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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고전강독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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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고전강독 <69>

제6강 논어(論語)-28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雍也)

이 구절에서 모르는 한자는 없지요?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잘 알려진 구절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지(知), 호(好), 낙(樂)의 차이입니다.

글자 그대로 지(知)는 아는 것. 호(好)는 좋아하는 것. 낙(樂)은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도 언급되어 있는 구절입니다. 지(知)란 진리의 존재를 파악한 상태이고, 호(好)가 그 진리를 아직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한 상태로 보는 데에 비하여 낙(樂)은 그것을 완전히 터득하고 자기 것으로 삼아서 생활화하고 있는 경지로 풀이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상적인 교육은 놀이와 학습(學習)과 노동(勞動)이 하나로 통일된 생활의 어떤 멋진 덩어리-일감-을 안겨주는 것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무엇을 궁리해가며 만들어내는 과정이 바로 그러한 것인데 즐거움은 놀이이고 궁리는 학습이고 만들어내는 행위는 노동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知), 호(好), 낙(樂)의 차이를 규정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 각각을 하나의 통합적 체계 속에서 깨닫는 일이 중요합니다.

지(知)를 대상(對象)에 대한 인식이라고 한다면 호(好)는 대상과 주체간의 관계에 관한 규정입니다. 그에 비하여 낙(樂)은 대상과 주체가 혼연히 일체화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知)가 분석적인 것이라면 호(好)는 주관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낙(樂)은 주체와 대상이 원융(圓融)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낙(樂)은 어떤 판단 형식이라기보다는 질서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체와 부분, 체(體)와 용(用)이 혼연(渾然)의 일체(一體)를 이룬 어떤 질서(秩序)와 장(場)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知)는 역지사지(易地思之)하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호(好)는 대상을 타자(他者)라는 원천적 비대칭적 구조 속에 가두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知)와 호(好)를 지양(止揚)한 곳에 낙(樂)이 있다고 생각하지요.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고전강독의 관점에서 이를 규정한다면 “낙(樂)은 관계의 최고형태”인 셈입니다. 그 낙의 경지에 이르러 비로소 어떤 터득(攄得)이 가능한 것이지요.

세계인식이 정보(情報)형태의 파편적 분석지(分析知)에 머물거나 이데올로기적 가치판단(價値判斷)에서 자유롭지 못한다면 낙(樂)의 경지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지요.

지(知)에서 호(好)로 호(好)에서 낙(樂)으로 세계와의 관계를 높여나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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