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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과 놀다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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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과 놀다 <78>

이방원, 드디어 세자가 되다

정안공 이방원이 정종의 뒤를 이을 세자로 결정된 것은 이방간의 거사가 실패한 다음다음날이었습니다.

문하부 참찬 하윤 등이 청했습니다.
“정몽주의 난에 정안공이 없었다면 큰 일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고, 정도전의 난에 정안공이 없었다면 또한 어찌 오늘이 있었겠습니까? 또 엊그제 일로 보더라도 하늘의 뜻과 사람의 마음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청컨대 정안공을 세워 세자로 삼으소서.”

임금이 말했습니다.
“경들이 참 잘 말했다.”
그러고는 도승지 이문화에게 지시해 도당(都堂)에 명을 전했습니다.

“대저 나라의 근본이 안정된 뒤라야 사람들의 뜻이 안정된다. 이번의 변란은 바로 나라의 근본이 안정되지 못한 까닭이다. 나에게 서자(庶子)라 하는 것이 있으나, 그 태어난 날짜를 살펴보면 시기에 맞지 않고 애매해 알기 어려운데다 또 똑똑치 못하고 약해 지방에 둔 지 오래다. 지난번에 우연히 대궐 안에 들어왔지만, 지금 도로 밖으로 내보냈다. 또 옛날 훌륭한 임금은 적사(嫡嗣)가 있어도 어진이를 택해 물려주었다. 동복아우 정안공 방원은 개국 초에 큰 공로가 있었고, 또 정사(定社) 때 우리 형제 네댓 명이 목숨을 보전한 것도 모두 그의 공이었다. 이제 명을 내려 세자로 삼고, 또 안팎의 각종 군사 일을 모두 지휘하게 한다.”

우정승 성석린이 명령을 듣고, 모든 부서를 거느리고 하례했습니다. 임금이 도승지에게 지시해 세자를 세우는 일을 태상왕에게 아뢰니, 태상왕이 말했습니다.
“장구한 계책은 집정 대신과 의논하는 것이 옳다.”

임금은 삼사 좌복야 이서를 보내 종묘에 세자 책봉을 고했습니다. 2월 4일 임금의 아우 정안공 이방원을 책립(冊立)해 왕세자로 삼고 군국(軍國)의 중요한 일을 맡게 했습니다. 그러고는 전국에 사면령을 내렸습니다.

이때에 대신 가운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옛날부터 제왕이 동복아우를 세우면 모두 태제(太弟)로 봉했지 세자로 삼은 일은 없었습니다. 청컨대 왕태제(王太弟)로 삼으소서.”

임금이 말했습니다.
“이제 나는 바로 이 아우를 아들로 삼겠다.”

세자가 태상왕에게 나아가 사은(謝恩)하니, 태상왕이 잔치를 베풀어주고 임금 노릇 하는 도리를 구석구석 논했습니다. 또 말했습니다.

“네 몸이 관계된 바가 지극히 중하니, 마땅히 스스로 삼가야 한다. 지금 방간이 어리석고 비루하며 아는 것이 없어서 함부로 군사를 일으켜 이 지경이 되었다. 우리 나라에 귀가(貴家) 대족(大族)이 많으니, 틀림없이 모두 비웃을 것이다. 나도 부끄럽다. 그러나 네가 이미 세자가 되었으니, 지극히 공정한 도리를 펴서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보전해야 한다. 늙은 아비는 여기까지만 말하겠다.”

세자가 술잔을 올리고 한껏 즐기다가 나왔습니다.
태상왕이 이저에게 말했습니다.
“박포는 죽고도 남는 죄가 있다. 돌아가 네 임금에게 말해 반드시 법에 따라 다스려 뒷사람을 경계하도록 하라.”

도당에서 모든 부서를 거느리고 글을 올려 세자 책봉한 것을 하례하고, 또 세자의 집에 가 숙배(肅拜)했습니다. 전서 이상에게는 세자가 모두 답배(答拜)했습니다. 세자부(世子府)를 설치하도록 지시하고, 인수부(仁壽府)라고 이름했습니다.

세자가 제릉에 참배하고 제물을 올렸습니다.
한 달 뒤 세자의 부인 민(閔)씨는 세자 정빈(貞嬪)으로 봉해졌습니다. 정빈까지 책봉한 뒤 임금이 정전에 나아가 세자에게 잔치를 베풀었는데, 공 후와 재상이 모두 참석했습니다. 임금이 내전에 들어가 세자와 이화, 이거이, 이저, 심종, 이양우를 불러 한껏 즐기고 끝마쳤습니다. 중궁도 정빈에게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임금이 왕세자와 함께 제릉에 배알하고는 호곶(壺串)과 다야점(多也岾)에서 사냥했습니다.
도평의사사에서 장막 처소에 나아가 잔치를 베푸니, 한껏 즐기고 밤에 끝냈습니다. 임금이 재상들과 더불어 연귀를 지었는데, 성석린에게 좋은 말 1 필을 내려주고 무소뿔띠 1 개를 풀어 문하부 찬성사 이거이에게 내려주었습니다.

재상들이 모두 나가고, 임금이 세자와 이거이, 이저, 이무와 더불어 밤이 될 때까지 한껏 즐겼습니다. 세자가 일어나 춤을 추니, 임금도 일어나 춤을 추었습니다.

이튿날 술에 취해 일어나지 못하고 해가 기울어서야 대궐로 돌아왔습니다. 내시 박영문이 나아가 말했습니다.
“어제 전하께서 일어나 춤춘 것은 예가 아닙니다. 태상왕 앞에서라면 괜찮지만, 어찌 임금이 세자와 신하들과 더불어 마주 춤추는 예가 있겠습니까?”

임금이 말했습니다.
“내가 취해서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왕세자가 새 도읍에 가서 종묘에 배알하고 돌아온 뒤 임금과 세자가 양청에 나아가 활 쏘는 것을 구경했습니다. 그러고는 잔치를 베풀어 한껏 즐겼습니다. 임금이 일어나 춤을 추니, 세자가 몹시 취해 임금의 허리를 붙잡았습니다. 임금이 말했습니다.
“이것이 너의 진정이구나!”
밤이 되어서야 끝냈습니다.

며칠 뒤에는 세자가 대궐에 와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의안공 이화와 이숙번 등이 참석했습니다. 공 후와 재상이 차례로 일어나 춤추고, 임금도 일어나 춤추었습니다. 세자가 취해 쓰러지자, 임금이 직접 사람을 시켜 부축해 일으켜 세자가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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