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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고전강독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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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고전강독 <72>

제6강 논어(論語)-31

2) ‘논어’가 갖는 최대의 매력은 그 속에 공자의 인간적 풍모가 풍부하게 담겨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백가쟁명(百家爭鳴)의 백가(百家)중에서 공자만큼 인간적 이미지를 남기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것은 ‘논어’라는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공자의 이미지가 미화되었다는 것이지요. 충분히 납득이 가는 주장입니다.

곽말약(郭沫若) 같은 대학자도 동의하는 것이지요. 공자의 인간적 면모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그의 묘비명이나 예찬문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그의 반대자의 견해를 통하여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하지요.

나는 물론 공자의 인간적 면모가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자사상은 하나의 사회사상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논어’는 공자 개인의 사상도 아니라고 생각하지요. 마오어록(毛澤東語錄)이 모택동 개인의 어록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의 집단적 사상이듯이 ‘논어’라는 서물(書物)은 공자 사후에 공문(孔門)의 제자들이 상당한 기간을 걸쳐서 공동으로 집필된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공자의 면모에 관한 글 중에서 몇 가지를 소개하지요.

“외모(外貌)를 성(盛)하게 꾸미어 세상을 미혹시키고 음악(音樂)을 만들어 우민을 음란(淫亂)하게 하고 오르내림의 예(禮)를 번잡하게 하며 --- 음(音)도 율(律)로 만들었다. 명(名)을 세워 일을 게을리 하니 직(職)을 지키게 할 수 없으며, 상례(喪禮)를 중시하여 슬픔을 따르니 백성에게 사랑을 베풀게 할 수 없으며, 거만(倨慢)하여 스스로를 따르는 자이며 남의 나라에 들어가 상하(上下)를 이간(離間)하고 어지럽힌다.”

“田成子 常이 임금을 죽이고 나라를 훔쳤으나 공자는 그의 예물을 받았다.”(莊子)

우리 나라에 번역된 나카지마 아츠지(中島敦)의 중단편집 ‘역사 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原題 ‘李陵 - 山月記’)에는 공자의 인간적 면모가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제자인 자로(子路)와의 관계를 통하여 그리고 자로의 시각을 통하여 묘사되는 공자의 인간적 면모가 매우 사실적인 필치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공자를 골려주기 위하여 돼지와 수탉을 들고 소란을 피우며 찾아온 자로와의 첫 대면에서부터 자로가 죽임을 당하고 소금절임되고 난 후 공자는 모든 젓갈을 내다버리고 상에 올리지 않았다는 후일담에 이르기까지 자로와 공자가 이루어내는 사제관계는 그대로 인간관계의 아름다운 정점(頂點)을 보여줍니다.

3) 공자는 조실부(早失父)의 천사(賤士) 출신으로 회계를 담당하는 계리(季利), 목축을 담당하는 승전(乘田) 등 말직에서 시작하여 50세에 형별을 관장하는 사구(司寇)에 이르렀습니다.

사구로 있을 당시 자기의 경쟁자이며 개혁가인 대부 소정묘(少正卯)를 직권으로 죽였고 전(田)의 크기에 따라 징세하는 전부제(田賦制)에 반대하는 등 절대왕권주의자였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공자에 대한 단편적인 사실로써 공자를 규정하는 것은 전체를 보지 못하는 우(愚)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당시의 전후 상황이 정확히 파악되지 못한 상황에서는 온당한 해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공자의 시대는 종법사회(宗法社會)가 붕괴되고 새로운 질서가 아직도 형성되지 않는 과도기적 상황이었습니다. 부국강병을 국가경영의 최우선과제로 삼는 무한경쟁의 시대였으며 그런 점에서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적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부국강병이라는 경쟁원리가 대세인 상황에서 왕도주의적인 정책을 주장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종법적 질서와는 명백하게 구별되는 인간관계의 관점을 개진한다는 것은 사회철학적 관점에서 매우 획기적인 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仁)이 비록 민(民)을 배제한 지배계급내부의 원리라고 하더라도 인간관계에 대한 담론은 획기적인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그 자체로서 제3의 사회이론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 차례 이야기하였습니다만 ‘논어’는 인간관계론의 보고(寶庫)입니다. 춘추전국시대에 백가(百家)들이 벌였던 토론(爭鳴)은 고대국가건설이라는 사회학 중심의 담론이었습니다.

‘논어’의 독자적 영역이라면 숱한 사회학적 담론 중에서 사회의 본질을 인간관계에 두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논어’의 제일 첫장에 나타나는 친구(朋)의 이야기는 공자사상의 핵심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학교를 찾아오는 분들을 환영하는 인사에서 내가 자주 인용하는 글입니다.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않으랴.

사실 우리 학교는 먼 곳에 있는 학교거든요. 물론 서울의 변두리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만 우리 학교가 지향하는 교육이념에서 본다면 더 먼 학교이지요.

우리 사회의 주류 담론에서 한참 밀려나 있는 비주류 담론이지요. 그런 점까지 생각하면 참으로 먼 곳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학교를 찾아온 분들이 어찌 진정한 벗이 아닐 수 있으며 그것이 어찌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있겠느냐는 뜻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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