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박은 이때 ‘실세(實勢)’였던 임금의 아우 이방원의 동서이자 또 다른 임금의 아우 이방간과 사돈간입니다. 또 임금의 후궁 유씨와도 연결됩니다.
반면 이저(李佇)는, 이백경(李伯卿)이라는 이름이었으나 정종이 즉위해 이름을 경으로 고치자 같은 발음을 피해 이렇게 고쳤습니다만, 태조의 사위, 그러니까 지금 임금과 이방원 등 형제들의 매부입니다. 누가 더 세었을까요?
1398년 쿠데타로 강씨 소생 왕자들인 이방석, 이방번이 살해되던 날 저녁에 이저의 아비 이거이는 이방번의 기생첩 중천금(重千金)을 취하고, 이저는 이방석의 시첩(侍妾)인 기생 소근(小斤), 효도(孝道)를 취하고, 조박은 이방석의 시첩인 기생 효양(孝養)을 취해 모두 집에 두었습니다.
이때에 대사헌 조박이 중승 서유(徐愈), 시사 조휴(趙休), 잡단 안순, 민공생 등과 의논해 말했습니다.
“상당후 이저가 처남 이방석의 기생첩 효도를 취했는데, 그 아비 이거이가 일찍이 관계한 여자다. 부자간에 한 여자를 간음해 윤리를 더럽히고 어지럽혔으니, 탄핵하지 않을 수 없다.”
미처 실행에 옮기기 전에 서유가 자기 집 다락 위에서 다른 사람과 탄핵하려는 뜻을 얘기했는데, 그 사위가 다락 아래에 있다가 이를 듣고 다른 사람에게 누설했습니다.
또 다른 일로 사헌부에서 탄핵을 당한 안순도 이 문제를 인척 조카인 좌부승지 이숙번에게 말했고, 이숙번은 다시 이방원에게 고했습니다. 민공생 또한 그 의논을 매부인 이방간에게 누설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이저 부자도 알게 되니, 이저가 임금에게 울며 호소했습니다.
“사헌부에서 신을 무고해 해치려 하니, 신은 처벌을 기다립니다.”
임금이 화가 나 서유, 조휴, 안순 등을 순군부 옥에 가두었습니다. 말을 누설했던 민공생은 홀로 면했습니다.
좌산기상시 박석명(朴錫命)과 형조 전서 강사덕 등에게 지시해 서유와 조휴를 심문하게 했는데, 고문을 받고 급해지니 조박이 앞장서 주장했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저가 듣고 더욱 화가 나 조박을 공격하려고 다시 임금에게 하소연했습니다.
“저를 해치려고 꾀한 자는 조박입니다. 정사(定社)의 회맹한 피가 입에서 마르지도 않았는데, 도리어 해치려 합니다.”
임금이 어쩔 수 없이 이숙번을 보내 조박에게 명령을 전했습니다.
“공의(公義)로 보자면 어제는 개국, 오늘은 정사공신으로 피를 마셔 함께 맹세했고, 사정(私情)으로 보자면 경은 정안공의 동서이고 회안공의 사위의 아비로서 이저에게도 은정(恩情)이 없는 게 아니다. 지금 은의(恩義)를 배반하고 식언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법대로 해야 되겠지만 동맹한 뜻이 본래 그렇지 않으니, 경이 원하는 대로 시골로 돌려보내려 한다. 경은 어디로 가겠는가?”
“이천으로 보내주십시오. 늙은 어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조박을 이천(利川)에, 조휴를 해주에 귀양보냈습니다. 서유는 면직하고 민공생은 복직시켰으며, 안순은 다른 일로 탄핵당해 이미 면직되었기 때문에 그대로 두었습니다.
조박은 몇 달 뒤 경상도 도관찰사 임정(林整)이 사직하자 대신 그 자리에 임명됨으로써 사면을 받았습니다.
이에 앞서 이저의 큰아버지인 청천백 이거인이 매부인 예조 전서 민경생(閔慶生)에게 말했습니다.
“아우 이거이와 그 아들 이저는 그들 부자가 한 여자를 관계한 일을 자네의 사위 조박이 폭로하려 한 것을 원망해, 가만히 밤을 타 군사를 일으켜 조박을 죽이려 한다네.”
또 이거이에게 말했습니다.
“조박이 재기(才氣)가 있고 또 회안공, 정안공, 이무와 모두 인척 관계에 있으니, 조박이 용서받아 돌아오면 화가 틀림없이 자네 부자에게 미칠 것이네. 빨리 쳐야 할 걸세.”
이 말이 누설되니, 중추원 첨서 이첨에게 지시해 문하부 산기 박석명, 사헌부 중승 이승상, 형조 전서 정부(鄭符)와 더불어 순군부에 함께 자리잡고 이거인, 민경생을 잡아 대질 신문케 했습니다.
이거인은 이거이의 종에게서 들었다고 진술했다가 곧 무고임을 자백해 청주(淸州)에 귀양보내고, 민경생은 석방해 복직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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