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9년 5월 전년에 태조의 지시로 일본에 갔던 통신관(通信官) 박돈지(朴惇之)가 일본에서 돌아왔습니다. 일본국 대장군도 사신을 보내 특산물을 바치고 잡혀갔던 남녀 1백여 명을 돌려보냈습니다.
앞서 일본에 간 박돈지는 그곳 대장군에게 우리 임금의 지시를 전했습니다. 군사를 크게 일으켜 50 년 골칫거리인 세 섬을 칠 것이나, 대장군이 제어할 수 있을 것 같아 의사를 묻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장군이 곧 군사를 보내 토벌케 했으나, 도적과 싸운 지 여섯 달이 지나도 쳐부수지 못했습니다. 대장군이 일본 내의 군사를 더 끌어모아 나가서 공격하게 하니, 도적들이 무기와 갑옷을 버리고 모두 나와 항복했습니다.
7월에 일본 좌경대부(左京大夫)인 육주목(六州牧) 의홍(義弘)이 구주(九州)를 쳐서 이기고 사람을 보내 특산물을 바치면서 공적을 자랑했습니다. 의홍이 청했습니다.
“나는 백제(百濟)의 후손입니다. 일본국 사람들이 나의 세계(世系)와 내 성씨를 알지 못하니, 모두 써서 내려주소서.”
그러면서 백제의 땅을 청했습니다.
임금이 도평의사사에 내려 그 가문의 세계를 찾아보게 했으나, 세대가 멀어 나타나는 게 없었습니다. 임시로 백제 시조 온조(溫祚) 고(高)씨의 후손으로 해서 땅 3백 결을 주기로 의논했습니다.
중추원 첨서 권근이 도당에 글을 보내 말했습니다.
“가만히 생각건대, 지금 왕명을 받들어 일본국 육주목 의홍에게 땅을 주는 일은 작위를 주고 해마다 봉록을 하사해 그 공을 포상하는 편이 낫습니다. 땅을 내려주는 것이 옳지 못한 이유가 일곱 가지나 있습니다.
우리 땅을 저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니 첫번째 옳지 못함이요, 해마다 조세를 실어 보내는 것이 조공을 바치는 것과 같으니 두번째 옳지 못함이요, 저들이 장차 해마다 사람을 보내 직접 조세를 거두게 되면 우리 백성이 해를 입을 것이니 세번째 옳지 못함이요, 이를 금하면 저들이 틀림없이 노여움을 품을 것이고 따른다면 우리 백성에게 해가 될 것이니 네번째 옳지 못함이요, 저 사람들은 진실로 믿기가 어려운데 나중에 순종하지 않아 그 땅을 거둬들이면 그로 인해 말썽이 생길 것이니 다섯번째 옳지 못함이요, 저들이 장차 ‘내가 받은 땅을 자손에게 전하는데 왜 빼앗는가?’ 하고 따지며 땅을 되찾는다는 명분으로 우리를 침구(侵寇)하면 저들은 바르고 우리는 잘못한 꼴이 되어 예측할 수 없는 변고가 생길 것이니 여섯번째 옳지 못함이요, 우리 강토의 땅이 저들의 소유가 되면 후세에 반드시 자손의 근심이 될 것이니 일곱번째 옳지 못함입니다.
또 더구나 땅을 주는 것은 약한 나라가 땅을 베어 강한 나라에게 주어 화호(和好)를 구하는 일과 같고, 우리 땅이 저들에게 공물을 바치니 우리가 저들의 주변국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혹 순종하지 않는 경우라도 거둬들이기란 참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벼슬로 주면 큰 나라가 작은 나라의 신하에게 벼슬을 주는 것과 같으니, 우리의 위명(威名)이 저들에게 더해지는 것입니다. 저들이 만일 우리의 번신(藩臣)으로서 진실로 불순한 일이 있으면, 대의로 꾸짖고 그 벼슬을 거두어 봉록을 정지하더라도 저들이 무슨 말로 우리에게 따지겠습니까? 경중의 형세와 이해의 기틀을 환하게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토의를 거쳐 보고하고 시행하소서.”
도평의사사에서 그 글을 가지고 아뢰니, 임금이 말했습니다.
“일이 이미 정해졌다. 여러 말 할 것 없다.”
좌산기상시 박석명 등이 땅을 주면 안 된다고 글을 올렸습니다. 임금이 도평의사사에 내려 의논케 하니, 문하부 시랑찬성사 성석린, 문하부 참찬 조영무, 정당문학 하윤, 참지 조온은 주지 말자는 낭사와 같은 의견이고 나머지는 모두 주자는 의견이었습니다. 중추원에서도 역시 서로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도평의사사에서 아뢰니, 임금이 다시 따르지 않고 말했습니다.
“의홍이 우리 나라에 정성을 바쳐 도적을 쳐부수었는데, 그가 청하는 바는 오직 이 일뿐이다. 게다가 본래 땅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본가의 계통을 찾아 밝혀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것은 실속 없는 은혜를 베풀어 실속 있는 보답을 얻는 것인데, 왜 안 된다는 것인가? 설혹 나중에 변고가 있더라도 그때 적당히 대응한다면 또 무엇이 어렵겠는가?”
일을 호조 급전사에 내리고 말했습니다.
“일본국 육주목인 좌경대부 의홍은 본래 백제 시조 온조왕 고씨의 후손인데, 그 선조가 난을 피해 일본에 건너가서 대대로 이어받고 육주목에 이르러 더욱 귀하고 높게 되었다. 근년 이래로 대마도 등 세 섬의 완악한 백성들이 흉악한 무리를 불러모아 우리 강토를 쳐들어와 어지럽히고 인민들을 노략해 이웃의 화호(和好)를 막았다. 지난번에 대상국(大相國)이 의(義)로써 군사를 일으키고 자기 스스로 싸움을 독려해서 그 무리를 섬멸하니, 변경 인민들이 편안해지고 백성에게 해독이 사라져 두 나라가 화호하게 되었다. 내가 그 공을 훌륭히 여겨 ‘참으로 잊지 않고 이를 갚겠다’고 했다. 너희 호조 급전사에서는 그 선조의 땅이 완산(完山)에 있음을 생각해 예전대로 떼어주고 채지(采地)를 삼도록 해서 특별한 공훈을 포상하라.”
급전사에서 왕명을 받들어 전라도 관찰사에게 공문을 보내고 조사한 뒤 장부를 만들어 땅을 주게 했습니다.
도평의사사에서 의홍이 보낸 중에게 땅을 준다는 사실을 말하니, 중이 대답했습니다.
“세계(世系)만 분명히 밝혀주시면 땅은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문하부 낭사 등이 다시 땅을 주지 말라고 말씀올렸습니다. 교서감 승(丞) 김시용(金時用)도 글을 올려 성씨(姓氏)의 적(籍)과 땅을 주는 것이 옳지 않다는 내용으로 아뢰었습니다.
한편 명(明)나라의 연해 지방을 침략하고 우리 나라 풍해도 서북면 등지에 이르렀던 왜적의 배 7 척이 11월에 서북면 선주(宣州)에 와 항복을 청했습니다. 육주목 고의홍(高義弘)이 군사를 일으켜 세 섬의 도적들을 쳐서 섬멸했다는 소문을 듣고 화(禍)가 자신들에게 미칠까 두려워 항복을 청한 것이었습니다. 앞서 항복한 왜인 구육(仇陸) 등곤을 보내 불러 타이르도록 하고, 구육에게 안장 갖춘 말과 옷 갓을 내려주었습니다.
구육 등이 선주에 가 만호 등시라로(藤時羅老) 등을 만나 우리 나라에서 항복한 사람을 아주 후하게 대접한다고 타이르고 또 임금이 어질고 위엄스럽다고 말하니, 왜인들이 감동하고 기뻐하며 항복했습니다. 등시라로는 구육을 따라 도성에 왔습니다. 항복한 왜인 14 명은 조회에도 참여해 서반(西班) 8품 아래에 들어와 끼였습니다.
나라에서는 이들에게 전중시(殿中寺) 판사 박돈지를 보내 위로하고, 각기 옷 갓을 내려주었습니다. 왜인 60여 명과 잡혀온 중국 남녀 21 명을 각 고을에 나누어 거처하게 했습니다. 항복한 왜인을 사직(司直) 이하의 자리에 임명하고, 선략장군 계급에게는 은띠를 주었습니다. 항복한 왜인 17 명이 와서 창과 갑옷 각각 6 부(部)를 바치니, 모두 습의(襲衣)를 내려주었습니다.
<1399년>
5.16 통신관(通信官) 박돈지(朴惇之)가 일본에서 돌아옴. 일본국 대장군이 사신을 보내 특산물을 바치고 잡혀갔던 남녀 100여 명을 돌려보냄.
7.1 일본국 대상국(大相國)이 왜적을 격파했다는 말을 듣고, 배타는 군사를 없애는 문제를 의논함.
7.1 도평의사사와 공 후들이 서강에 모여 병선을 구경함.
7.1 일본국 대마도 도총관(都摠管) 종정무(宗貞茂)가 사람을 보내 특산물과 말 6 필을 바침.
8.10 경상도 병마 도절제사의 보고에 따라 해적이 다시 걱정거리가 될 것을 염려해 각 도의 기선군(騎船軍)을 부활시킴.
8.10 왜적이 서북면의 선주(宣州), 박주(博州)에 쳐들어옴. 조전절제사 진을서를 서북면에, 박만을 풍해도에, 이빈을 충청도에, 최운해를 전라도에 보냄.
10.1 왜구가 옹진(瓮津)에 쳐들어옴.
10.18 왜적이 풍해도에 쳐들어와 병선 한 척을 불태우고, 선군(船軍) 50 명을 죽임.
10.18 왜적이 풍주 서촌(西村)에 쳐들어옴.
11.8 왜적의 배 일곱 척이 서북면 선주(宣州)에 이르러 항복을 청함. 항복한 왜인 구육(仇陸), 등곤을 보내 불러 타이르도록 하고, 구육에게 안장 갖춘 말과 옷 갓을 내려줌.
<1400년>
1.10 풍해도에서 배에 머물러 있던 왜인이 배 4 척을 가지고 몰래 그들의 섬으로 돌아감.
3.18 문하부 참찬 조영무를 해주에 보내, 항복한 왜적을 서북면 여러 고을에 나누어 두게 함.
4.1 대마도 왜인이 말 16 필을 바침.
4.1 조영무가 해주에 가서 항복받은 왜인을 풍해도 각 고을에 나누어 둠.
6.2 전라도 수군 절제사 김빈길에게 옷 갓 신을 내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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