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가입을 계기로 중국은 세계경제 진입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적 성장 이면에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리는 중국 노동자들의 현실이 공존하고 있으며 독립적 노동운동 조직 건설을 위한 움직임도 더불어 싹트고 있다.
홍콩의 노동문제 전문가 팀 프링글은 중국노동회보(China Labor Bulletin)를 통해 이같이 보도하고 중국 정부가 시장경제 도입으로 생긴 혜택의 분배과정에서 소외된 중국 노동자들의 불만을 방치할 경우 큰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에 따르면 파업 등 중국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은 지난 2000년 8천2백47건으로 92년에 비해 10배 이상 늘었으며 노동문제와 관련된 각종 분쟁도 지난 99년 19만8천건에서 2000년 32만 7천건으로 급증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는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중국 노동자들의 노동쟁의가 당국의 처벌에도 불구하고 급격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이는 임금 체불 등 고용주들의 불법적인 조치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세계화의 이면, 노동 환경의 황폐화**
최근 홍콩과 중국 본토에서 발행되는 신문은 거의 매주 증가일로에 있는 중국 노동운동에 관한 기사를 싣고 있다. 실업수당을 요구하는 시위, 급여를 받지 못해 성난 노동자들의 철도 점거, 몸수색이나 초과근무 강요 등 고용주의 불법 행위를 규탄하는 합법적인 집단 행동 등.
중국 공안당국에 따르면 1999년 한해동안 19만8천여 건의 노동분쟁이 발생했다. 이 같은 저항의 물결이 형성된 배경은 무엇보다 중국의 경제적 변화에 있다. 중국 내외의 많은 전문가들은 계획경제에서 탈피, 시장경제의 도입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노동쟁의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중국 노동운동, 특히 자본의 세계화 국면에서 제기되는 노동조건에 관한 요구는 거의 묵살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중국에서 노동쟁의가 폭발하는 것은 이에 대한 비판과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다.
세계은행은 중국의 GNP의 절반 이상이 외국자본의 투자가 활발한 민간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외자 유치는 분명 중국 노동자들에게 수많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제공된 일자리의 성격과 관련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저명한 중국 전문가 아니타 챈은 중국 노동자들의 처지가 세계화라는 '폭압의 그늘' 하에 있다 고발했다. 중국 노동운동가 한동팡도 외국 자본의 유입을 '양날의 칼'에 비유했다. 일자리를 제공하지만 그 일자리는 매년 수만명의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노동조건을 양산했다는 지적이다.
중국 노동사회안전국에서 발간하는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시민권리센터의 책임자인 한지리는 서슴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의 노동조건은 산업혁명 초기의 19세기 유럽의 상황으로 시대로 역행하고 있다. 중국의 모든 기업들의 노동조건은 자본주의의 출현을 성사시켰던 자본축적의 초기 국면에 비견될 만큼 열악하다.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의 노동을 강요받고 있으며 '죽음의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는 동남부 지역의 대만 및 한국 소유의 공장에서 특히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1997년에 열린 15차 공산당대회를 계기로 중국은 기업의 사유화에 전기를 마련했다. 국영기업을 중국 민간 혹은 외국 투자자들에게 매각, 국가독점 소유구조의 주식회사화, 기업 합병 등의 다양한 방식이 제시됐다.
이 같은 변화가 현실화되면서 대규모 실업자들의 불만을 야기한 인원감축, 직장폐쇄, 부도가 수반됐다. 간신히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도시 노동자들의 경우에도 봉급은 줄어든 반면 노동 착취는 강화됐다.
물론 지난 20여년동안 달성한 괄목상대한 경제 성장의 배경이 됐던 경제개혁에 중국 노동자들이 반발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노동자들, 특히 과거 국유기업에 종사하던 노동자들이 반대하는 것은 경제 성장의 혜택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노동계급이 거의 배제됐다는 점이다.
***임금 체불과 고용불안정에 시달리는 '철밥그릇'**
이 문제는 섬유업 및 광업 등 사양업종에서 심각하다. 정부와 중국 자본가들, 해외 다국적기업들은 보다 앞선 업종의 국유기업에 투자하려는 반면, 이 기업들이 위치한 지역 대부분은 중앙정부로부터 방치된 상태다. 지린성 북동부의 지슈는 최근 노동자들의 저항이 일었던 곳 중의 하나다.
작년 7월 중순, 지슈 탄광에 종사하는 5천여명(일부 보도에서는 1만여명)의 광부와 사무직 노동자들이 지린과 하얼삔 사이의 주요 철도를 3일간 차단했다. 이들 중에는 30개월동안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도 있었다. 임금 체불의 원인은 기업의 부패 때문으로 추정됐다.
부패 때문이 아니더라도 노동자들의 궁핍한 생활 이면에는 이들 기업이 고품질 석탄 개발을 게을리 해 다른 지역의 석탄제품과의 경쟁에서 뒤쳐졌으며 그 결과 재투자의 원천을 상실했다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지슈 지역의 광업은 수년동안 몰락의 길을 걸었지만 정부는 여전히 이를 대체할 계획에는 관심이 없다. 현재 남아있던 업체들은 대부분 사유화됐으며 4백여 일자리를 약속한 포도주 공장이 건립되고 있다.
그 지역 노동자들 일부는 지린과 하얼빈 사이의 새로운 도로 건설 현장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다. 이 외에 신규 일자리는 없다. 지역 탄광 당국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탄광 당국은 7천5백여명의 광부를 해고했으며 현재는 2만3천3백명이 근무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 역시 임금 지급과 고용여건이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다.
당국은 노동자들에게 사회보장 및 의료혜택을 수혜할 능력이 없다. 비극적 전망이 지슈 지역을 뒤덮고 있을 뿐이다. 탄광 당국의 재고용 센터에 근무하는 한 관계자는 "우리는 외국 투자를 원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다. 지슈에서 바랄 것은 더 이상 없다"고 말했다.
탄광 당국에서 해고된 한 회계사는 3일간의 파업은 적어도 지방 정부에게 한달치 임금 정도는 보상하도록 했지만 그 이상을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에 후속 파업이 뒤따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소위 '철밥그릇'이라 일컬어지는 고용안정과 적당한 복지혜택을 다른 나라에 비해 사회주의 중국의 우월성으로 자랑했다. 그러나 실재적으로 철밥그릇의 혜택은 국영기업체에 종사하는, 그것도 소수 노동자들에게 한정된 것이다. 대다수 중국 노동자들과 농민들에게는 복지혜택에 접근할 기회조차 없다.
여전히 개혁 작업의 목표중 하나는 고용안정과 복지에 관한 구시대적 개념을 버리고 노동 시장 개념을 도입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다. 세계은행과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시각에서 보면 등소평 시대의 위대한 성과중의 하나는 노동권이나 기본적인 복지의 향유권 등의 개념에 반하는 트리클다운 이론에 근거한 경제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사회보험 구조는 5가지의 노동관련 복지 영역에 도입됐다. 의료, 연금, 실업, 산재, 출산. 이같은 복지의 사회화 목표는 수혜의 범위를 넓히는 데 있다. 그러나 철밥그릇의 현실은 복잡하기만 하고 자금도 충분치 않아 불안정했다. 결과적으로 수혜의 범위 확장에 실패했을 뿐더러 노동 조건이 악화되는 결과만 초래했다.
이 같은 사회보험 도입 과정에서 기업 관리자들이 노동 보험금을 잘못 관리하거나 착복하는 일도 벌어져 노동자들의 분노를 샀다. 어떤 기업은 노동자들에게 고용보험 혜택을 부여할 만한 의지를 보이지 않아 해고되거나 퇴임한 노동자들의 거센 반발을 야기했다. 퇴임 노동자들의 대다수는 조기퇴직자들이었다. 공식 퇴직 연령인 55세보다 훨씬 적은 나이에 퇴직을 당했으며 심지어는 35세에 퇴직된 노동자도 있었다.
***고용주들의 불법적 관리방식**
센첸 지역의 카이마오찌핀 공장은 열악한 노동조건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2000년의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엄청난 초과노동이 강요됐다고 한다. 이 공장은 성별에 따라 급여를 차별적으로 지불했다. 남성 노동자들에게는 일일 14.5 위앤(1위앤은 한화로 약 1백60원)이 지급된 반면 여성 노동자들에게는 14 위앤이 지급됐다.
초과근무 수당은 시간당 1.6 위앤으로 고정됐으며 일일 5.6 위앤이 숙식비로 공제됐다. 근무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오후 8시에 시작되는 초과근무는 새벽 1시까지 지속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2명의 노동자가 그 와중에 실신했다. 대다수 노동자들의 임금은 법적 최저임금인 월 3백 위앤에 크게 못미쳤다.
중국 남부 센첸 지역에 위치한 바오양 사는 2001년 7월 30일 불법적인 몸수색을 강요했다. 노동자들은 노동법에 위반되는 몸수색을 한 고용주의 처벌과 임금 보상을 요구하며 센첸 지역의 군청 주위의 거리를 행진했다. 고용주는 그들을 해고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법원은 바오양 사의 경영주가 노동자들에게 사과할 것과 해고에 대한 보상을 판결했다. 광저우 지방노동조합 의장인 첸 웨이구앙에 따르면 노동자들에게는 각각 5천 위앤이 보상금으로 지급됐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자들의 합법적이고 직접적인 행동의 결과 성취한 부분적인 승리일 뿐이었다. 여전히 해고와 관련한 사죄가 없으며 몸수색을 강요한 기업주는 처벌되지 않은 상태다.
중국의 다른 많은 공장도 안전시설, 산재 보상제도, 임금 및 보너스, 기술훈련, 해직 등에서 열악한 조건에 처해있으며 이는 노동쟁의를 초래하고 있다.
***독립노조 건설이 중국 노동운동의 관건**
노동사회안전국에 따르면 2000년 32만7천1백52건에 달하는 노동쟁의가 기록됐으며 그중 24.2%는 국영기업체에서 발생했다. 소위 합동소유기업에서 발생한 노동쟁의가 20%, 외국인 투자기업에서 15.5%, 중국인 소유 민간 기업에서 14%가 발생했다. 이같은 통계는 1990년대 초기에 시작된 노동쟁의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자료가 폭넓은 불만과 노동자들 사이의 권리 의식의 증가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대부분이 개인적 수준의 분규였다.
구조적으로 기업 내부의 조정 위원회와 정부부처에 마련된 3자 조정위원회(노동쟁의 조정위원회), 그리고 사법적 조치들이 존재한다. 또한 노동운동가들과 파업 지도자들에 대한 처리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중국의 악명높은 '노동을 통한 재교육' 시스템이 있다.
재판이나 형식적인 절차도 거치지 않고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랫동안 노동을 거부하거나 노동규율을 어긴 자, 아무런 이유없이 끊임없이 문제를 유발하는 자, 노동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는 3년 이상의 기간동안 노동 캠프에서 처벌받을 수 있다.
개인적 수준에서 노동분규 소송 사례가 증가하는 것과는 별개로 급격하지는 않지만 조직과 단결, 계급의식이 요구되는 집단적 분쟁도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는 중국에서 독립적인 노동운동 조직을 건립하려는 움직임에 매우 유의미한 것이다.
중국에서 파업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중국법상 파업은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파업권은 1982년 중국 의회에서 삭제됐다. 파업 지도자들은 합법적으로 구금될 수 있고 재교육을 명목으로 노동 캠프에 보내질 수 있다.
그러나 몇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중국은 최근 노동자들에게 파업권을 보장하는 경제사회문화권에 관한 국제협약을 비준했다. 그러나 중국은 노동조합 가입에 관한 협약 조항은 보류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어떤 식으로건 파업을 해왔다. 1998년에는 25만1천2백68명이 참여, 6천7백67건의 집단행동이(3명 이상의 노동자가 참여해 파업 때는 태업을 한 경우) 보고됐다. 이는 1992년에 비하면 9배나 많은 것이다. 2000년 집단행동은 8천2백47건으로 급격히 증가, 25만9천4백45명의 노동자가 참여했다. 1998년에는 전체 파업의 24%가 국가소유기업에서 발생했다. 해고된 노동자들이 주도한 파업 대부분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정부기관을 점령하거나 철도와 도로를 점거하는 집단 행동은 경찰과 충돌을 빚었다. 중앙 당국은 지방 정부가 노동자들을 분산시키기 위해 폭력을 행사해 상황을 악화시키지 말라고 지시했다.
국유기업들에게 법적인 책임을 다하라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폭넓은 호응을 얻었다. 지슈 지역 탄광 노동자들의 경우도 그들이 철도를 점거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주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슐란 지역의 재고용 당국 관리는 "탄광 노동자들은 매우 열악한 조건에 놓여있다. 그들의 행위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고 모든 사람들이 공감한다"고 밝혔다.
결국 중국 노동운동의 열쇠는 독립적인 노동조합과 노동운동 조직의 건립에 있다. 중국 노동자들은 투쟁하고 있으나 결정적으로 부족한 점은 수많은 노동쟁의 간의 연결고리를 형성하거나 고용자들과 단체협상을 진행시키키고 노동자의 입장을 정부와 고용주, 정당에 요구할 수 있는 독립적인 노동자 조직이나 조합이 없다는 점이다.
독립노조를 건립하려는 투쟁은 지속되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독립노조 운동들과 노조 활동가들을 감금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물론 이와 입장을 달리하는 노동 진영 모두에 근원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 남아프리카나 폴란드처럼 중국의 통치계급은 자신의 권력을 위협할만큼 노동자들의 분노를 폭발시키지 않으려면 노동자들이 조직될 수 있는 공간을 허용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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