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이 즉위한 뒤에 남재가 대궐 뜰에서 큰 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 당장 정안공을 세워 세자로 삼아야 합니다. 이 일은 늦출 수가 없습니다.”
정안공 이방원이 듣고 크게 화를 내며 꾸짖었지만, 임금의 정실인 왕후 김씨에게 아들이 없으니 임금의 동복 아우인 이방의, 이방간, 이방원이 모두 후사 욕심을 낼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실록은 세 사람을 평가하면서 ‘정답’을 암시합니다. 즉 이방의는 성품이 순후하고 조심스러워 다른 생각이 없었으며, 이방간은 자기가 다음 임금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배우지 못해 철없고 어리석었으며, 이방원은 똑똑하고 조숙하며 경서와 이치에 통달한데다 개국 정사(定社)가 모두 그의 공이었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모두 마음을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이방원이 세자가 되리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바로 그것이 현실화되는 사건이 1400년 1월 28일에 일어났습니다.
이방간이 처조카인 교서감 판사 이내에게 말했습니다.
“정안공이 나를 시기하고 있는데, 내가 어찌 필부(匹夫)처럼 남의 손에 개죽음하겠는가?”
이내가 놀라 말했습니다.
“공이 소인의 헐뜯는 말을 듣고 골육을 해치려 하니, 어찌 차마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더욱이 정안공은 왕실에 큰 공로가 있습니다. 개국 정사가 누구의 힘입니까? 공의 부귀도 그 덕분일 뿐입니다. 공이 굳이 그렇게 하시려 한다면 틀림없이 대악(大惡)의 이름만 얻을 뿐, 일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방간이 화를 내고 기분 나빠하면서 말했습니다.
“나를 도울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시 강인부는 이방간의 아내의 양아버지인데, 꿇어앉아서 손을 비비며 말했습니다.
“공은 왜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십니까? 제발 다시는 말하지 마십시오.”
이내는 우현보의 문생이었습니다. 우현보의 집에 가서 그 말을 자세히 하고, 이방간이 이달 그믐날에 거사하려 한다고 전한 뒤 말했습니다.
“정안공도 공의 문생입니다. 서둘러 가만히 알려줘야 합니다.”
우현보가 그 아들 우홍부를 시켜 이방원에게 알렸습니다. 이날 밤에 이방원이 하윤, 이무 등과 함께 변란에 대응할 계책을 비밀리에 의논했습니다.
이에 앞서 이방간이 다른 계획을 꾸미고 이방원을 집으로 청했는데, 이방원이 가려다가 갑자기 병이 나는 바람에 가지 못했습니다. 그 뒤 이방간이 이방원과 함께 대궐에 나가 임금을 뵌 뒤 말을 나란히 타고 돌아오는데, 이방간은 말 한 마디 건네지 않았습니다.
그때에 삼군부에서 공 후들로 하여금 둑제(纛祭)에 쓸 날짐승을 사냥하도록 했습니다. 이방원이 다음날 사냥을 나가려고 우선 조영무를 시켜 몰이꾼을 거느리고 새벽에 들에 나가게 했습니다.
이방간의 아들인 의령군(義寧君) 이맹종이 이방원의 집에 와서 사냥 가는 곳을 묻고는 말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도 오늘 사냥을 가십니다.”
이방원이 사람을 이방간의 집에 보내 사냥 가는 곳을 알아보았습니다. 이방간의 군사는 모두 갑옷을 입고 분주히 모여 있어, 이방원은 변란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에 의안공 이화와 완산군(完山君) 이천우 등 10여 사람이 모두 이방원 집에 모였습니다. 이방원이 군사로 자신을 지키기만 하고 나가려 하지 않으니, 이화와 이천우가 곧바로 침실로 들어가 군사를 일으켜 대응할 것을 힘껏 청했습니다.
이방원은 눈물을 흘리며 굳이 거절했습니다.
“골육을 서로 해치는 것은 정말 옳지 못합니다. 내가 무슨 낯으로 응전하겠습니까?”
이화와 이천우 등이 울며 청해 마지않았으나 역시 따르지 않고 곧 사람을 이방간에게 보내 대의(大義)로 설득하며 감정을 풀고 서로 만나자고 청했습니다. 이방간이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내 뜻은 이미 정해졌다. 어찌 다시 돌이킬 수 있겠는가?”
이화가 이방원에게 말했습니다.
“방간이 한없이 흉악하고 음험해 이 지경이 됐으니, 어찌 작은 절조를 지키고 종묘 사직의 큰 계책을 생각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방원은 여전히 굳이 거절한 채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화가 이방원을 억지로 끌고 바깥 대청으로 나왔습니다. 이방원은 어쩔 수 없이 종 소근을 불러 갑옷을 꺼내 장수들에게 나누어주게 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부인이 곧 갑옷을 꺼내 입히고 홑옷을 걸쳐주면서 대의(大義)를 들어 군사를 일으키도록 권했습니다. 이방원이 나오니, 이화, 이천우 등이 껴안아 말에 오르게 했습니다.
이방원이 예조 전서 신극례를 시켜 임금에게 아뢰었습니다.
“대궐 문을 단단히 지키도록 명하셔서 비상(非常)에 대비하소서.”
임금은 믿지 않았습니다.
조금 뒤에 이방간이 그 휘하인 상장군 오용권을 시켜 아뢰었습니다.
“정안공이 나를 해칠 계획을 꾸며, 내가 어쩔 수 없이 군사를 일으켜 공격합니다. 주상께서는 제발 놀라지 마소서.”
임금이 크게 화를 내며 도승지 이문화를 시켜 이방간에게 가서 타이르도록 했습니다.
“네가 난언(亂言)을 듣고 홀려 동기를 해치려 하니, 매우 패악스럽다. 네가 군사를 해산하고 혼자 대궐로 오면 내가 살려주겠다.”
이문화가 도착하기 전에 이방간은 이미 인척 민원공(閔原功)과 기사(騎士) 이성기(李成奇) 등의 부추김을 받아, 이맹종과 휘하 수백 명을 거느리고 나섰습니다. 갑옷에 무기를 든 채 태상왕 궁전을 지나다가 사람을 시켜 아뢰었습니다.
“정안(靖安)이 신을 해치려 하는데 신이 헛되이 죽을 수는 없어, 군사를 일으켜 변란에 대응합니다.”
태상왕이 버럭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네가 정안과 아비가 다르냐, 어미가 다르냐? 저 소 같은 위인이 어찌 이런 일을 벌이는가?”
이방간은 군사를 움직여 내성(內城) 동대문으로 향했습니다. 이문화가 선죽교 가에서 만나 교지(敎旨)가 있다고 하니, 이방간이 말에서 내렸습니다. 이문화가 교지를 전했으나 이방간은 따르지 않고 말에 올라 군사들을 가조가(可祚街)에 포진시켰습니다.
이방원이 노한(盧閈)을 시켜 이방과에게 고했습니다.
“형은 병이 있으니, 군사를 엄하게 해서 스스로 지키고 움직이지 마십시오.”
또 이응(李膺)을 시켜 내성 동대문을 닫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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