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부당한 정치자금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 이어, 지난 4일 경제5단체장이 올해 대통령 선거 출마자들의 선거 공약을 평가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서자 노동계가 긴장하고 있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노동계는 재계의 선언에 대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치인에 대해서만 정치자금을 제공하겠다는 공공연한 협박"이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선 "과연 개별 기업이 정치권에 대한 로비활동을 하지 않을 수 있겠냐"며 선언의 실효성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표하기도 했다.
이번 선언이 '엄포'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올 대선에 재계가 정치자금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내세운 것에 반해 노동계는 이렇다할 무기가 없다. 노조의 정치자금 제공이 지난 99년 법적으로 허용됐지만 십시일반으로 모아진 정치자금이 후보들에게 큰 도움이 될 리 없기 때문.
때문에 노동계는 이번 대선에서도'표'를 통해 압력을 행사할 계획이다. "후보들의 선거공약 평가 결과를 대외적으로 공개하거나 특정후보에게 영향을 줄 의도는 없다"고 밝힌 재계와 달리 노동계는 "특정후보를 공개지지 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치자금 담보로 재벌개혁 발목잡으려는 의도"**
민주노총의 손낙구 교육선전실장은 재계의 선언에 대해 "한 마디로 재벌들 말을 잘 듣는 정치인에게만 돈을 주겠다는 의미"라며 "가뜩이나 재벌개혁이 후퇴하고 있는 상황에 악영향을 미칠까 두렵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의 우태현 정치국 차장은 "특정단체가 대선 후보를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정치자금을 무기로 한 선거개입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재계가 정치자금 제공을 담보로 재벌개혁정책의 발목을 잡으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우 차장은 "재계의 선언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라며 "지난 2000년 4.13 총선 때에도 각 후보 평가와 정치자금문제를 거론한 적이 있어 일부 노동계에선 이번 선언도 선전용에 불과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우 차장은 "지난 98년 민주당 중앙당 후원금 2백80억원 중 10대 재벌기업이 낸 돈이 80%가 넘는다"면서 "개별 기업이 정치권에 로비활동을 그만둘 수 없는 상황에서 이번 선언은 '엄포'에 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정후보 공개 지지하겠다"**
재계가 정치자금을 무기로 내세우는 것에 노동계는 '표'로 대항할 수밖에 없다. 노조가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것이 허용되고 있다 해도 재계처럼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힘들다.
한국노총의 우태현 차장은 "아직은 당내 경선 국면이기 때문에 노조가 관여하지 않지만 각 당의 대선 후보가 정해지면 정책평가를 거쳐 특정후보를 공개 지지 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조합원 설문조사, 후보초청토론회, 대표자 회의 등을 거쳐 공개지지할 후보를 결정할 계획이다.
반면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 후보를 공개 지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손낙구 실장은 "민주노동당 후보가 결정되면 선거운동 뿐 아니라 정치자금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도 재계 선언 비난**
한편 시민단체들도 재계의 '정치참여' 선언을 비난했다. 참여연대는 지난 6일 성명서를 발표해 "재계의 선언은 부당한 정치자금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순수한 취지를 넘어 정치자금을 볼모로 경제정책 로비를 노골화하겠다는 것"이라면서 "경제 5단체는 선언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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