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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과 놀다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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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과 놀다 <77>

이번엔 친형을 몰아내다 ③

서익이 창을 잡고 이방간을 쫓으니, 이방간은 형세가 궁해 북쪽으로 달아났습니다. 이방원이 소근을 소리쳐 불러 말했습니다.
“무지(無知)한 사람이 혹 형을 해칠까 두렵다. 네가 달려가서 빨리 소리쳐 해치지 말게 하라.”

소근이 고신부(高臣傅), 이광득(李光得), 권희달(權希達) 등과 더불어 말을 달려 쫓았습니다. 이방간은 혼자서 달려 묘련 북쪽 골짜기로 들어갔는데, 소근 등이 미처 보지 못하고 곧장 달려 성균관(成均館)을 지났습니다. 탄현문(炭峴門)에서 오는 자들을 만나 물으니 모두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소근이 도로 달려 보국(輔國) 서쪽 고개에 올라가 바라보니, 이방간이 묘련 북쪽 골짜기에서 마전(麻前) 갈림길로 나와 보국동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안장 갖춘 작은 유마가 따랐습니다. 소근 등이 뒤쫓으니, 이방간이 보국 북쪽 고개를 지나 성균관 서쪽 골짜기로 들어섰습니다.

예전 적경원(積慶園) 터에 도착해 말에서 내려 갑옷을 벗고 활과 화살을 버리고 누웠습니다. 권희달 등이 쫓아 다다른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나를 죽이러 왔구나.”

권희달 등이 말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공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에 이방간이 갑옷을 고신부에게 주고, 활과 화살을 권희달에게 주고, 환도(環刀)를 이광득에게 주고, 소근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더 가진 물건이 없어 네게는 줄 것이 없구나. 내가 살아나면 나중에 꼭 후하게 갚겠다.”

권희달 등이 이방간을 부축해 작은 유마에 태우고 옹위해 성균관 문 바깥 동봉(東峯)에 이르러 말에서 내렸습니다. 이방간이 울며 권희달 등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남의 말을 들어서 이 지경이 되었다.”

정구가 도착해 교서를 펴서 읽고 이방간의 품속에 넣어주니, 이방간이 절하고 말했습니다.
“주상의 지극한 은혜에 감사합니다. 신은 처음에 반역할 마음이 없었고, 다만 정안을 원망했을 뿐입니다. 지금 이런 교서를 내리셨으니, 주상께서 어찌 나를 속이겠습니까? 원컨대, 여생(餘生)을 빕니다.”

이때에 목인해가 탔던 이방원 집의 말이 화살을 맞고 고삐가 풀려 스스로 와서 마구간으로 들어갔습니다. 부인은 틀림없이 싸움에 패한 것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싸움터에 가서 남편과 함께 죽겠다며 걸어서 나갔습니다. 시녀 김(金)씨―나중에 이방원의 첩이 돼 경녕군(敬寧君)을 낳는다―등 다섯 사람이 말렸으나 듣지 않았고, 종 한기(韓奇) 등이 길을 가로막아 그만두게 했습니다.

처음에 변란이 막 일어났을 때 이화와 이천우가 이방원을 부축해 말에 오르게 했는데, 부인이 무당들을 불러 이길 수 있을지를 물으니 모두 말했습니다.
“꼭 이깁니다. 걱정 마십시오.”

이웃에 가야지(加也之)라는 무당 할멈이 살았습니다. 그가 오자 부인이 말했습니다.
“어젯밤 새벽녘 꿈에, 내가 신교(新敎)의 옛집에 있다가 하늘의 태양을 보니 아기 막동(莫同)이가 해 속에 앉아 있었다. 이게 무슨 징조인가?”

막동이는 세종(世宗)의 아이 때 이름이었습니다. 할멈이 풀이해주었습니다.
“공께서 왕이 되어 항상 이 아기를 안아줄 징조입니다.”

부인이 말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런 일을 어찌 바랄 수 있겠는가?”
할미는 제 집으로 돌아갔는데, 이때에 이르러 이겼다는 소문을 할멈이 듣고 와서 알리니 부인이 그제서야 돌아왔습니다.

이방원이 군사를 거두어 마전 갈림길의 냇가 언덕 위에 말을 멈추고 소리를 놓아 크게 우니, 높고 낮은 군사가 모두 울었습니다. 이방원이 이숙번을 불러 말했습니다.

“형의 성품이 본래 우직해, 내가 생각하기에 틀림없이 남의 말에 빠져 이런 일을 저질렀으리라 여겼는데 과연 그렇다. 네가 가서 형을 보고 변란을 일으킨 이유를 물어보라.”

이숙번이 달려가 이방간에게 물으니, 이방간이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이숙번이 다시 물었습니다.
“공이 이미 권희달에게 말하고서 왜 말을 하지 않습니까? 공이 말하지 않으면 나라에서 틀림없이 물을 것인데, 끝내 숨길 수 있겠습니까?”
이방간이 어쩔 수 없이 털어 놓은 내막은 이랬습니다.

지난해 동짓날 박포가 이방간의 집에 와서 말했습니다.
“오늘 큰비가 내렸는데, 공은 그 의미를 아십니까? 옛 사람은 겨울비에 길이 패면 군대가 저자에서 교전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때에 어찌 군사가 교전하는 일이 있겠는가?”
“정안공이 공을 보는 눈초리가 이상하니, 틀림없이 장차 변란이 있을 것입니다. 공은 마땅히 선수(先手)를 써야 할 것입니다.”

이방간은 그 말을 듣고 남의 손에 헛되이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 먼저 군사를 일으켰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숙번이 돌아와 고하니, 이방원이 드디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임금이 우승지 이숙을 보내 이방간에게 일렀습니다.
“네가 백주(白晝)에 서울에서 군사를 움직였으니, 죄를 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형제의 지극한 정으로 차마 주살하지 못하니, 네가 원하는 대로 지방에 안치하겠다.”

이방간이 토산(兎山) 시골집으로 돌아가기를 청했습니다. 임금이 대호군 김중보(金重寶)와 순군부 천호 한규에게 지시해 이방간 부자를 압송해 토산에 안치토록 했습니다.

박포는 본래 이방원의 조전절제사였습니다. 그날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고 중립을 지키며 변란을 관망하고 있었는데, 순군부 옥에 내리도록 지시했습니다. 또 이방간의 도진무 최용소와 조전절제사 이옥, 장담, 박만 등 10여 명도 가두었습니다.

그때에 이방의는 오랜 병 때문에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었는데, 변란 소식을 듣자 통곡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위에는 밝은 임금이 있고 아래에는 훌륭한 아우가 있는데, 방간이 왜 이런 짓을 했는가?”
즉시 절제사 인(印)과 군적(軍籍)을 삼군부에 도로 바쳤습니다.

이에 앞서 서운관에서 아뢰었습니다.
“어제 저녁때에 붉은 요기(妖氣)가 서북쪽에 보였으니, 종실 가운데서 맹장(猛將)이 나올 것입니다.”

사대부들이 모두 이방원을 지목했는데, 여드레 만에 변란이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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