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간은 안산군(安山郡)에 옮겨 안치했습니다.
청원군 심종과 예조 전서 성석인(成石因)을 토산에 보내 이방간에게 명령을 전했습니다.
“토산은 동북면에 왕래하는 땅이고, 또 네가 전에 거느렸던 군사들이 사는 곳이다. 네가 오래 머물면 뒤에 틀림없이 말이 있을 것이니, 안산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 네가 받은 땅은 그 고을에 옮겨 주고 또 식읍(食邑) 50 호(戶)를 주니, 네가 편한 대로 땅을 맡기고 사람을 부려 천수(天壽)를 마치도록 하라. 설날에는 혼자 서울에 들어와 서로 생각하는 정을 펴도록 하라.”
이방간이 갓을 벗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통곡했습니다.
며칠 뒤 대간이 합동으로 박포를 주살하기를 청하니, 그대로 따랐습니다.
3성의 담당들이 일찍이 박포의 처벌을 청하니, 임금이 말했습니다.
“박포가 죄는 있지만, 공신이라 내가 차마 죽일 수가 없다.”
그러자 다시 박포를 주살하라는 글을 올려 결국 허락습니다. 이때 박포는 함주에 귀양가 있었는데, 사헌부 형조의 관원을 보고 탄식했습니다.
“주상께서 어질고 후하셔서 내가 생명을 연장한 지가 이미 달포가 넘었으니, 죽는다고 무슨 한이 있겠는가?”
말을 마치고는 처형을 당했습니다.
이에 앞서 태상왕이 세자에게 일렀습니다.
“왜 박포를 주살하지 않느냐?”
“공신이기 때문에 경감했을 뿐입니다.”
“박포가 공신이긴 해도 자신이 중한 죄를 범했으니, 주살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요즘 대간에서 주살하기를 청하기 때문에, 신이 임금에게 아뢰어 주살하려고 했습니다.”
“대간의 청이 참으로 옳다. 나라에 대간이 있는 것이 또한 중하지 않은가?”
이해 여름, 대궐 갑사 가운데 동북면 출신이 아닌 자를 가려서 파면했습니다. 모두 50여 명이었는데, 홀치(忽赤), 충용위로 대신케 했습니다.
얼마 후 성균관 악정(樂正) 정이오는 갑사 가운데 이방간의 휘하 사람이 많아서 세자가 출입할 때에 항상 두려움을 느낀다며 대궐 갑사 양성을 중지하라고 글을 올렸습니다.
임금이 보고 조온에게 말했다.
“정이오의 말이 어떤가?”
“어찌 선비 한 사람의 말로 가볍게 대궐 갑사를 없앨 수 있겠습니까?”
“정이오의 말이 내 생각과 꼭 일치한다.”
곧 진무소(鎭撫所) 갑사 3백 명을 없애고, 군기(軍器)와 갑옷 무기를 모두 삼군부로 보냈습니다. 다만 임금이 되기 전의 휘하 1백 명은 남겼습니다.
또 몇 달 뒤에는 문하부에서 글을 올려 갑사를 삼군부에 돌려보내도록 청했습니다.
“전하께서 대를 잇고 선대의 법을 지켜 태평에 이르기 위해 지난번에 갑사를 삼군부에 보냈는데, 몇십 명이 아직도 궁내를 지키면서 흉기를 차고 있으니 의장(儀仗)의 제도에 어긋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갑사를 모두 삼군부에 돌려보내 선대의 법을 지키는 뜻을 보이소서.”
임금이 윤허는 했으나, 좋지 않은 기색이 역연했습니다.
또 문하부의 건의에 따라 원종(原從) 호위 부대를 없애 모두 삼군부로 보냈습니다.
이방간은 9월에 익주(益州)에 옮겨 안치하고, 쌀 콩 각각 1백50 섬을 내려주었습니다.
이에 앞서 8월부터 사헌부에서 이방간을 먼 지방에 옮겨 두자고 몇 번 청했으나 윤허하지 않았는데, 이때 문하부에서 글을 올렸습니다.
“이방간이 간사한 소인의 말을 믿고 실로 참란(僭亂)한 죄를 범했으니 마땅히 극형에 처해야 할 텐데, 다만 전하의 우애하시는 정으로 머리를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경기 안에 있으니, 만일 변란을 선동하는 일이 있으면 미칠 수 없을 것입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대의로 결단해 먼 땅에 옮겨 두고 드나들지 못하게 하면, 전하께서는 보전하는 덕이 있고 저들도 편안하고 영화로운 복을 누릴 것이니 어찌 좋지 않겠습니까?”
임금이 장군 박순(朴淳)에게 지시해 옮겨 안치하도록 했습니다.
10월에는 이방간의 난을 계기로 공을 세우면 상주고 죄를 지으면 벌주는 법을 세웠습니다. 의정부에서는 동지총제 이내가 그 음모를 제일 먼저 고했다며 공신 칭호를 주고 군(君)으로 봉해 세습하게 하고 토지 1백 결과 노비 20 명을 주자고 청합니다. 박포는 앞장서 음모를 꾸미고 화근을 만들어냈으니 관작을 추탈하고 자손의 벼슬길을 막으며 공신의 토지와 노비를 나라에 몰수하도록 청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이방간이나 박포 같은 자가 있어 상황을 알고 제일 먼저 알린 자는 직급이 높고 낮음을 가리지 말고 이내와 같이 상주고, 고한 자가 천인(賤人)이면 천역을 면제하고 벼슬길을 열어 바로 장군에 임명하며, 범인의 재산과 토지 노비를 모두 상으로 주도록 했습니다.
정상을 알고도 고하지 않은 자는 주범 종범을 가리지 말고 모두 극형에 처하고, 부모 형제 처자도 모두 연좌하는 것을 통상 규정으로 삼자고 청했습니다. 임금이 모두 허락했습니다.
이내의 말을 세자에게 전해 환란을 방비케 한 단양백 우현보에게는 땅 70결을 내려주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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