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걸. 1963년 11월 12일생. 김대중 대통령의 세 아들 중 작고한 전처 소생인 홍일ㆍ홍업씨와 달리 이희호 여사와 사이에서 난 유일한 아들.
이화여대사범대부속고등학교 졸업. 1982년 고려대 불문과 입학. 1984년 미국 애틀랜타에 있는 에모리대로 유학. 90년 귀국해 고대에 복학. 93년 대학 졸업. 93년 10월 다시 도미, 94년 남캘리포니아대학교 대학원 국제정치학 석사과정에 입학. 2000년 석사학위 취득. 현 동대학 국제관계학 박사과정 재학 중. 1991년 임미경씨와 결혼. 자녀는 2남.
불혹의 나이인 40대에 들어섰고, 부인과 두 자녀를 둔 가장이지만 그간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진 바 없고, 현재도 무직이다. 대학 입학에서 졸업까지 11년,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에 7년이 걸렸다.
김 대통령 임기 내내 미국에 체류했던 홍걸씨는 대통령 아들 문제에서 '주변부'에 머물러 왔다. 야당이 그의 '호화생활'과 관련된 의혹을 제기했지만 구체성과 무게를 지니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최규선 게이트'로 전면에 등장하면서 그를 둘러싼 의혹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이희호 여사 사이에서 난 유일한 아들**
"어린 시절과 사춘기의 너에게 준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생각할 때 아버지는 언제나 너에게 본의 아닌 못할 일을 한 것 같은 죄책감을 느껴왔다."
김대중 대통령이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청주교도소에서 수감 중이던 1980년 12월 7일 홍걸씨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김 대통령은 세 아들에게, 특히 홍걸씨에게 상상 못할 마음의 빚을 갖고 있다고 한다. 홍걸씨는 초등학생 때 김 대통령의 납치 사건을 겪고, 중학교 내내 아버지가 감옥에 있었고, 고등학생이 돼서는 아버지가 연금되고, 내란 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아 수감된 것을 보아야 했다. 또 이희호 여사에게 홍걸씨는 유일한 친아들이다.
홍걸씨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통해 소심하고 다소 폐쇄적인 성격을 갖게 됐다고 한다. 최규선씨의 비리에 연루된 것에 대해 홍걸씨 측근들은 "순진하고 심성이 여린 홍걸씨가 최씨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어쨌든 홍걸씨의 비리의혹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지만 김 대통령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평소 발목까지 불길이 타 올라와도 '아직 심장까지 안 왔어'라는 태도로 다소 늦은 대응을 하는 게 김 대통령의 방식이라지만 특히 아들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더 단호한 태도를 취하기 힘든 게 김 대통령의 아들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호화생활 했나**
홍걸씨를 둘러싼 의혹의 핵심은 돈문제와 행적이다. 돈문제란 거액의 지출 규모에 비해 수입원은 그에 크게 못 미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행적 관련 의혹은 그가 20년간이나 학생신분을 유지한 채 도대체 어떤 일들을 해 왔느냐는 것이다.
홍걸씨는 지난 95년 LA 토렌스에 있는 단독주택을 34만5천달러에 구입했다. 25만8천7백50달러의 융자금을 뺀 8만6천2백50달러는 현금으로 지불했다. 이 집은 대지 1백52평, 건평 59평, 방 3개의 2층 주택으로 현지 기준으로 볼 때 중산층 주택에 속한다.
이전에 LA 그린데일에 있는 월세 아파트에 살던 그는 아이들의 교육문제 등을 고려해 단독주택을 산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시 교민 사회에서는 일시불로 지급한 8만여달러 역시 유학생 신분으로는 구하기 힘든 거액이라는 말이 많았다.
홍걸씨는 지난 2000년 5월에 집을 더 넓혀 LA 팔로스버디스 6백평 대지에 방 5개, 욕실 3개가 딸린 이층집을 샀다. 매입가는 97만 5천달러. 팔로스버디스는 토렌스에서 더 남쪽에 위치한 태평양 연안 지역의 부촌으로 알려져 있다.
홍걸씨는 주택구입시 LA 월드세이빙 은행에서 60만 달러를 융자받았으나 37만5천달러는 일시불로 냈다. 그는 일시불에 대해 "토렌스 집이 안 팔려 친지에게 돈을 빌려 융자금과 합쳐 팔로스버디스의 집을 매입했고, 그 뒤 토렌스 집이 47만1천달러에 팔려 친지에게 빌린 돈을 갚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토렌스 집의 융자금(25만8천7백50달러)과 매매수수료(2만8천달러) 등을 빼고 나면 융자금은 17만달러에 불과해 상환액수에 턱없이 모자란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지난 2월 "홍걸씨는 유학생 신분으로 수입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2001년 3월-6월 3개월 반 동안 3억여원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하며 LA 웨스트 올림픽가에 있는 한미은행 계좌의 입출금 내역을 증거물로 공개하기도 했다. 지난 1월에는 홍일씨를 간호하러 LA에 온 이희호 여사를 만나러 가면서 시가 6만5천달러에 이르는 신형 렉서스(일본 도요타사 승용차)를 타고 있는 홍걸씨 모습이 사진에 찍혀 미주 중앙일보에 나기도 했다.
***은행융자 받을 때 국적ㆍ직업 허위 기재**
홍걸씨의 미국에서의 '호화생활'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던 한나라당 이신범 전 의원이 공개한 홍걸씨의 미국 은행 대출서류에는 그와 부인 임미경씨의 국적과 직업이 허위로 기재돼 있다. 홍걸씨 부부는 지난 99년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은행에 개인 명의 신용카드를 신청하면서도 직업을 허위로 적었다.
이 전 의원에 따르면 홍걸씨 부부는 지난 95년 LA 토렌스의 주택을 구입하면서 25만8천7백50만달러를 코스트 페더럴은행(Coast Federal Bankㆍ현 워싱턴 뮤추얼은행)에서 대출받았다. 이때 제출한 서류에 두 사람은 국적을 미국이라고 적었다. 홍걸씨가 근무했다고 기재한 'Mike's Food'는 조그만 슈퍼마켓으로 월 4천달러의 임금을 지급할 여력이 없고, 부인 임미경씨는 'American New Light'에 디자이너로 근무했다고 썼으나 실제 근무한 적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이 전의원은 홍걸씨 부부가 2000년 5월 LA 팔로스버디스의 집을 사면서 월드세이빙스은행에 60만달러를 빌리기 위해 제출한 서류에도 국적, 직장, 월수입을 허위로 기재했다고 주장했다. 이 서류에 홍걸씨 부부는 미국 시민이며, 홍걸씨가 LA 인근 파사데나의 'Solumnia skylights'라는 채광설비 회사 간부로 6년간 재직하며 월 1만8천달러를 받고 있다고 기재했다.
그러나 당시 이 전의원과 홍걸씨의 소송을 보도한 '오렌지 카운티 레지스터'라는 지방신문에 따르면 'Solumnia..'사의 한국계 미국인 사장 마이크 김씨는 "지난 10월 이미 회사 문을 닫았고 김홍걸씨를 아는 바 없다"고 증언했다.
홍걸씨 부부가 지난 99년 뱅크오브아메리카 은행에 개인 명의 신용카드를 신청하면서 관련서류에 아시아나 항공 미주 본사에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기재된 사실도 지난 19일 이신범 전 의원이 공개한 소송자료를 통해 밝혀졌다.
***작년 15차례나 입국, 최규선씨에게 여러 차례 돈 받아**
박사학위 과정 중이며 퍼모나대 태평양 연구소에 재직 중이던 지난해 홍걸씨는 무려 15차례나 입국, 그때마다 4-5일씩 서울에 머물렀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한국에 체류하면서 최규선씨를 만나 돈을 받았으며 최씨가 각종 이권과 관련, 기업 관계자들을 접촉하는 자리에도 자주 동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규선씨와 홍걸씨 사이에 다리 역할을 했던 홍걸씨 동서 황인돈(창신토건 대표)씨는 "지난해 최씨가 건넨 쇼핑백을 홍걸씨에게 전달한 적이 있다"고 24일 변호사 양인석씨를 통해 밝혔다.
황씨는 "쇼핑백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지만 그의 해명은 서울 모 백화점 지하 주차장 등에서 최씨가 수백만-수천만원씩 쇼핑백에 넣어 황씨를 통해 여러 차례 홍걸씨에게 전달했다는 최씨의 전 비서 천호영씨의 폭로가 사실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황씨는 또 "체육복표인 스포츠 토토 사업권 선정 직후인 지난해 4월 최규선씨에게서 받아내 회사 직원들 명의로 해둔 타이거풀스 주식(1만 3천주)은 내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홍걸씨가 무상으로 빌려 쓴 의혹을 받고 있는 S건설 손모 회장의 강남 사무실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고 양 변호사가 전했다. 모두 홍걸씨가 비리와 연루돼 있다고 추측하게 만드는 주장이다.
홍걸씨의 이런 행태는 성실히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유학생의 모습이라고 보기 힘들다.
***퍼모나대 연구원 그만 뒀나**
한편 지난 24일 동아일보가 태평양연구소 프랭크 기브니 소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공개하면서 홍걸 씨가 미국에서 직장을 갖고 있는지가 논란이 되고 있다.
동아일보는 24일 "홍걸씨가 지난해 12월 유급 연구원을 그만뒀다"는 기브니 소장 인터뷰 내용을 실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 박선숙 대변인은 "홍걸씨는 지난해 12월 태평양연구소 측과 1년 단위의 연구원 계약이 종료되면서 추가로 1년 연장 계약을 한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가 다시 24일 오전 "홍걸씨의 유급 연구원 자격은 지난해말 종료됐지만 그 후 1년간 무급 연구원 자격을 연장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또 퍼모나 대학이 미국정부 영사담당과에 제출한 서류를 공개했다. 이 서류에는 '김홍걸씨가 2002년 10월 22일까지 퍼모나 대학 태평양연구소의 연구원으로 비자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태평양연구소가 현지에서 낸 공식 보도자료에는 "홍걸씨는 2000년 10월부터 2001년 12월까지 그의 학력에 따른 통상적인 급여를 받았다. 그 후엔 더 이상 연구소와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기브니 소장은 "연구소 예산이 뒷받침되면 홍걸씨를 연구원으로 계속 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지난해 8월 그의 비자를 연장해 주었으나, 두 달 뒤인 10월 대학 측이 돈이 없어 급여 지급을 중단하자 그가 연구소를 그만두게 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홍걸씨의 미국내 신분이 확실하다면 이 같은 논란이 일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신분문제에 대해 밝히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또 주로 한국 관련 자료를 번역하는 일을 하면서 '통상적인 급여'를 받았다는 점은 그동안 홍걸씨가 연구소 급여로 생계를 꾸려왔다는 청와대 측의 주장에 의혹을 던질 만한 대목이기도 하다.
청와대 박선숙 대변인은 홍걸씨 신분에 대한 '말 바꾸기'에 대해 "대통령 가족을 관리하는 민정수석실이 아닌 공보수석실에서 이 문제를 처리하려다 혼선을 일으킨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처럼 최규선씨와 연루된 비리 의혹 외에 미국에서의 '호화생활'을 위한 자금 조달 문제, 미국 체류 신분 문제 등 홍걸씨를 둘러싼 의혹은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이에 홍걸씨가 미국에서 즉각 귀국해 각종 의혹에 대해 직접 설명하고, 검찰에 자진 출두해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지만 홍걸씨는 아직까지 그런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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