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지 이숙번이 이방원을 따라 사냥을 가려고 나가다 백금반가(白金反街)에 이르렀는데, 민무구가 사람을 보내 말했습니다.
“빨리 갑옷 입고 무기 들고 오시오.”
이숙번은 곧 이방원의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가 도착하기 전에 이방원은 이미 군사를 정돈하고 나와 시반교(屎反橋)를 지나 말을 멈추었습니다. 군사들이 달려와 말 앞에 모여 거리를 막고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이숙번이 군사들을 각기 자기 부대로 돌아가게 하고, 대오(隊伍)가 갖춰지자 이방원에게 고했습니다.
“제가 먼저 적에게 나가겠습니다. 맹세코 패해 달아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공은 빨리 오십시오.”
그러고는 무사 몇 사람을 거느리고 먼저 달려갔습니다.
이방원이 말했습니다.
“우리 군사가 한곳에 모여 있으니, 저쪽에서 활을 쏜다면 쏘는 족족 맞게 될 것이다. 전에 석전(石戰)을 보았는데, 갑자기 한두 사람이 옆의 작은 골짜기에서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오니까 적들이 모두 놀라 무너졌다. 지금 작은 골짜기의 복병이 매우 두렵다.”
그러고는 이지란에게 지시해 군사를 나누어 활동(闊洞)으로 들어가 남산을 올라 행군해 종묘 동구에 이르게 하고, 이화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남산에 오르게 했으며, 또 파자반(把子反), 주을정(注乙井), 묘각(妙覺) 등 여러 동네에 모두 군사를 보내 방비했습니다.
이숙번이 선죽 노상(路上)에 이르니, 한규, 김우 등이 탄 말이 화살에 맞아 퇴각해 달아나고 있었습니다. 이숙번이 한규에게 일렀습니다.
“네 말이 죽게 됐으니, 즉시 바꿔 타야겠다.”
김우에게 일렀습니다.
“네 말은 다치지 않았으니, 빨리 되돌아가서 싸우라.”
이숙번이 달려서 양군(兩軍) 사이로 들어갔는데, 군사 하나가 앞서 들어와 이숙번을 부르면서 한 곳에 서서 쏘자고 말하니 이숙번이 대답했습니다.
“이런 때는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된다. 나는 개울 가운데 서서 쏘겠다.”
이방원이 한규에게 말을 주어 도로 나가게 했습니다.
임금은 다시 대장군 이지실(李之實)을 보내 이방간을 타일러 중지시키려 했으나, 화살이 비오듯 쏟아져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방간은 선죽에서 가조가에 이르러 군사를 멈추었습니다. 양군이 교전했는데, 이방간의 보졸 40여 명은 마정동(馬井洞) 안에 서 있었고, 또 기병 20여 명은 전목동(典牧洞) 동구에서 나왔습니다. 이방원의 휘하 목인해(睦仁海)가 얼굴에 화살을 맞았으며, 김법생(金法生)은 화살에 맞아 즉사했습니다.
이에 이방간의 군사가 다투어 이숙번을 쏘았습니다. 이숙번은 화살 10여 개를 쏘았으나 모두 맞지 않았습니다. 양군은 서로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임금은 이방간이 명령을 거역했다는 말을 듣고 더욱 화가 났으나, 또한 그가 다칠까 두려워 탄식하며 말했습니다.
“방간이 패악스럽기는 하나 그 본심은 아니고 틀림없이 간사한 사람에게 속았을 따름이다. 형제간에 이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문하부 참찬 하윤이 아뢰었습니다.
“교서를 내려 달래면 풀 수 있을 것입니다.”
곧 하윤에게 지시해 교서를 짓게 했습니다.
“내가 부덕한 몸으로 신민의 위에 자리해 종실, 훈구(勳舊)와 각급 신하가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다함에 힘입어 태평에 이르렀는데, 뜻밖에 동복아우 회안공 방간이 무뢰배의 헐뜯고 이간하는 말에 빠져 골육을 해치고자 꾀하니 내 매우 애통하다. 다만 양쪽을 온전하게 해서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려 하니, 방간은 즉시 군사를 풀어 해산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목숨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식언하지 않을 것은 하늘의 해를 두고 맹세한다. 단 몇 명의 군사라도 교지를 내린 뒤에 즉시 해산하지 않으면 내가 용서치 않고 모두 군법으로 처단하겠다.”
좌승지 정구에게 지시해 교서를 가지고 군진(軍陣) 앞에 가도록 했습니다.
그가 도착하기 전에 상당후 이저가 휘하인 경상도 호위군을 거느리고 검동(黔洞) 수원지를 거쳐 묘련(妙蓮) 고개를 통과했습니다.
이방원은 검동 앞길에 군사를 머무르고 자주 사람을 시켜 선봉 부대를 경계했습니다.
“우리 형을 보거든 화살을 쏘지 말라. 어기는 자는 베겠다.”
이화 등은 남산에 오르고 이저는 묘련 고개 북쪽에 이르러 함께 뿔피리를 불었습니다. 이숙번이 기사(騎士) 한 사람을 쏘아 맞혔는데, 시위 소리가 나자마자 거꾸러졌습니다. 이방간을 보좌하던 이성기였습니다.
이맹종은 본래 활을 잘 쏘았는데, 이날은 활을 당겨도 잘 벌어지지 않아 쏠 수가 없었습니다. 대군(大軍)이 뿔피리를 부니, 이방간의 군사가 모두 무너져 달아났습니다. 서익, 마천목, 이유 등이 선봉이 되어 쫓았습니다.
이방간의 군사 세 사람이 창을 잡고 한데 서 있었는데, 마천목이 두 사람을 쳐 죽이고 또 한 사람을 죽이려 하니 이방원이 보고 말했습니다.
“저들은 죄가 없으니 죽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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