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10대 청소년은 부모가 옷이나 학용품 등을 직접 사다 주면 달가와 하지 않는다. 자신이 브랜드를 선택하고 친구들과 취향을 맞춰 사기를 바란다. 이 때문에 부모들은 때로는 당황하기도 하며 과소비를 우려하기도 한다. 이들의 소비문화는 어떻게 형성되고 있으며 실태는 어떠한가, 또 이에 대한 대응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두 차례에 걸쳐 알아본다. 편집자
“교통비 아껴서라도 여자친구 선물은 꼭 해줘요”
“컴퓨터 없으면 친구들과 말이 안 통해요”
“어른들은 우리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음반을 2-3장씩 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요”
***친구 사귀는 용돈**
중3년생 황군(경기도 화정)은 여자친구가 있다. 여자친구의 생일을 앞두고 방학 보충수업을 피해 휴일날 당일치기 중국집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 황군은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생일이나 발렌타인데이 등 기념일에는 서로 선물을 사 주고 받는다”며 “용돈의 대부분을 선물 구입에 쓴다”고 말했다. 10대 청소년 소비생활을 한 단면이다.
광남중 2년 고군은 “요즘엔 학교에서 커플 티셔츠가 유행이다. 교복 밑에 둘이 입고 오기도 하고 대부분 학교 밖에서 사복으로 입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똑같이 입는다.”고 말했다.
예전의 10대들은 구매능력이 없고 부모가 옷을 구입해주었다. 요즘 맞벌이 부부들이 많아지면서 자녀들이 직접 옷을 고르는 일이 잦아지고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다. 커플 티셔츠를 골라 입는 데에도 용돈이 꽤나 쓰인다.
패션전문점 에꼬미의 오호석 마케팅담당은 “커플링 의류를 구입하는 고객 중 50-60%가 10대 청소년이다”고 한다.
여학생들은 남자친구에게 ‘러브장’을 쓴다. 여러 가지 색으로 시나 노래가사 등을 꾸며 편지를 써 준다. 3백일 이상 사귀면 서로 10만원 정도의 선물을 교환하기도 한다. 사귄 지 22일 되면 ‘22’를 ‘투투’라고 해서 친한 사람들에게 2백20원이나 2천2백원을 받는다.
10대 커뮤니티 사이트 다모임이 청소년 1천7백8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5%인 4천4백30명이 친구에게 줄 선물이나 친구와 함께 입을 의류 구입에 용돈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이버 소비학**
숭실고 1년 김군은 게임을 하지 않으면 친구들과 대화가 되지 않아 PC방에 가는 비용으로 대부분의 용돈을 쓴다. 김군은 “게임을 잘하는 친구는 우상이 되고 친구들끼리 게임CD를 교환하기도 한다”며 “새로 나온 게임CD를 사기 위해 가게 앞에서 밤을 새고 기다린 적도 있다”고 한다.
김군은 또 “친구들 사이에 화제가 된 아바타를 꾸미기 위해 돈을 쓰긴 하지만 핸드폰 요금에 많아야 3천원 정도 추가되기 때문에 부담을 가지진 않는다”고 말했다. 김군의 친구들은 모두 같은 취미를 갖고 있다.
이동통신사의 마케팅 공세로 상당수의 초등생까지 핸드폰을 소유하고 있고 일부 지역에서는 10대의 필수품이기도 하다. 이들끼리는 만나서 할 얘기도 일부러 핸드폰으로 한다. 핸드폰이 없는 친구는 자연히 소외된다.
이들에게 빠질 수 없는 것은 컴퓨터. 정보기술 시장조사 전문업체 베스트사이트와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77.6%인 1천1백11만 가구에 PC가 있다. 10대들은 집에 있는 컴퓨터 인터넷으로 같은 게임을 즐기고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사이버 세계에 용돈을 소비하는 유형이다.
***연예인도 소비 창출**
명성여중 3년 고양은 “H보이그룹을 좋아해 '오빠'들이 출연한 방송을 모두 녹화하고 인터뷰가 실린 잡지를 모두 산다”며 “친구들은 ‘오빠’들이 입고 나와 광고한 옷이 20만원을 넘는데도 샀으며 나에게도 사라고 권했다”고 한다. 고양은 “나중에는 옷을 사다 보니 너무 부담이 돼 친구들과 의논한 결과 H보이그룹을 좋아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음반을 구매할 때도 같은 음반을 2~3장 구입해 친구에게 선물하기도 하고 스타가 나온 잡지를 사거나 방송을 녹화하기 위한 공테입을 사며 스타캐릭터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진다. 스타의 전화번호를 알기 위해 인터넷에 연예인 전화번호 교환방을 만들고 팬클럽 커뮤니티에 오빠들에 대한 소식을 알기 위해 매일 접속한다.
이성 친구를 사귀지 않는 청소년일수록 집단적으로 이러한 경향이 더욱 심하다.
다모임의 정성희 차장은 “중고생 커뮤니티의 활동을 분석해 보면 게임 및 이성 사귀기, 친구 사귀기, 팬클럽 활동에 집중되어 있다”면서 “인터넷 쇼핑몰에서 팔리는 제품도 이에 비례해 나타난다”고 말했다.
정 차장은 “10대를 상대로 한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친구 그룹의 인터넷이나 모임에서 소문이 나도록 하는 것이다”고 한다.
***소비 결정은 커뮤니티를 통해**
패션과 유행 정보 사이트인 ‘힙합퍼’(www.hiphoper.com).
“질문..고수님덜.. 쪼단 미드-16 이여 텝 떼거 빡삥 13.3 이면 잘사는 건가여? ”
해석하면 ‘나이키 조단 브랜드의 운동화 미드-16를 탭 제거하고 박스가 있는 신품(빡삥)을 13만 3천원에 샀는데, 잘 산 것인가요’이다. 처음 들어온 사람은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이 사이트의 게시판에는 상품에 대한 정보교환과 전문가(고수)들의 답변이 주를 이룬다. 자신이 제대로 된 상품을 샀는지, 상품에 어울리는 패션이 무엇인지, 혹은 어디로 가야 싸게 살 수 있는지 등이다. 중고 제품의 교환 판매도 이루어진다. 유명한 상품은 약자로 통한다.
이런 식으로 정보를 수집한 후 동대문, 남대문시장이나 문정동 등의 상설할인매장, 이대앞 상가에서 주로 브랜드와 유행에 따라 옷 등을 구입한다.
서울 언남고 1년 이양은 “친구들 사이에서 동대문시장 옷들은 유행과 디자인에서 앞서 있다고 소문이 퍼져 있다”고 한다. 이양은 한번에 10만원어치 정도를 구입하며 유행에 앞서 있는 친구와 함께 가기도 한다. 중학생은 주로 부모들과 함께 집 근처의 백화점을 이용한다고 한다.
이들의 또하나 구입 기준은 유행. 대원외국어고 2년 이양은 “‘KIKI’, ‘CECI’, ‘Cindy the Perky' 등 패션 잡지의 광고나 인터넷 광고 등을 보고 친구들과 의견을 나눈 뒤 각자 용돈을 모아 함께 사기도 한다”고 한다. 때로는 연예인의 패션이 이들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프라다나 아르마니 등 고가의 명품 브랜드를 선호하는 청소년들. 그러나 이들이 구입하는 것은 진품은 아니다. 대원외국어고 2년 김양은 “친구들이 찾는 명품은 소위 ‘짭퉁’(가짜) 제품으로 이태원 등지를 돌아다니면 모조품을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다”며 “이곳에서 친구들은 한달 용돈에 약간 더 보태 ‘진퉁’(진품)과 거의 흡사한 제품을 진품의 10분의 1 가격으로 구입한다”고 한다.
진품일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브랜드를 찾는다. 닥터마틴 구두나 나이키 운동화, 폴로 셔츠 등이다. 학용품은 일본제품을 선호한다. 일제라 하여 느끼는 거부감은 없다. 가격이 비싸면 부모에게 졸라 구입한다.
제일기획이 이동통신사의 마케팅 기법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10대 청소년은 상품 선택에서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중요시하며 기업은 이런 특성을 바탕으로 마케팅을 펼쳐나가고 있다.
10대 전용 인터넷 요금제를 위한 마케팅을 벌이고 있는 케이티 프리텔의 유재규 과장은 “10대들은 핸드폰을 사용할 때에도 자신들만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며 “이들이 좋아하는 방식을 파악에 그에 맞추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청소년들은 자신들만의 소비 세계를 이루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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