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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악의 축' 핵심 정치쟁점으로

대립 첨예화, 대선 최대변수 될 수도

부시 미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발언과 미국 수뇌부의 대북 강경발언이 계속되면서 정치권 내부에서도 한ㆍ미 양국의 대북정책 기조를 둘러싼 입장 대립이 첨예화되고 있다.

특히 19일 부시 대통령의 방한과 20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여야간, 보수와 진보 성향 의원간 공방이 연일 고조되고 있어 북미, 한미, 남북한 쟁점이 정가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먼저 여야의 입장이 대립된다. 민주당은 미국과 북한 양측에 대화를 종용한 데 비해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우리 정부가 미국 정부의 대북 정책과 다르게 '대북 퍼주기' 정책을 해왔다고 주장하며 정부의 책임을 추궁하는 상황이다.

또한 당 차원을 넘어 보수-진보 성향 의원들 간의 입장 대립도 심화되고 있다. 여야 개혁파 의원들은 부시의 대북 강경발언에 항의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반면 보수파인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 등은 미국에 대한 지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처럼 부시 '악의 축' 발언이 정치권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지방선거 및 대선에까지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ㆍ여당, "미국에 당당히 대처한다"**

정부와 민주당은 6일 오전 당정회의를 갖고 햇볕정책이 흔들리지 않는 기조 위에서 우리 입장을 당당하게 미국 측에 제시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날 민주당 박종우 정책위의장은 부시 대통령 방한과 관련, ‘모든 국민이 현 사태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당정회의 내용을 전했다.

이 같은 입장은 정부가 미국의 대북압박 흐름에 끌려가던 것에서 탈출,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미국을 상대로 정면돌파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또 새해 들어 큰 진전은 없었지만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기대되는 등 남북관계 개선 조짐이 감지되던 상황에서 부시 대통령의 대북 강경발언 이후 한반도 정세가 급격히 긴장된 데 따른 여권의 불만 표출일 수도 있다는 게 정가의 시각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부시 대통령 연설 이후 국내 여론에서 ‘당당하게’ 대처하라는 주문이 많았다”고 말해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서는 안된다는 정부 내 분위기를 시사했다.

한승수 장관의 전격 경질도 대미 항의 표시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또한 5일 진념 재경부장관이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지와의 인터뷰에서 "한반도의 긴장 강화는 한국경제에 손해를 미치고 외국투자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할 것"이라며 최근 미국측의 연이은 대북 강경발언을 비판하고 나선 것 역시 정부의 '당당히 맞서겠다'는 의지를 읽게 해주는 대목이다.

***야당, "대북정책, 현 정부 외교의 실패"**

한편 야당은 부시 대통령의 대북 강경발언으로 고조된 북미간 긴장 분위기를 정부의 대북정책 실패에 대한 공격으로 이끌어 가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 이강두 정책위의장은 2일 “부시 대통령의 대북정책 방향을 미리 알아 새로운 한,미,북 관계가 조성되도록 했어야 하는데 퍼주기식 관광사업이나 하려고 하는 등 과연 이 정부에 외교정책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정부를 비난했다.

이재오 총무도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규정한 것은 제거대상이라는 것으로, 정부가 미국과 전혀 의견조율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라며 “그동안 부시정부의 이러한 대북정책에 대해 설명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정부가 대북정책에 있어 국민을 속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자민련 정진석 대변인도 “우리가 외교의 고립지대에 있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며 “과거 맹방인 미국과 우리가 이념적 간극을 느꼈다면 전적으로 우리 책임이고 미국의 오해가 없도록 우리가 외교적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 대변인은 또 “미국의 강경노선은 이미 예견됐는데도 ‘대북 퍼주기’로 일관하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며 “남북관계를 우리만의 내부관계로 보지말고 동북아 전체와 한,미,일 간의 외교적 시각으로 접근해야 안전장치를 담보하면서 실효성 있게 추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진보/보수 의원들 선명한 입장대립**

이처럼 여야간 대립이 심화되는 한편 당을 뛰어 넘어 의원 개개인의 성향에 따른 대립구도 역시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

여권 대선주자들 중 김근태, 김중권, 정동영 고문은 미국의 대북정책이 강경 일변도로 치닫는 것을 공개비판하고 나섰고, 새벽21, 쇄신연대 등 개혁그룹 의원들의 대미 비판성명도 잇따르고 있다.

민주당 쇄신연대 등 의원 50명은 5일 긴급회의를 가진 뒤 성명을 발표하고 ‘부시 대통령의 대북 강경발언은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구축돼 가는 한반도의 화해, 교류의 기본틀을 크게 훼손시킬 수 있다’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깨뜨리는 미국의 정책에 동의할 수 없으며, 한반도 문제는 대화를 통해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 21세기 동북아평화포럼(대표 : 장영달 의원) 소속 여야 의원들도 5일 성명을 통해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이 빚어질 경우 우리 민족의 생존이 위태로울 것은 물론이고, 동북아의 평화유지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라며 ‘이런 긴박한 현실에서 대북강경노선을 추구하는 부시 대통령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앞서 4일 민주당 김성호, 김태홍, 한나라당 김부겸, 김원웅 의원 등 16명은 성명을 발표하고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은 8년간 힘겹게 쌓아온 북미간 회담 성과를 원점으로 되돌리고 6.15 정상회담 이후 발전돼 온 남북간 화해협력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며 평화로운 한반도에 긴장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라며 심각한 우려를 표한바 있다.

한나라당 김원웅 의원은 “북한은 94년 핵동결 약속을 준수해 왔으며, 87년 이후에는 테러에 관계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며 “가장 많은 대량살상무기 보유국인 미국이 과연 자유의 나라인지, 전쟁을 좋아하는 나라인지 구분이 안된다”고 강도 높은 비판을 가했다.

한편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은 지난달 31일 개인 논평을 통해 “현 정권은 일방적인 대북 퍼주기로 붕괴 직전의 북한 정권을 회생시켜 주고 북한 정권이 통일과 남북대화의 주도권까지 장악토록 했다”며 부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지지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 의원은 이어 5일 개혁파 의원들의 미국 부시대통령 발언 비난과 관련, “의원들의 기본적 사고가 반미정서를 깔고 북한을 지원하는 입장을 기조에 두고 있어 상당히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핵심 정치쟁점 부상, 대선까지 영향 미칠 듯**

이처럼 현재 대립구도는 민주당과 한나라당내 일부 개혁의원들을 한쪽으로, 그리고 한나라당 주류와 자민련을 한쪽으로 전선이 짜여져 가는 상태다. 부시 방한까지 각종 사회단체와 언론의 대립각이 형성되면서 정치권의 공방은 계속 고조되어 갈 것으로 보인다.

부시 방한과 한미정상회담을 고비로 이 대립이 확대될 것인지, 축소될 것인지가 판가름날 것이다.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공조틀이 새롭게 복원되고, 북미-남북 긴장이 완화되는 가시적 조치들이 뒤따른다면 이 대립은 수그러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경우, 즉 한미정상회담 이후에도 계속 한미간 입장차이가 노정되고 남북관계의 진전도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이 쟁점은 금년 지방선거와 대선의 최대 변수로 부상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경제 악화, 잇따른 비리게이트 파문으로 인해 '햇볕정책'은 현 정부의 유일한 치적으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햇볕정책'에 대한 한미간 불협화음이 터져 나왔고, 이는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보혁갈등과 맞물리면서 정치사회적으로 첨예한 대립각을 형성하고 있다.

역대 대선에서 보혁갈등이 쟁점의 하나로 포함되지 않은 적은 없다. 따라서 한미관계, 남북관계에 획기적 전환이 없는 한 '햇볕정책'을 둘러싼 보혁대립이 금년 대선의 중대 변수가 될 것은 불문가지다.

더욱이 이회창 총재 방미 당시 미국의 파격적인 대우에서 확인되듯이 미국측이 현정부의 햇볕정책을 비판하면서 간접적으로라도 대선국면에 개입하게 된다면 대선정국 전체가 남북관계에 대한 보혁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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