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8년 7월 말부터 태조는 심하게 앓았습니다. 20여 일이나 낫지 않으니 좌정승 조준이 소격전에서 초례(醮禮)를 올려 임금을 살려달라고 빌었고, 태조의 둘째아들인 영안군(永安君) 이방과가 임금을 위해 초례를 올리려고 소격전에서 재계했습니다.
태조의 전처인 한씨 소생 왕자들이 후처인 강씨 소생 왕자들과 정도전 일파를 제거한 이른바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난 것은 이런 상황에서였습니다. 실록은 이를 "봉화백 정도전, 의성군 남은과 부성군(富城君) 심효생 등이 왕자들을 해치려다 성공하지 못하고 복주(伏誅)"된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서 태조는 개국할 때 정안군 이방원의 공로가 다른 왕자들보다 뛰어났다며 특별히 대대로 전해온 동북면 가별치 5백여 호(戶)를 내려주었습니다. 가별치는 일종의 사병(私兵)입니다. 그 후에 왕자들과 공신들을 각 도 절제사로 삼아 호위군을 나누어 맡게 했는데, 이방원은 전라도를 맡고 강씨 소생인 무안군 이방번은 동북면을 맡게 됐습니다. 이방원이 가별치를 이방번에게 주자 이방번은 사양치 않고 받았으며, 임금도 알았으나 돌려주라고 채근하지 않았습니다.
정도전과 남은 등은 권세를 마음대로 부리려고 강씨의 아들인 막내 이방석을 억지로 세자로 세웠습니다. 외롭고 가난해 다루기 쉬울 것 같은 심효생의 딸을 부덕(婦德)이 있다고 추켜세워 세자빈으로 만드는 한편, 세자의 동복(同腹) 형인 이방번과 손아래 매부인 흥안군 이제 등과 함께 모의해 지지 세력을 많이 심어 놓았습니다.
또 세자의 이복 형들을 약화시키려고 몰래 내시 김사행을 사주해, 중국에서 황제의 아들들을 지방 각 나라의 왕으로 봉한 것처럼 왕자들을 각 도에 나누어 보내라고 비밀리에 청했다고 합니다. 임금이 대답하지 않고는 나중에 이방원에게 넌지시 타일렀습니다.
"바깥의 의논을 너희들이 몰라서는 안 되니, 형들에게 알려 경계하고 조심하라."
정도전 등이 또 산기상시 변중량을 사주해 왕자들의 병권(兵權)을 거두라는 글을 올리도록 했습니다. 두 번 세 번 청했으나, 임금은 윤허하지 않았습니다.
안식(安植)이라는 점쟁이가, 세자의 이복 형으로 임금 될 사람이 하나만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정도전은 이를 듣고, 바로 제거해버리면 되지 무슨 걱정이냐고 말했다 합니다. 의안군 이화가 그 계획을 알고 몰래 이방원에게 알렸습니다.
이때에 이르러 내시 조순이 왕명을 전했습니다.
"내가 병이 깊어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 세자 외에는 들어와 보지 못하게 하라."
김사행과 조순은 모두 그들의 지지 세력이었습니다.
정도전, 남은, 심효생은 중추원 판사 이근, 전 참찬 이무, 흥성군(興城君) 장지화, 성산군(星山君) 이직 등과 송현(松峴)에 있는 남은의 첩 집에 자주 모였습니다. 실록에 따르면 이방석, 이제와 친군위 도진무 박위, 좌부승지 노석주, 우부승지 변중량이 대궐 안에서 임금의 병이 위독하다는 핑계로 왕자들을 급히 불러들인 뒤 왕자들이 도착하면 대궐 종들과 갑사를 동원해 공격하고 정도전, 남은 등은 밖에서 응하기로 했으며, 26일에 일을 일으키기로 약속했다고 합니다.
이보다 앞서 이방원은 '간악한 무리들'이 임금의 병을 틈타 틀림없이 일을 낼 것이라며 안산군(安山郡) 지사 이숙번에게 부르면 빨리 오라고 일렀습니다. 기미를 재빨리 알아챈 영민함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이방원 쪽에서 일을 꾸민 '증거'라 할 수도 있겠지요. 더구나 26일에 일을 일으키기로 한 사람들이 다음에 나오는 것처럼 그날 밤 아무런 방비도 없이 모여서 술타령이나 하고 있었다는 정황이 더욱 그런 의구심을 부추깁니다.
아무튼 이방원의 처남인 민무구(閔無咎)가 이방원의 명령에 따라 이숙번을 부르자, 이숙번이 도착했습니다.
임금의 병이 매우 급해져 왕자들과 사위들, 임금의 서제인 의안군 이화 등이 모두 근정문 밖 서쪽 행랑에서 모여 밤을 새웠습니다.
이날 저녁에 이방원의 작은 처남인 민무질(閔無疾)이 누이인 이방원의 부인을 찾아가 마주앉아 한참 이야기를 했습니다. 부인이 급히 종 소근(小斤)을 불러 빨리 대궐에 가서 이방원을 불러오라고 하니, 소근이 대답했습니다.
"여러 군(君)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계신데, 종놈이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부인이 말했습니다.
"내가 갑자기 가슴과 배가 아파 달려와 아뢴다고 하면 공께서 바로 오실 것이다."
소근이 말을 끌고 서쪽 행랑에 가 자세히 아뢰니, 이화가 청심환(淸心丸)과 소합환(蘇合丸) 등의 약을 주면서 빨리 가서 치료하라고 말했습니다.
이방원은 곧 집으로 돌아왔고, 조금 후에 민무질이 다시 와서 이방원 및 부인과 셋이 몰래 한참 동안 얘기했습니다. 부인이 이방원의 옷을 잡고 대궐에 가지 말라고 말리니, 이방원이 말했습니다.
"어찌 죽음이 두려워 대궐에 가지 않겠소? 더구나 형들이 모두 대궐 안에 있으니 알리지 않을 수 없소. 만약 변고가 있으면 내가 나와서 군사를 일으켜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오."
그러고는 옷소매를 떨치며 나갔습니다. 부인이 문 밖에까지 따라나와 말했습니다.
"조심하고 조심하세요."
날은 이미 어두워졌습니다.
이때 왕자들이 거느린 호위 부대를 없앤 지 이미 10여 일이었고, 이방번만이 전처럼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이방원은 앞서 군사를 없애고 병기를 모두 불태워버렸는데, 이때에 부인이 몰래 무기를 준비해 변고에 대응할 계책을 마련했습니다.
민무질의 가까운 인척인 이무는 본디부터 중립을 지킬 생각으로 일찍이 남은 등의 모의를 몰래 이방원에게 알렸고, 이때에 민무질을 따라와서 이방원을 만나고 조금 후에 먼저 갔습니다. 죽성군(竹城君) 박포도 그 사이를 왕래하면서 저쪽의 움직임을 몰래 살폈습니다.
이에 이방원은 민무구에게 지시해 이숙번으로 하여금 무기와 갑옷을 갖추고 자기 집 맞은편에 있는 신극례(辛克禮)의 집에 유숙하면서 변고를 기다리게 하고는, 대궐에 가 서쪽 행랑에 들어가 묵었습니다. 여러 군(君)들은 모두 말을 남겨두지 않았으나, 이방원만은 소근을 시켜 서쪽 행랑 뒤에서 말을 먹이게 했습니다.
이방번이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이방원이 불렀습니다. 이방번은 머리를 긁적이며 머뭇거리다가 대답하지 않고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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