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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과 놀다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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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과 놀다 <58>

아비와 아우를 몰아내다 ③

대궐 안에 있던 사람이 송현에서 불꽃이 하늘에 가득한 것을 보고 달려가 임금에게 고하니, 궁중의 호위 군사들이 북 치고 피리 불며 고함을 쳤습니다.

이천우는 자기 집에서 수행원 두 명을 거느리고 대궐로 가는데, 마천목이 발견하고 안국방(安國坊) 동구까지 따라가 말했습니다.
"이천우 영공(令公)이 아닙니까?"

이천우가 대답하지 않자 마천목이 말했습니다.
"영공께서 대답하지 않고 가시니, 화살을 맞을까 두렵습니다."
"그대는 마(馬) 사직(司直)이 아닌가? 왜 나를 부르는가?"
"정안군께서 여러 왕자들과 함께 이곳에 모여 계십니다."

이천우가 달려가 이방원에게 가서는 말했습니다.
"지금 이 일을 일으키면서 왜 진작 내게 알리지 않았나?"

이방원이 박포와 민무질을 보내 좌정승 조준을 불렀습니다. 조준이 망설이면서 점쟁이로 하여금 그 거취를 점치게 하고 즉시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시 이숙번으로 하여금 재촉하게 하고 이방원이 중로에까지 마중나오니, 조준이 우정승 김사형과 함께 오고 있었고 갑옷 입은 수행원들이 잔뜩 따라왔습니다. 가회방(嘉會坊) 동구의 다리에 이르자, 보졸이 무기를 들고 파수해 막으며 말했습니다.
"두 정승만 들어가십시오."

조준과 김사형 등이 말에서 내려 재빨리 다리를 건너가니, 이방원이 말했습니다.
"경들은 어찌 이씨의 사직을 걱정하지 않소?"
조준과 김사형 등이 매우 두려워하면서 말 앞에 꿇어앉았습니다. 이방원이 말했습니다.
"정도전과 남은 등이 어린 서자를 굳이 세자로 세우려고 나의 동복 형제들을 제거하려 했소. 그래서 약자(弱者)인 내가 선수를 쓴 것이오."

조준 등이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했습니다.
"저들이 하는 짓을 저희가 미리 알지 못했습니다."
이방원이 말했습니다.
"이런 큰일은 마땅히 나라에 알려야겠지만, 오늘 일은 형세가 급박해 미처 알릴 틈이 없었을 따름이오. 공들은 서둘러 합좌(合坐)하시오."

노석주와 변중량은 대궐 안에 있으면서 사람을 시켜 도승지 이문화와 우승지 김육을 집에서 불렀습니다. 이문화가 달려와 물었습니다.
"임금의 옥체는 어떠하시오?"
노석주가 말했습니다.
"임금의 병환이 위독해 오늘 밤 자시(子時)에 서쪽 작은 양정(凉亭)으로 피병(避病)하려 합니다."

이에 승지들이 모두 근정문으로 갔습니다. 도진무 박위가 근정문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군사가 왔소, 안 왔소?"
이문화가 물었습니다.
"지금 전하께서 피병하십니까? 왜 피리를 붑니까?"
박위가 말했습니다.
"피병이라니요? 봉화백과 의성군이 모인 곳을 많은 군마(軍馬)가 에워싸고 불을 질러 피리를 분 것뿐이오."

이에 앞서 이방원이 이숙번에게 일렀습니다.
"세력으로는 대적할 수 없으니, 정도전과 남은 등을 목벤 후에 우리 형제 네댓 명이 삼군부 문 앞에 말을 멈추고 나라 사람의 마음을 살펴야겠다. 인심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만이겠지만, 일치해 따른다면 우리가 살 수 있다."

이때에 이방원이 돌아와 삼군부 문 앞에 이르러 말을 멈추었습니다. 밤이 벌써 4경이었습니다. 평소에 가까웠던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습니다.

찬성 유만수가 아들 유원지(柳原之)를 거느리고 말 앞에 와서 배알하니, 이방원이 말했습니다.
"무슨 일로 왔는가?"
"듣자니 임금께서 장차 신의 집으로 옮겨 거처하려 하신다더니 아직 옮겨오지 않으셨고, 또 변고가 있다는 말이 들려 급히 와서 호위하려는 것뿐입니다."
"갑옷을 입고 왔는가?"
"아닙니다."

즉시 그에게 갑옷을 주고 말 뒤에 서게 하니, 이천우가 말했습니다.
"유만수는 정도전, 남은의 무리이니 죽이지 않으면 안 되네."
이방원이 안 된다고 말하니, 이방간과 이천우 등이 강권하며 말했습니다.
"이렇게 급작스런 때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막을 수 없네."

이방원이 이숙번을 돌아보면서 말했습니다.
"형세가 말리기 어렵겠다."
그러고는 명을 내려 그 죄를 헤아리게 했습니다. 유만수가 즉시 말에서 내려 이방원의 말 고삐를 잡고 말했습니다.
"제가 아뢰겠습니다. 아뢰겠습니다."

정안군이 수행원을 시켜 말 고삐를 놓게 했으나 유만수는 오히려 단단히 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소근이 작은 칼로 턱 밑을 찌르자 유만수가 자빠져 목을 베었습니다. 이방원이 유원지에게 일렀습니다.
"너는 죄가 없으니 집으로 돌아가라."
이방간이 따라가서 예빈시 문 앞에서 목을 베었습니다.

조준과 김사형 등이 도평의사사로 들어가 앉자, 이방원은 생각했습니다.
'이방석 등이 호위 군사를 거느리고 궁문 밖에 나와 싸움이 붙는다면 우리 군사가 적어 물러날 텐데, 만약 조금이라도 물러난다면 합좌한 재상들이 저편 군사 뒤에 있게 되고 저편을 따르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시켜 도당에 말했습니다.
"우리 형제가 노상(路上)에 있는데 재상들이 도당에 들어가 앉아 있는 것은 옳지 못하니, 즉시 운종가(雲從街)로 옮기시오."
그러고는 예조에 지시해 백관을 모이도록 독촉했습니다.

친군위 도진무 조온도 대궐 안에서 숙직하고 있었습니다. 이방원이 사람을 시켜 조온과 박위를 부르니, 조온은 명령을 듣고 즉시 휘하의 갑사, 패두(牌頭) 등을 거느리고 나와서 말 앞에 배알했으나, 박위는 한참 동안 응하지 않다가 마지못해 칼을 차고 나왔습니다. 이방원이 부드러운 말로 대했으나, 박위는 군대의 세력이 약한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모든 처분은 날이 밝은 뒤 내리소서."

날이 밝으면 약한 군세가 드러나 사람들이 따르지 않으리라는 계산이었습니다. 이방원이 그를 도당으로 가게 했는데, 이방간이 이방원에게 말하고 사람을 시켜 목베게 했습니다.

이방원은 조온에게 숙위 갑사를 다 끌어내도록 지시했습니다. 조온이 즉시 패두들을 대궐에 들여보내 숙위 갑사를 다 나오게 했습니다. 이에 근정전 이남의 갑사는 다 나와서 갑옷을 벗고 무기를 버리니, 각기 제 집으로 돌아가도록 명령했습니다.

앞서 이무는 군대의 세력이 약한 것을 보고는 거짓으로 머리가 띵하다며 사람을 시켜 부축케 하고 이방원에게 말했습니다.
"화살 맞은 곳이 매우 아프니 도당 옆방에 가서 쉬게 해주십시오."

이방원은 좋다고 말했습니다. 조금 후에 이무는 박위가 베임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즉시 도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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