 정계개편 등을 통해 정면으로 맞서겠다"고 공언했다.
역 정계개편이 어떤 내용인지, 구체화될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는 아직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 그러나 노 후보와 민주당의 정계개편 추진이 구체화될 경우 '야당파괴 공작'에 맞선다는 논리 아래 한나라당의 단결력이 오히려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김덕룡 박종웅 김원웅 의원 등 "일단 관망"**
노 후보는 자신의 정계개편에 대해 "민주당을 깨는 정계개편이 아니라 한나라당이 깨지는 정계개편"이라고 밝혀왔다. 따라서 '자연스런 정계개편'이란 정가에 개혁세력 결집의 당위성을 전파하면서 한나라당 내 일부 민주계와 소장개혁파 의원들이 움직여 주기를 기다린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덕룡 강삼재 박종웅 이부영 김영춘 이성헌 김원웅 서상섭 안영근 의원 등이 정가 안팎에서 그간 거론돼 왔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민주계는 이미 대부분 이회창체제에 편입된 지 오래다. 또 대선 경선에 참여하고 있는 이부영 의원도 "노 후보의 정계개편론은 쿠테타를 비난할 수 없는 대단히 위험한 사고"라고 비난했다.
또 29일 이부영 후보와 당소속 소장파 원내외 위원장 모임인 미래연대 회원 10여명이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회동을 갖고 당내 경선과 관련한 연대방안을 논의한 사실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이 모임에는 미래연대 공동대표인 이성헌 김영춘 심재철 박종희 안영근 의원 등이 참석했다. 일단 소장개혁파들은 이부영 의원과의 연대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주목의 대상이 되는 김덕룡 박종웅 김원웅 의원 등도 "지켜보겠다"며 좀더 구체적인 그림이 드러날 때까진 움직이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변인격인 박종웅 의원은 "노 후보의 민주세력 연합론을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덕룡 의원의 조재훈 보좌관은 "기존 정치로는 안된다는 공감대가 확산된 것 아닌가. 그러나 노 후보의 정계개편론은 좀 더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원웅 의원의 진혁 보좌관은 "원칙적으로 지역구도를 깨는 정계개편에는 동의한다"면서 그러나 "호남중심의 민주당과 영남중심의 한나라당의 구도 자체가 깨지는 정도의 큰 그림 속에서 이뤄지는 정계개편이 아니라 민주당을 중심으로 일부 바깥사람을 끌어들이는 방식이라면 국민들이나 정치권에 설득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 보좌관은 "민주당 내에서 어떻게 공론화되고 구체화되는지 좀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YS "지방선거 이후 지지후보 밝히겠다"**
한편 노 후보는 정계개편과 관련 YS와의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영남권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후보 재신임을 묻겠다"고 공언해 온 노 후보에게 YS 지지는 승패를 가를 중요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YS가 지방선거 이전에 결정을 내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지난 27일 일본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YS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지난 5년간 경상도가 너무 많은 박해를 받았다"면서 "차기 대통령은 지역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민족통합 대통령이 돼야 하며 이런 기준에 맞춰 6월 지방선거가 끝난 뒤 적절한 시점에 지지후보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노 후보가 정계개편론을 가속화할수록 YS 입장에선 정치권 관심의 중심으로 부상하게 되는 격이다. 아직은 최대한 '몸값'을 올리겠다는 여유를 부린 것이다.
노 후보는 29일 민주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영삼 전대통령에게 인사드리는 것 자체가 정치지형의 큰 변화라고 본다"고 말했지만 지방선거 전 YS의 지지를 얻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 눈치다. 노 후보는 "정치적으로 이익될 만한 일이 있어도 조급하게 도움을 청하거나 거래를 한 적이 없다"며 "이번에 가서도 속 보이는 말씀을 드리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시간을 두고 YS와의 구체적인 협력을 모색해 나갈 뜻을 비쳤다.
***정치권 최대 화두, 그러나 아직은 미지수**
노무현 후보가 불을 붙인 '정계개편론'은 아직 구체적인 외연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집권당 차기 대통령후보가 후보 확정 이후 첫번째로 들고나온 카드라는 점에서 정가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노 후보는 29일 "지방선거전 약간의 상징적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뭔가 손에 잡히는 성과가 있는 듯한 자세를 취하며 한발 더 나아갔다.
그러나 실제 정계개편이 노 후보가 의도했던 대로 지역 구도를 깨는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을지, 아니면 당 외곽인사들의 집단 영입을 통한 '신당 창당' 정도에 머물지 아직은 지켜봐야 한다.
한나라당 경선결과, 그리고 지방선거 공천 확정 등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정치권이 바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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