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도읍 건설은 경기 좌 우도 도관찰사(都觀察使) 하윤의 문제 제기로 중단됐습니다. 도읍은 나라의 중앙에 있어야 하는데 계룡산은 땅이 남쪽에 치우쳐 동 서북면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자신이 아버지를 장사지내면서 풍수 책들을 좀 보았는데, 계룡산의 땅은 산이 서북쪽에서 오고 물은 동남쪽으로 흘러가 송나라 호순신(胡舜臣)이 말한 ‘물이 장생(長生)을 파(破)해 쇠패(衰敗)가 곧 닥치는 땅’이어서 도읍으로 부적당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임금은 책을 바치도록 지시하고 문하부 판사 권중화, 삼사 판사 정도전, 중추원 판사 남재 등으로 하여금 하윤과 더불어 살펴보게 했습니다. 또 고려의 여러 왕릉의 좋고 나쁨을 다시 조사해 보고토록 했습니다.
이에 봉상시의 ‘제산릉형지안(諸山陵形止案)’의 산수(山水)가 오고 간 것을 살펴본 결과 좋고 나쁜 점이 모두 맞았습니다.
1393년 12월에 대장군 심효생을 계룡산에 보내 새 도읍 공사를 그만두게 하라고 지시하니, 온 나라가 크게 기뻐했습니다. 호순신의 책이 이때부터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임금이 전 왕조 서운관에 소장된 비록(秘錄) 문서를 모두 하윤에게 주어 살피게 하고, 도읍 옮길 땅을 다시 잡아 보고토록 했습니다.
이듬해인 1394년 2월 삼사 영사 권중화, 검교 문하부 시중 이무방(李茂方), 삼사 판사 정도전, 문하부 시랑찬성사 성석린, 대학사 민제, 문하부 참찬 남은, 중추원 첨서 정총, 검교 대학사 권근, 중추원 학사 이직, 대사헌 이근 등 10 명에게 지시해, 하윤과 함께 우리 나라 역대 현인(賢人)들의 비록(秘錄)을 두루 살펴 요점을 추려 바치게 했습니다.
이들이 요약한 책을 바치니, 임금이 하윤과 이직으로 하여금 나아가 강론토록 했습니다. 임금은 좌시중 조준과 삼사 영사 권중화 등 11 명으로 하여금 서운관 관원들을 거느리고 ‘지리비록촬요(地理秘錄撮要)’를 가지고 가서, 무악(毋岳) 남쪽의 도읍 옮길 땅을 살펴보게 했습니다. 사람을 보내 권중화 등에게 술을 내려주었습니다.
권중화와 조준 등이 무악으로부터 돌아와, 무악 남쪽은 땅이 좁아 도읍을 옮길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윤은 홀로 아뢰었습니다.
“무악의 명당(明堂)이 비록 좁은 듯하지만, 송도 강안전(康安殿)이나 평양 장락궁(長樂宮)과 비교해보면 조금 넓은 편입니다. 또한 전 왕조의 비록(秘錄)과 중국에서 쓰이고 있는 지리의 법에도 모두 부합합니다.”
임금은 자신이 직접 보고 정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해 6월, 임금이 도평의사사에 지시했습니다.
“무악 새 도읍 땅은 앞서 10여 재상들에게 지시해 보도록 해서 지금은 이미 결정되었는데, 서운관 관원 유한우(劉旱雨), 이양달 등은 자신들이 배운 바로는 도읍으로 정할 곳이 아니라고 한다. 나라의 큰 일로서 이보다 중한 것이 없는데, 누구는 좋다 하고 누구는 좋지 않다 하니, 전날 가본 재상과 서운관 관원이 모여 옳은지 그른지 논의하고 보고하라.”
삼사 영사 권중화와 우시중 김사형이 여러 재상들과 더불어 서운관에서 모두 좋지 않다 한다고 보고하니, 임금은 그들을 시켜 다시 좋은 곳을 물색하게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7월 들어 서운관 관원이 와서 도읍 될 만한 곳으로 불일사(佛日寺)와 선점(鐥岾)을 추천했습니다. 도평의사사에서 선점에 가 천도할 땅을 보니 좋지 못했습니다. 우복야 남은이 이양달을 꾸짖었습니다.
“너희들이 지리 술법을 안다고 여러 번 맞지 않은 곳을 도읍할 만하다고 상총(上聰)을 번거롭게 하니, 엄히 징계해 뒷날을 경계해야겠다.”
도평의사사가 불일사에 가서 천도할 곳을 보니, 그곳도 역시 좋지 못했습니다. 도평의사사에서 아뢰었습니다.
“지리의 학설이 분명치 못해 사람마다 각각 자기 의견을 내세우니, 서로 의견이 다르고 참과 거짓을 분별하기도 어렵습니다. 전 왕조에서 전해오는 비록(秘錄) 역시 여러 가지여서 좋고 나쁨을 결정짓기 어려우니, 청컨대 음양산정도감(陰陽刪定都監)을 두어 교정하고 하나로 정하도록 하소서.”
임금이 그대로 따라 음양산정도감을 설치했습니다. 삼사 영사 권중화와 삼사 판사 정도전, 문하부 시랑찬성사 성석린, 삼사 우복야 남은, 정당문학 정총, 중주원 첨서 하윤, 중추원 학사 이직, 대사헌 이근, 평원군(平原君) 이서로 하여금 서운관 관원과 함께 지리와 도참(圖讖)에 관한 여러 책을 모아 참고하고 교정하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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