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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과 놀다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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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과 놀다 <41>

새 궁궐 이름은 ‘경복궁’

새 궁궐도 궁궐이지만 종묘가 완성됐으니 조상들을 옮겨 모시는 일이 급했습니다. 윤9월로 넘어가면서 임금은 종묘이안도감(宗廟移安都監)을 설치하는 한편, 종묘 공사를 감독한 제조관(提調官)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각각 대궐 말 1 필씩을 내려주었습니다.

그달 하순에는 예문춘추관 학사 권근을 개성에 보내 종묘 옮겨 모시는 것을 고하게 하고, 각 부서에서 1 명씩을 보내 조상 4 대의 신주를 받들어 오게 했습니다.

임금은 새 대궐에서 재계(齋戒)했으며, 종묘 제사 헌관(獻官)인 우정승 김사형과 집사들은 삼사에 모여 회맹(會盟)하고 각 관청에서 재계했습니다. 회맹에 오지 않은 간관 이승상(李升商), 오승(吳陞), 안속(安束), 정수홍(鄭守弘), 윤수 등은 파직했습니다.

백관이 공복(公服)을 갖추어 입고 반송정에 나아가 신주를 맞이했습니다. 상로(象輅)에 모시고 의장(儀仗)과 풍악을 잡혀 새 종묘에 안치했으며, 문하부 판사 권중화에게 지시해 이안제(移安祭)를 올리도록 했습니다.

10월 4일에 임금은 강사포(絳紗袍) 원유관(遠遊冠) 차림으로 상로(象輅)를 탔으며 백관은 공복을 갖추어 입고 앞에서 인도해 종묘로 갔습니다. 바깥문에 이르니 먼저 온 집사들이 길가에 나와 맞이했습니다. 임금이 백관을 거느리고 종묘 동문 밖에 이르러 네 번 절하고는 곧 재계하는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이튿날 임금이 면류관 예복 차림으로 직접 술을 땅에 뿌리고 잔을 올렸습니다. 세자가 두번째 잔을 올리고 우정승 김사형이 마지막 잔을 올렸습니다. 제례를 마치고 임시 처소에 돌아와 안팎의 축하를 받았습니다.

저자거리에 이르니 성균관 박사가 학생을 인솔하고 가요(歌謠) 3 편을 올렸습니다. 천명 받은 것을 찬미한 ‘천감(天監)’, 도읍 정한 것을 찬미한 ‘화산(華山)’, 종묘를 세워 직접 제사지낸 것을 찬미한 ‘신묘(新廟)’ 등이었습니다.

운종가(雲從街)에 이르니 전악서(典樂署)의 악공들이 노래를 부르고 공연을 했습니다. 임금이 세 차례나 수레를 멈추고 이를 보았습니다.

임금은 오문(午門)의 장막 임시 처소에 이르러 교서를 내려 반포했습니다. 읽기를 마치자 임금이 수레를 타고 궁으로 돌아왔습니다. 악공이 궁전 뜰에 이르니 현비가 주렴을 드리우고 풍악을 보았습니다.

사흘 뒤인 7일에 제사에 참여한 집사관들에게 각각 한 직급씩 올려주고, 정2품 이상에게는 대궐 1 필씩을 내려주었으며, 새 궁궐에서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임금이 집사들에게 말했습니다.

“경들이 맡은 일을 정성스럽고 부지런하게 해서 우리 조상께서도 즐기셨으니, 내 매우 기쁘다.”

좌정승 조준과 삼사 판사 정도전에게 말을 내려주면서 말했습니다.
“경들은 비록 제사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나, 종묘의 예식은 모두 경들이 정한 것이었소.”

정도전에게는 금으로 장식한 뿔띠 하나를 더 주면서 말했습니다.
“지금 아악(雅樂)을 들으니 경의 공이 작지 않음을 알겠소.”

11월의 새 종묘 첫 초하루 제사 뒤에 임금은 제물이 빈약했다는 말을 듣고 사헌부에 지시해 그 사실을 조사토록 했습니다. 사헌부에서 제조(提調)인 삼사 우복야 민제와 간사인 예조 정랑 윤사영(尹思永), 제향사(祭享司) 의랑 강천주(姜天霔)를 탄핵해 파직시켰습니다.

한편 임금은 삼사 판사 정도전에게 지시해 새 궁궐의 여러 전각 이름을 짓게 했습니다. 정도전은 이름을 짓고 아울러 이름 지은 뜻을 써서 올렸습니다.

새 궁궐 이름은 경복궁(景福宮)입니다. 침전은 강녕전(康寧殿), 동 서 양쪽의 작은 침전은 각각 연생전(延生殿) 경성전(慶成殿)이라 했습니다. 침전 남쪽 건물은 사정전(思政殿), 또 그 남쪽은 근정전(勤政殿)이었고, 동쪽 누각은 융문루(隆文樓), 서쪽 누각은 융무루(隆武樓), 전각 문은 근정문(勤政門), 남쪽 문은 정문(正門)으로 이름지었습니다.

각 이름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경복궁(景福宮)=‘시경(詩經)’ 주아(周雅)편에 있는 “술에 취하고 덕에 배부르니 임금께서 만년토록 큰 복(景福) 받으시길 빈다”는 시에서 따왔습니다. 임금과 그 자손이 만년 태평의 업(業)을 누리고, 사방의 신민으로 하여금 길이 보고 느끼는 것이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임금 된 자가 백성을 괴롭혀 스스로 누리기만 하라는 것은 아니며, 넓은 방에서 한가히 거처할 때에는 빈한한 선비를 도울 생각을 하고 전각에 서늘한 바람이 불면 맑고 그늘진 것을 생각해보며 만백성의 봉양을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강녕전(康寧殿)=홍범구주(洪範九疇)의 5 복(福) 중 셋째가 강녕(康寧)인데, 한가운데 것을 내세워 나머지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썼습니다. 임금이 마음을 바로잡고 덕을 닦으면 5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마음을 바로잡고 덕을 닦는다는 것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보는 곳에 있으면서도 애써 해야 하는 것이지만, 침전에서처럼 한가하고 편안하게 혼자 거처할 때는 너무 안일에 빠져 경계하는 마음이 자주 해이해지니 더욱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연생전(延生殿) 경성전(慶成殿)=하늘과 땅은 만물을 봄에 낳고(生) 가을에 열매 맺게(成) 하며, 성인(聖人)은 만백성을 인(仁)으로써 살리고 의(義)로써 다스립니다. 하늘을 대신해 만물을 다스리고 그 정령(政令)을 시행하는 임금은 한결같이 하늘과 땅의 운행을 근본으로 삼으니, 동쪽에 생(生), 서쪽에 성(成)자를 붙여 하늘과 땅을 본받음을 드러내도록 한 것입니다.
▶사정전(思政殿)=세상 이치는 생각하면 얻을 수 있고 생각하지 않으면 잃어버리는데, 임금은 홀로 매우 높은 자리에 있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슬기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 똑똑한 자와 못난 자가 섞여 있으며 번잡한 여러 일들은 옳은 것과 그른 것,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이 뒤섞여 있으니, 백성의 임금 된 이가 정말 깊이 생각하고 세밀하게 살피지 않는다면 일이 옳은지 그른지나 사람이 똑똑한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전각에서는 매일 아침 정사를 보는데, 수많은 일들이 모여들어 품의되고 임금은 지시를 내려 지휘하니 더욱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근정전(勤政殿) 근정문(勤政門)=세상 일은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부지런하지 못하면 피폐됨이 필연적인 이치며, 작은 일도 그런데 하물며 정사와 같은 큰 일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임금이 부지런함만 알고 그 방법을 모르면 그 부지런한 것이 너무 복잡하거나 지나치게 살피는 데에만 흘러 볼 것이 없다는 지적입니다. “아침에 정사를 듣고, 낮에는 어진 이를 찾아보며, 저녁에는 법령을 정비하고, 밤에 몸을 편안하게 한다”는 말과 “어진 이를 구하는 데에 부지런하고 어진 이에 맡기고 편안히 한다”는 옛 선비의 말로 설명을 대신했습니다.

▶융문루(隆文樓) 융무루(隆武樓)=문(文)은 다스림을 이루고 무(武)로써 난(亂)을 평정하는 것이니, 이 둘은 마치 사람에게 두 팔이 있는 것과 같아서 하나라도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악과 문물이 빛나서 볼 만하고 군사와 무비(武備)가 정연하게 다 갖추어지며, 사람을 쓴 데에 이르러서는 문장 도덕을 갖춘 선비와 과감 용맹한 무인들이 전국에 퍼져 있으면, 이는 모두가 문(文)을 높이고 무(武)를 높여 이루어낸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정문(正門)=천자와 제후가 그 권세는 비록 다르나 남쪽을 향해 앉아서 정치하는 것은 모두 정(正)을 근본으로 해서 이치가 같다고 합니다. 고전에 천자의 문을 단문(端門)이라 한 것을 본떠 남쪽 문을 정문이라 했는데, ‘단(端)’이란 ‘바르다(正)’는 것이어서 뜻이 같습니다.

닫아서 이상한 말과 기이하고 사특한 백성을 끊고 열어서 사방의 어진 이를 오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정(正)이라는 것입니다.

이해 12월 초에 임금은 새 궁궐에 거둥해 사흘 동안 격구하는 것을 보았으며, 연말에야 새 궁궐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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